경향신문/오피니언/ 김석종 선임기자/입력 : 2012-12-05 22:08:40
조철현(52)이 또 오랜만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형, 저녁이나 합시다.” 마침 그에게 연락할 참이었다. 왜냐면, 그가 ‘여산통신’이라는 회사 대표 자리를 그만뒀다는 뉴스가 쫘악 돌아서다. 조철현은 출판사에서 막 나온 신간 서적을 모아서 일간지, 잡지, 사보, 방송사에 빨리빨리 배달해주는 ‘사업’을 19년 했다. 그러더니 3층짜리 단독 사옥까지 있는 잘나가는 회사를, 그것도 제 지분의 절반 이상을 직원들에게 내놓고 손 탁 털겠단다.
인사동 술자리에서 만났더니 “바둑, 낚시, 요리, 만화까지 전문 방송이 있는데,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직지의 나라’에 책방송이 없는 게 말이 되냐구!” 했다. 이러면 금방 알아차려야 한다. 아하! 이 친구가 ‘책방송’을 시작하겠구나. 예상대로 “24시간 책 전문 케이블 방송 채널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런 느닷없는 ‘결단’이 바로 ‘조철현식’이다. 참 기발하고, 때로는 엉뚱한 아이디어로 잘도 일을 벌인다. 그러고도 어느새 또 ‘특이한 발상’에 ‘꽂혀서’ 새 일을 꾸민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생각이 너무 집요하고 모났다고, 태도가 좀 뻣뻣하다고 타박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그 조철현을 만난 지 거진 30년이 돼 간다. 경기도 포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큰 조철현은 그때 대학생이거나 휴학생이었을 거다.(한국외대 영어과 ‘81학번’인데 휴학, 복학을 반복하다가 1988년에야 졸업했다). 그런 애매모호한 신분이면서도 별 일 다했다.
인천에 극단 ‘문화공간 짚세기’를 만들어 연극 공연을 하고 다닌 게 대학 1학년 때 첫 휴학하고서다. 그 자금을 마련하려고 ‘미추홀DC패일리’를 세웠단다. 당구장, 옷가게, 미용실, 식당 같은 곳을 섭외해서 돈을 받고 ‘할인권’을 발행했다. “아직 신용카드나 할인쿠폰이 없던 시절, 국내 최초로 만든 할인쿠폰북”이라고 자랑했다. 나중에는 광고대행사까지 차렸다(이런 식의 ‘문화운동’과 ‘문화사업’은 여전히 조철현을 떠받치는 ‘양쪽 기둥’인 거 같다).
다음에는 덮어놓고 유명 소주 회사를 찾아갔다. 제작비를 지원받아 서울시내 대학가 카페, 주점, 레스토랑 등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 그걸 1984년부터 2년 동안 했다. 책에 실린 업소는 장사가 잘 돼서 좋아하고, 젊은이들은 갈 곳 정하는데 유용해서 대단한 인기였다고 한다. 이 ‘국내 최초’ 카페·레스토랑 가이드북을 손질해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여성 잡지 <레이디경향>에 별책부록으로 팔았다(일찌감치 ‘원 소스 멀티유즈’에 눈 뜬 거다).
그게 인연이 돼 대학로, 신촌, 홍대앞, 숙대앞 등 대학가 거리를 소개하는 ‘청춘 맵’을 레이디경향에 연재했다. 거리 지도와 사진의 편집이 예쁜데다 내용도 참신해서 금방 여성지마다 따라 했다. 복학해서도 ‘매일 출근하는 자유기고가’(항용 대학생은 리포터나 대학생기자, 외부에서 전업으로 기사를 쓰면 자유기고가라 한다. 또 자유기고가는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라는 대접(?)을 받으며 기사를 썼다. 한·중 탁구선수 안재형·자오즈민 결혼 소식은 1986년 그가 특종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대학 졸업 전부터 시작해 월간지 <마드모아젤>(행림출판), <직장인>(여원사), <방송90>(방송위원회)에서 7년 정도 ‘정식’ 기자를 했다. 그때도 도무지 가만있질 못했다. 따로 대학생 글쟁이들을 뽑아 ‘기록문학회’라는 걸 하고, 잡지 기사 공급 에이전시격인 ‘헤드라인’을 하고, 방송사 다큐멘터리 구성작가를 하고…, 하여튼 늘 무얼 하며 쏘다녔는데, 결과가 다 신통했던 건 아니다.
그래도 기록문학회가 낸 <우리들의 부끄러운 문화유산답사기>는 10만부쯤 팔렸다. 참, 그 시절 여성 빨치산 허옥선을 취재해 장편소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라는 책을 냈으니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출판인들에게 “우편 발송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언론사를 일일이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책을 전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하소연을 들었단다. 여기서 ‘틈새’, 이른바 ‘블루오션’을 딱 짚어낸 거다. 출판사에서 한꺼번에 책을 받아다 언론사 출판담당 기자에게 ‘배달’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그게 사업이 될 거라고 믿은 사람은 얼마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 때까지 꼬박 신문·우유 배달을 했던 ‘이력’이 발판이 됐달까. ‘여산미디어’(나중에 여산통신으로 이름을 바꿨다)를 만들어 직접 오토바이에 책을 싣고 언론사를 돌았다. 이게 또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업종일텐데, 남들의 예상과 달리 ‘대박’이었다. 50군데로 시작한 계약처가 어느새 500군데로 늘어났고, 오토바이는 소형 승합차로 바꿨다.
사업은 마냥 순탄대로였는데도 “타성에 젖는 게 싫어서” 중간중간 캐나다, 중국, 말레이시아로 떠나 1년씩 살았다. 그러다 탈났다. IMF가 닥쳤고, 몇몇 직원들이 나가서 경쟁업체를 세운 거였다. 서둘러 귀국해 다 죽어가는 회사를 되살려 지금까지 왔다.
조철현이 책 ‘퀵서비스’만 한 건 아니다. 신생 출판사 보도자료를 만들어주고, 기획·마케팅까지 도왔다. 기자들에게는 출판계 뉴스의 ‘소식통’ 노릇을 했다. 그런 인맥과 노하우가 쌓여서 인터넷 책방송 ‘온북TV’(2003년), 서평 월간지 <라이브러리&리브로>(2009년) 창간, 그리고 ‘북&송 콘서트’(2010년) 진행으로 이어졌다. 이게 모두 조철현의 ‘오지랖’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런 건 그가 눈앞의 이익만 좇았다면 절대 안 했을 일이다.
10년 가까이 거의 제 돈 들여가며 온북TV가 해낸 굵직굵직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문익환, 윤이상, 조태일의 평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실크로드 대장정 탐사, 프랑크푸르트·이탈리아 볼로냐·베이징 등 국제 도서전, 박경리 선생 장례식, 고은 시인 시력(詩歷) 50년, 경주 국제펜대회 등을 영상에 담았다.
2005년에는 북한의 평양과 백두산·묘향산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작가대회 전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또 2006년부터 남북한언어학자들이 모여서 진행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공식 기록을 위해 베이징, 평양, 금강산을 다녀왔다(평양에서는 온북TV를 따뜻한 북녘땅, ‘온북(溫北)’이라고 해석하며 환대했다고 한다). 이런 작업들은 두고두고 한국 출판 문화계의 아주 귀한 자료가 될 거다.
조철현이 지금 하려는 ‘책전문 방송’은 온북TV를 시작하면서부터 구상한 그림이다. 이번엔 혼자서가 아니다. 출판사, 도서관, 서점, 인쇄업계와 저자들이 동참하기로 했다. 이미 파주출판도시,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등 각계의 전문가들로 ‘책방송 설립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한 구좌 100만원씩 1000구좌 모금운동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내년 4월 개국이 목표다.
조철현은 “책이야말로 모든 컨텐츠의 핵심이고,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원천이니, 방송에 담을 내용과 형식은 무궁무진하다”며 마냥 들떴다. 쓰다보니 좀 ‘조철현 무용담’으로 흘렀는데, 어쨌거나 새로 선보일 책방송이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영상 예술, 영상 인문학의 새 마당으로 옮겨놓는 늠름한 일이기는 하겠다.
하긴, 책과 글의 향기를 더 깊고 넓게 퍼나르는 든든한 ‘문화 바람잡이’로 조철현이 딱이겠다.
‘문화 바람잡이’ 조철현(52)...경기도 포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큰 조철현은 한국외대 영어과 ‘81학번’인데 휴학, 복학을 반복하다가 1988년에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전부터 시작해 월간지 <마드모아젤>(행림출판), <직장인>(여원사), <방송90>(방송위원회)에서 7년 정도 ‘정식’ 기자를 했다. 여성 빨치산 허옥선을 취재해 장편소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라는 책을 냈으니 작가이기도 하다. ‘여산미디어’(나중에 여산통신으로 이름을 바꿨다)를 만들어 직접 오토바이에 책을 싣고 언론사를 돌았다. 이게 또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업종일텐데, 남들의 예상과 달리 ‘대박’이었다. 50군데로 시작한 계약처가 어느새 500군데로 늘어났고, 오토바이는 소형 승합차로 바꿨다. 인터넷 책방송 ‘온북TV’(2003년), 서평 월간지 <라이브러리&리브로>(2009년) 창간, 그리고 ‘북&송 콘서트’(2010년) 진행으로 이어졌다. 이게 모두 조철현의 ‘오지랖’에서 나왔다. 책과 글의 향기를 더 깊고 넓게 퍼나르는 든든한 ‘문화 바람잡이’로 조철현이 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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