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오피니언/테마칼럼/
병영의 겨울은 일찍 온다. ‘사회’에서는 청명한 가을날씨 속에서 단풍놀이가 절정인데도 ‘군대’에는 한파가 엄습한다. 일찌감치 방한복을 꺼내 입어도 살속을 파고드는 한기를 어쩌지 못한다. 이 나라 사내들은 대부분 그 추위를 안다. 돈과 연줄로 군대를 가지 않은 일부 파렴치족들을 제외한다면 다들 엇비슷한 체험을 공유한다.
아, 그 추억의 저편에서 펄럭이는 기상나팔소리를 기억하는지…. 단순명료한 트럼펫의 금속성 멜로디로 얼어붙은 아침을 깨우던 나팔수 김일병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 또 모포 속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할 때 정적을 깨고 울리던 나팔소리는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집 떠나기 전 앓아 누우신 고향의 어머니 생각에 갓 입대한 이등병은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가슴 저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트럼펫소리에 잠을 청하며 애인 생각에 부르르 몸을 떨던 육군 상병도 있었다. 제대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취침나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시작될 사회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에 잠못이루던 말년 병장의 한숨도 있었다.
추억의 나팔소리를 이제 병영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기상나팔소리 대신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가 하면 미리 녹음된 테이프가 나팔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전통을 이어오던 육군화랑부대도 지난 8월을 마지막으로 나팔수 소집교육을 중단했다.
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권력의 나팔수’ 운운하는 말이 생긴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세상을 깨우고 누구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나팔수가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약삭빠른 이들을 비꼬는 상징으로 전락한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푸른 제복의 사내들의 가슴을 후벼팠던 나팔소리는 세상의 저쪽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가장 빛나는 청춘의 한때를 조국의 안녕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사내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있으리라. 빰빠바빰빠라밤빠.
〈사진 노재덕 포토에디터·글 오광수기자〉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권력의 나팔수’ 운운하는 말이 생긴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세상을 깨우고 누구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나팔수가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약삭빠른 이들을 비꼬는 상징으로 전락한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사진 속의 저런 나팔을 본~ 기억이 없다...ㅋㅋ...^-^
- 2012년 12월11일 호요일 오전 8시...수산나 -
태평소 부는 국악인 1
태평소 부는 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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