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7> 돌상 앞의 한국인 ①
[중앙일보]입력 2009.04.14 02:29 / 수정 2009.04.22 17:04
나를 지켜준 시간의 네 기둥
인터넷 블로거 뉴스에 아사다 마오는 그 사주(四柱) 때문에 김연아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두 선수는 모두 경오(庚午)년 백말띠이고 달수는 갑신(甲申)과 을유(乙酉)이다. 태어난 날은 계유(癸酉)와 계사(癸巳)인데 20일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계(癸)의 일간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갑(甲)목을 손과 발로 쓰고 마오는 을(乙)목을 손과 발로 쓴다는 거다. 더 이상 사주풀이를 들으려 하지 말자. 김연아가 이긴 것은 운을 타고 나서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으니 말이다.
궁금한 것은 그 블로그 뉴스가 베스트에 뽑히고 클릭 수가 만만찮다는 데 있다. 하기야 좋다는 사주 날짜 받아놓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세상이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원래 사주팔자란 태어난 해(年) 달(月) 날(日) 시(時)를 ‘네 기둥’(四柱)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두 자로 된 간지명(干支名) 여덟 글자(八字)로 나타낸 말일 뿐이다. 그래서 점복과 관계없이 한 개인의 차이성을 나타내는 ID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에서는 중세 때부터 이미 생년월일을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왔다. 이름과 주소는 바뀌어도 생년월일은 일생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언젠가는 생년월일 숫자를 시민 전체가 등록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기뻐해야 할지 서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한국이다. 사주팔자를 시(時)만 빼고 숫자로 고치면 우리가 무덤까지 갖고 갈 주민등록증 번호의 앞자리 여섯 숫자가 생긴다. ‘사주팔자’가 ‘삼주육자’로 바뀐 셈이다.
사주의 여덟 글자가 한국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그만큼 운명론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름도 남이 지어준 것이고 태어난 장소도 이사를 가면 그만이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사주 날짜만은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깃발의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은 시 ‘출생기’에서 “융희(隆熙) 2년, 나를 잉태하신 어머니”라고 썼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한 사람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純宗)의 연호로, 또 한 사람은 일본제국의 ‘천황’의 연호를 탯줄처럼 감고 태어난 것이다. 작가 이병주는 다섯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았던 한국 젊은이의 비극을 소설화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융희, 소화, 단기, 서기로 그 명칭이 바뀌어 간 단절과 혼란의 역사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시간을 개인 사주의 간지로 바꾸면 사정은 달라진다. 융희 2년은 정미생(丁未生)이 되고 소화 8년생은 계유(癸酉)생으로 변한다.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하여 지붕에 박넌출(넝쿨) 남풍에 자라고 푸른 하늘에 석류꽃 피 뱉은 듯 피어”의 ‘출생기’의 한 시구절 같은 “그래도”의 시간, “천년의 다채한 시간” 내 생명과 자연과 우주의 시간이 열린다. 아무리 낡고 황당한 주역이나 당사주책(唐四柱冊)이라도 신이라고 일컫던 ‘천황폐하’보다 내 띠인 닭이 먼저다. 아니다. 거기에는 카이저의 절대 권력도 틈입할 수 없는 나의 시간, 하늘의 시간이다. 아무리 소화 8년 황국신민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나는 태양보다 먼저 어둠 속에 빛을 토하는 닭띠 계유생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경오년생 김연아가 국적이 다른 아사다 마오와 은반 위에서 머리칼을 나부끼며 백마처럼 달려오고 있는 시간, 둥글게 둥글게 순환하는 띠의 시간, 영원히 지속하는 시간 그 고리 위의 네 기둥이 한국인들을 지켜왔다.
이어령
궁금한 것은 그 블로그 뉴스가 베스트에 뽑히고 클릭 수가 만만찮다는 데 있다. 하기야 좋다는 사주 날짜 받아놓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세상이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원래 사주팔자란 태어난 해(年) 달(月) 날(日) 시(時)를 ‘네 기둥’(四柱)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두 자로 된 간지명(干支名) 여덟 글자(八字)로 나타낸 말일 뿐이다. 그래서 점복과 관계없이 한 개인의 차이성을 나타내는 ID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에서는 중세 때부터 이미 생년월일을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왔다. 이름과 주소는 바뀌어도 생년월일은 일생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언젠가는 생년월일 숫자를 시민 전체가 등록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기뻐해야 할지 서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한국이다. 사주팔자를 시(時)만 빼고 숫자로 고치면 우리가 무덤까지 갖고 갈 주민등록증 번호의 앞자리 여섯 숫자가 생긴다. ‘사주팔자’가 ‘삼주육자’로 바뀐 셈이다.
사주의 여덟 글자가 한국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그만큼 운명론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름도 남이 지어준 것이고 태어난 장소도 이사를 가면 그만이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사주 날짜만은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것이다.
그런데 그 정체성마저 호적부에 오르는 순간 위태로워진다. 왕의 시간, 황제의 시간, 국가의 시간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연호(年號)라는 것이요, 기원(紀元)이라는 특수 문자다. 실제로 내 생일은 음력과 양력 그리고 호적에 등재된 것으로 지리멸렬되어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출생 당시 호적에는 ‘소화(昭和) 8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해방된 뒤에는 단기, 근대화 이후에는 서기로 표기 방식이 달라진다. 아마 북한 땅이었다면 내 출생일은 주체 23년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역사의 시간, 카이저들의 시간이라는 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깃발의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은 시 ‘출생기’에서 “융희(隆熙) 2년, 나를 잉태하신 어머니”라고 썼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한 사람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純宗)의 연호로, 또 한 사람은 일본제국의 ‘천황’의 연호를 탯줄처럼 감고 태어난 것이다. 작가 이병주는 다섯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았던 한국 젊은이의 비극을 소설화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융희, 소화, 단기, 서기로 그 명칭이 바뀌어 간 단절과 혼란의 역사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시간을 개인 사주의 간지로 바꾸면 사정은 달라진다. 융희 2년은 정미생(丁未生)이 되고 소화 8년생은 계유(癸酉)생으로 변한다.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하여 지붕에 박넌출(넝쿨) 남풍에 자라고 푸른 하늘에 석류꽃 피 뱉은 듯 피어”의 ‘출생기’의 한 시구절 같은 “그래도”의 시간, “천년의 다채한 시간” 내 생명과 자연과 우주의 시간이 열린다. 아무리 낡고 황당한 주역이나 당사주책(唐四柱冊)이라도 신이라고 일컫던 ‘천황폐하’보다 내 띠인 닭이 먼저다. 아니다. 거기에는 카이저의 절대 권력도 틈입할 수 없는 나의 시간, 하늘의 시간이다. 아무리 소화 8년 황국신민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나는 태양보다 먼저 어둠 속에 빛을 토하는 닭띠 계유생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경오년생 김연아가 국적이 다른 아사다 마오와 은반 위에서 머리칼을 나부끼며 백마처럼 달려오고 있는 시간, 둥글게 둥글게 순환하는 띠의 시간, 영원히 지속하는 시간 그 고리 위의 네 기둥이 한국인들을 지켜왔다.
이어령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8> 돌상 앞의 한국인 ②
[중앙일보]입력 2009.04.15 02:44 / 수정 2009.04.22 17:03
기저귀로부터 오는 문화유전자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갓난아이들은 용케 어머니의 젖꼭지를 찾아 빤다. 시각이 아니라 후각을 통해서다. 설마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배 안에서부터 어머니 냄새를 맡아 왔다는 이야기다. 배 안에서도 어머니의 말을 익힌다는 말, 그리고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편안한 표정을 짓고 베토벤의 시끄러운 음악에는 얼굴을 찡그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냄새까지 맡는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신생아들에게 평소 사용하던 어머니의 브래지어와 그렇지 않은 것을 대주고 그 반응을 살펴본 실험결과라고 하니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탯줄을 끊자마자 양수를 빨고 배설물을 싸던 생물유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배우고 익혀야 사는 사회로부터 오는 최초의 문화유전자가 기저귀를 타고 들어온다. 빠는 것과 싸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자에 맡겨진 것이지만 먹는 것과 누는 것은 문화적 학습과 훈련에 의한 것이다. 한국 나이로 두세 살은 되어야 겨우 자기 의지로 배설을 가릴 수 있게 된다. 그동안에는 기저귀를 줄곧 차고 지낸다. 사람들의 일생을 기저귀(강보)로부터 시작하여 수의(壽衣)로 끝나는 한 폭의 천으로 파악한 것은 역시 대문호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기저귀의 문화인류학적 의미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하다. 같은 기저귀라도 자연섬유로 된 옛날의 기저귀와 종이로 만든 요즈음의 일회용 기저귀는 소재부터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천 조각 자체보다도 문화에 따라 아이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방식이 나라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우선 기저귀를 느슨하게 채우느냐 꽉 조이느냐의 문화적 풍습에서 민족성 형성에 차이가 생긴다는 이른바 ‘기저귀학(學)’이란 것도 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다니엘 벨 같은 사회학자는 실제로 기저귀를 지나치게 꼭 죄는 풍습으로 러시아인의 기질과 사회성을 분석했던 기저귀학파를 비웃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기저귀를 채우듯 일본 사람들은 아이들의 다리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꼭 조여 맨다. 일본인 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다카바시 에쓰지로). 일본인들은 머리에는 하치마키(머리띠), 어깨에는 다즈키(어깨띠), 양 가랑이 사이에는 훈도시(기저귀 모양의 천)를 조여야 힘이 나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일제 강점 하의 영향으로 우리도 허리띠·어깨띠까지 두르고 데모를 하지만 일본의 훈도시만은 그들의 것이다. 힘자랑하는 일본의 역사들이 발가벗은 채 ‘기저귀’만 차고 씨름판에 오르는 그 기상을 보면 그래 정말 ‘기저귀의 문화유전자’라는 게 만만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저귀를 조여 매는 것과 정반대의 것이 동남아의 경우다. 아예 기저귀란 것이 없단다. 인도네시아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배설할 기미가 보이면 전광석화와 같은 타이밍으로 받아 씻어낸다고 한다. 기저귀 없는 문화권의 ‘질’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그렇다. 기저귀는 문화의 중요한 단서물이다. 젖을 ‘빠는 것’과 대소변을 ‘싸는 것’의 인풋과 아웃풋이 ‘먹는 것’과 ‘누는 것’의 의지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저귀의 의미다. 한국인의 최초의 학습은 이렇게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배우는 ‘맘마’와 ‘지지’이고 자기 의지로 배설하는 것을 배우는 ‘쉬이 쉬이’와 ‘끙가’의 유아 언어다. 빨고 싸던 생물학적 유전이 먹고 누는 문화유전자로 변하고 그것이 사회에 나가면 벌고 쓰는 관계로 진화한다. 그래서 버는 것만 알고 쓰는 것은 모르는 경제학·경영학은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도 꽉 조인 기저귀를 말이다.
이어령
그러나 탯줄을 끊자마자 양수를 빨고 배설물을 싸던 생물유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배우고 익혀야 사는 사회로부터 오는 최초의 문화유전자가 기저귀를 타고 들어온다. 빠는 것과 싸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자에 맡겨진 것이지만 먹는 것과 누는 것은 문화적 학습과 훈련에 의한 것이다. 한국 나이로 두세 살은 되어야 겨우 자기 의지로 배설을 가릴 수 있게 된다. 그동안에는 기저귀를 줄곧 차고 지낸다. 사람들의 일생을 기저귀(강보)로부터 시작하여 수의(壽衣)로 끝나는 한 폭의 천으로 파악한 것은 역시 대문호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기저귀의 문화인류학적 의미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하다. 같은 기저귀라도 자연섬유로 된 옛날의 기저귀와 종이로 만든 요즈음의 일회용 기저귀는 소재부터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천 조각 자체보다도 문화에 따라 아이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방식이 나라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우선 기저귀를 느슨하게 채우느냐 꽉 조이느냐의 문화적 풍습에서 민족성 형성에 차이가 생긴다는 이른바 ‘기저귀학(學)’이란 것도 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다니엘 벨 같은 사회학자는 실제로 기저귀를 지나치게 꼭 죄는 풍습으로 러시아인의 기질과 사회성을 분석했던 기저귀학파를 비웃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기저귀를 채우듯 일본 사람들은 아이들의 다리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꼭 조여 맨다. 일본인 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다카바시 에쓰지로). 일본인들은 머리에는 하치마키(머리띠), 어깨에는 다즈키(어깨띠), 양 가랑이 사이에는 훈도시(기저귀 모양의 천)를 조여야 힘이 나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일제 강점 하의 영향으로 우리도 허리띠·어깨띠까지 두르고 데모를 하지만 일본의 훈도시만은 그들의 것이다. 힘자랑하는 일본의 역사들이 발가벗은 채 ‘기저귀’만 차고 씨름판에 오르는 그 기상을 보면 그래 정말 ‘기저귀의 문화유전자’라는 게 만만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아이들을 업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라 실증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은 기저귀도 포대기 끈도 느슨하게 매는 편인 것 같다. 업힌 아이들이 어깨라고 하기보다 엉덩이에 박처럼 매달려 있는 옛날 그립고 귀여운 삽화를 보면 알 것이다. 기저귀를 꽉 졸라매는 것은 문(文)이요, 헐렁하게 매는 것은 질(質)이다. 조이는 것도 느슨한 것도 아닌 채운 듯 만 듯한 그 가운데 것이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인 문질빈빈(文質彬彬)이다. 한국인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문화다.
기저귀를 조여 매는 것과 정반대의 것이 동남아의 경우다. 아예 기저귀란 것이 없단다. 인도네시아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배설할 기미가 보이면 전광석화와 같은 타이밍으로 받아 씻어낸다고 한다. 기저귀 없는 문화권의 ‘질’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그렇다. 기저귀는 문화의 중요한 단서물이다. 젖을 ‘빠는 것’과 대소변을 ‘싸는 것’의 인풋과 아웃풋이 ‘먹는 것’과 ‘누는 것’의 의지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저귀의 의미다. 한국인의 최초의 학습은 이렇게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배우는 ‘맘마’와 ‘지지’이고 자기 의지로 배설하는 것을 배우는 ‘쉬이 쉬이’와 ‘끙가’의 유아 언어다. 빨고 싸던 생물학적 유전이 먹고 누는 문화유전자로 변하고 그것이 사회에 나가면 벌고 쓰는 관계로 진화한다. 그래서 버는 것만 알고 쓰는 것은 모르는 경제학·경영학은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도 꽉 조인 기저귀를 말이다.
이어령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9> 돌상 앞의 한국인 ③
[중앙일보]입력 2009.04.16 02:51 / 수정 2009.04.22 17:03
따로 서는 아이와 보행기 위의 아이
콩나물 시루가 된 만원 엘리베이터 속에서 이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만약 인간이 다른 짐승들처럼 네 발로 돌아다닌다면 지금 이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되었을까. 컨테이너처럼 길게 눕혀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겠지. 사람들은 양 떼 모양처럼 아주 거북하고 민망한 자세로 늘어서 있었을 것이다. 웃음이 나오다가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인간의 직립 자세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트 박사의 가설이 떠오른다. 그것은 항문과 생식기가 있는 엉덩이와 얼굴이 있는 머리 사이를 되도록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자세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미 앞 글에서 기저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 상태에서 인간적 문화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대소변 가리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프로이트 박사와 같은 산문적이고 건조한 상상력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을 비디오처럼 리와인딩하면 처음 일어서서 웃고 있는 한국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투부터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임신하는 것을 아이가 “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면 한국의 아이들은 어머니 배 속으로 강아지처럼 기어 들어온 게 아니라 당당히 선 채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온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엎드려 기어 다니는 이상으로 편한 자세는 없다. 이 세상 어떤 의자나 책상도 두 다리로 서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모험을 자청하는가. 더구나 한국의 장판은 양탄자가 깔린 서양이나 일본의 다다미 방과는 다르다. 한번 넘어지면 콘크리트 바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무릎을 찧고 머리를 부딪쳐 울면서도 다시 일어선다. 유난히 정이 많은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인데도 애가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는 순간만은 옆에 떨어져서 추임새만을 한다. “따로~ 따로~! 따로~ ”라고 외치면서 손뼉을 친다. 아이는 다시 일어섰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또 일어선다. 그러다가 보라, 이윽고 어느 날 아이는 제 발로 일어선다. 아직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눈에, 볼 위에, 입술 위에 은은하게 어리는 미소를 보았는가.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이 땅의 지평 위에 우뚝 선다. 한 일(一)자의 땅바닥 위에 사람 형상을 딴 큰 대(大)자를 세워 놓은 한자의 그 설 입(立)자처럼, 혹은 한 폭의 깃발처럼. 그런데 서양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최초로 일어선 순간의 감동을 잘 모른다. 라이스 유크리드라는 사람이 ‘베이비 점퍼’의 보행기를 만들어 특허(US 8478)를 낸 1851년부터의 일이다.
2002년 아일랜드의 매터병원에서 가레트 박사 팀이 190명의 부모를 상대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이들 가운데 102명(54%)이 보행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 사용 기간은 중간치로 계산해 생후 26주에서 54주까지 반년 이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빨리 일어나 걷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데 실제로는 보통 애들보다도 오히려 서너 달 더 늦어진다는 조사 결과다. 거기에 보행기가 굴러 떨어지는 사고도 많이 발생하여 캐나다에서는 이미 십여 년부터 법으로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이유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제왕절개 수술로 탄생의 자유와 그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이번에도 일어서고자 하는 자율의 의지와 훈련이 보행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호사스러운 보행기 위에서 기기도 전에 먼저 걷는 우리 아이들도 이제는 서양 애들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언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는지 아이도 부모들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따로 따로 따로”라는 전통적인 추임새의 말조차 모른다. 그것은 곧 첫발을 떼놓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에 은은히 미소 짓는 한국인의 모습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어령
그러면서 인간의 직립 자세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트 박사의 가설이 떠오른다. 그것은 항문과 생식기가 있는 엉덩이와 얼굴이 있는 머리 사이를 되도록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자세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미 앞 글에서 기저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 상태에서 인간적 문화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대소변 가리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프로이트 박사와 같은 산문적이고 건조한 상상력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을 비디오처럼 리와인딩하면 처음 일어서서 웃고 있는 한국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투부터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임신하는 것을 아이가 “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면 한국의 아이들은 어머니 배 속으로 강아지처럼 기어 들어온 게 아니라 당당히 선 채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도 한국 애들은 엎어 재운 서양 아이들과는 다르다(엎어 재운 아이들이 질식사로 죽는 사고가 잇따르자 요즘 서양에서도 한국식으로 눕혀 재운다). 한국 애들은 누워 지내던 태에서 엎어지는 운동을 하고 다음에는 고개를 들고 누에 벌레처럼 배로 기어가는 단계에 이른다. 일 년 가까이 그런 과정을 제 힘과 의지로 자연스럽게 통과해야만 두 발로 일어서는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엎드려 기어 다니는 이상으로 편한 자세는 없다. 이 세상 어떤 의자나 책상도 두 다리로 서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모험을 자청하는가. 더구나 한국의 장판은 양탄자가 깔린 서양이나 일본의 다다미 방과는 다르다. 한번 넘어지면 콘크리트 바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무릎을 찧고 머리를 부딪쳐 울면서도 다시 일어선다. 유난히 정이 많은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인데도 애가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는 순간만은 옆에 떨어져서 추임새만을 한다. “따로~ 따로~! 따로~ ”라고 외치면서 손뼉을 친다. 아이는 다시 일어섰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또 일어선다. 그러다가 보라, 이윽고 어느 날 아이는 제 발로 일어선다. 아직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눈에, 볼 위에, 입술 위에 은은하게 어리는 미소를 보았는가.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이 땅의 지평 위에 우뚝 선다. 한 일(一)자의 땅바닥 위에 사람 형상을 딴 큰 대(大)자를 세워 놓은 한자의 그 설 입(立)자처럼, 혹은 한 폭의 깃발처럼. 그런데 서양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최초로 일어선 순간의 감동을 잘 모른다. 라이스 유크리드라는 사람이 ‘베이비 점퍼’의 보행기를 만들어 특허(US 8478)를 낸 1851년부터의 일이다.
2002년 아일랜드의 매터병원에서 가레트 박사 팀이 190명의 부모를 상대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이들 가운데 102명(54%)이 보행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 사용 기간은 중간치로 계산해 생후 26주에서 54주까지 반년 이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빨리 일어나 걷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데 실제로는 보통 애들보다도 오히려 서너 달 더 늦어진다는 조사 결과다. 거기에 보행기가 굴러 떨어지는 사고도 많이 발생하여 캐나다에서는 이미 십여 년부터 법으로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이유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제왕절개 수술로 탄생의 자유와 그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이번에도 일어서고자 하는 자율의 의지와 훈련이 보행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호사스러운 보행기 위에서 기기도 전에 먼저 걷는 우리 아이들도 이제는 서양 애들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언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는지 아이도 부모들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따로 따로 따로”라는 전통적인 추임새의 말조차 모른다. 그것은 곧 첫발을 떼놓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에 은은히 미소 짓는 한국인의 모습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어령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10> 돌상 앞의 한국인 ④
[중앙일보]입력 2009.04.17 02:25 / 수정 2009.05.04 10:08
어머니 어깨너머로 본 세상
일본의 한 소아보건학자는 아이를 업어 기르는 것은 일본과 미국의 인디언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스킨십을 자랑하면서 아이들을 떼놓고 기르는 서양문화와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이를 업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인들이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본은 아이를 ‘온부히모’라고 부르는 띠로 ‘매고’ 한국은 포대기로 ‘두르는’ 그 차이밖에 없다(아이를 업을 때 조여 ‘매는 것’과 느슨하게 ‘두르는 것’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기저귀를 논하는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서양 사람들은 아이들을 낳자마자 요람이나 아기 침대에 떼내어 따로 키운다. 이동할 때에도 유모차에 태워 끌고 다니기 때문에 모자의 스킨십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 대신 아이들은 일찍부터 독립된 한 인격체로서 성장하게 된다. 업은 사람의 뒤통수만 보이는 문화가 아니라 눈과 눈을 서로 마주 보는 소통력의 문화다.
문제는 업는 문화는 스킨십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를 업으면 두 손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부엌일·바깥일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업은 것조차 모르는 일체감이다. 포대기가 바로 요람이요 유모차이기에 애들은 어머니와 떨어질 걱정 없이 온종일 업혀 다닌다.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것, 세탁하는 것, 바느질하고 청소하는 어머니의 가사와 집안 구석구석을 다 구경한다. 나들이를 갈 때면 바깥 풍경은 물론이고 동네 아줌마의 얼굴과 목소리도 익힌다. 서양 애들이 요람에 누워서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 애들은 엄마의 등에 업혀 세상을 보고 듣는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미리 느끼고 배우는 현장 학습이다.
새 소리를 듣고, 꽃을 보고, 바람을 타고 오는 모든 생활의 냄새를 어머니의 땀내와 함께 맡는다. 캥거루 같은 유대류보다도 더 밀착된 상태에서 발육하는 아이들은 외로움을 모른다.
늙으신 어머니를 업고 너무나도 가벼워진 몸무게에 서너 발짝도 걷지 못했다는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노래에는 국경 없는 감동이 있다.
업고 업히는 문화는 개인 중심의 서구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인(동아시아) 특유의 집단 귀속의식으로 발전한다. 윷놀이에서 말판 쓰는 것을 보면 상대방 말은 가차없이 잡아먹으면서도 자기 말들은 넉동산을 한꺼번에 업어 나간다. 그것이 윷놀이의 최고 전략이요 진미다.
업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업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잘 쓰는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업어 주고 업히는 문화를 숫자로 나타내면 어떤 수학공식에도 없는 1+1=1이 생겨난다. ‘누이의 어깨너머로 수틀을 보듯 세상을 보자’는 아름다운 시 세계가 열린다. 아무리 추악한 세상이라도 따뜻한 체온이 흐른다. 하지만 내가 처음 홀로 일어서던 날 “따로~따로~따로”라고 추임새를 듣던 ‘따로의 정신’을 잃으면, 그 개별성과 그 독립정신을 키우지 않으면 ‘업는 문화’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자아는 의존주의로 빠지고 어깨너머로 본 풍경들은 부정확한 미신이 되고 만다. 공동체의 동질성은 넉동산을 함께 업어 나가는 연고주의와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될 것이다.
이어령
서양 사람들은 아이들을 낳자마자 요람이나 아기 침대에 떼내어 따로 키운다. 이동할 때에도 유모차에 태워 끌고 다니기 때문에 모자의 스킨십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 대신 아이들은 일찍부터 독립된 한 인격체로서 성장하게 된다. 업은 사람의 뒤통수만 보이는 문화가 아니라 눈과 눈을 서로 마주 보는 소통력의 문화다.
문제는 업는 문화는 스킨십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를 업으면 두 손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부엌일·바깥일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업은 것조차 모르는 일체감이다. 포대기가 바로 요람이요 유모차이기에 애들은 어머니와 떨어질 걱정 없이 온종일 업혀 다닌다.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것, 세탁하는 것, 바느질하고 청소하는 어머니의 가사와 집안 구석구석을 다 구경한다. 나들이를 갈 때면 바깥 풍경은 물론이고 동네 아줌마의 얼굴과 목소리도 익힌다. 서양 애들이 요람에 누워서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 애들은 엄마의 등에 업혀 세상을 보고 듣는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미리 느끼고 배우는 현장 학습이다.
새 소리를 듣고, 꽃을 보고, 바람을 타고 오는 모든 생활의 냄새를 어머니의 땀내와 함께 맡는다. 캥거루 같은 유대류보다도 더 밀착된 상태에서 발육하는 아이들은 외로움을 모른다.
어깨너머 세상은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원리’를 ‘업고 업히는 상생원리’로 바꿔놓는다. 한국의 어머니들도 서양 사람들처럼 아이들을 ‘베이비 슬링(baby sling)’으로 묶어 매달고 다니는 세상인데도 업는 문화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그대로 따라다닌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그 흔한 키스 신보다는 업어 주는 연기가 최고의 애정표현으로 꼽힌다. 이도령이 춘향이를 업어 주는 판소리 장면과 시차가 없다. 남녀의 경우라면 에로티시즘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민 소설이 되어 버린 ‘메밀꽃 필 무렵’의 라스트 신을 보라.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얻은 동이의 등에 업혀 냇물을 건너는 허 생원의 그 행복 절정의 장면 말이다.
늙으신 어머니를 업고 너무나도 가벼워진 몸무게에 서너 발짝도 걷지 못했다는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노래에는 국경 없는 감동이 있다.
업고 업히는 문화는 개인 중심의 서구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인(동아시아) 특유의 집단 귀속의식으로 발전한다. 윷놀이에서 말판 쓰는 것을 보면 상대방 말은 가차없이 잡아먹으면서도 자기 말들은 넉동산을 한꺼번에 업어 나간다. 그것이 윷놀이의 최고 전략이요 진미다.
업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업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잘 쓰는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업어 주고 업히는 문화를 숫자로 나타내면 어떤 수학공식에도 없는 1+1=1이 생겨난다. ‘누이의 어깨너머로 수틀을 보듯 세상을 보자’는 아름다운 시 세계가 열린다. 아무리 추악한 세상이라도 따뜻한 체온이 흐른다. 하지만 내가 처음 홀로 일어서던 날 “따로~따로~따로”라고 추임새를 듣던 ‘따로의 정신’을 잃으면, 그 개별성과 그 독립정신을 키우지 않으면 ‘업는 문화’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자아는 의존주의로 빠지고 어깨너머로 본 풍경들은 부정확한 미신이 되고 만다. 공동체의 동질성은 넉동산을 함께 업어 나가는 연고주의와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될 것이다.
이어령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11> 돌상 앞의 한국인 ⑤
[중앙일보]입력 2009.04.20 03:04 / 수정 2009.04.22 17:02
돌잡이는 꿈잡이
오랜만에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색동옷과 복건을 쓴 돌잡이를 보면서 처음으로 거기 의젓하게 앉아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았다. 눈물이 흔해진 나이라 그런지 경사스러운 날에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색 바랜 사진 한 장. 그나마 전쟁으로 불타버린 내 돌 사진이 생각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장례식에 가도 곡소리를 들을 수 없고 결혼식장에 가도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세상인데 돌잡이만은 옛날 모습처럼 돌상 앞에 앉아 있다. 하늘의 별들이 일제히 내려와 앉은 것 같은 돌상차림이 아닌가.
그래 나도 돌상 앞에 저렇게 앉아 있었겠지. 아주 작고 반짝이는 그 많은 것들, 이름은 몰랐지만 분명 그것은 붓이고 책이고 무지개 같은 활이었을 거야. 무한대의 기호 모양을 한 것은 장수를 한다는 무명 실타래고 진주알같이 쌓여 있는 것은 만석꾼이 되라는 흰쌀이었을 것이다. “얼른 잡아! 저게 다 너의 꿈인 거야. 좋은 걸 골라 잡기만 하면 돼.” 누군가가 속삭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고 현실 속에서 내 기억을 일깨워 주신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네가 돌상에서 맨 먼저 잡은 건 붓이었단다. 그리고 낡고 헤어진 천자문 책을 집으려고 했지.” 그때의 말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흡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미소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부귀영화의 쌀과 돈, 권력의 활을 잡지 않고 붓 한 자루 잡았던 나를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신 어머니, 남의 나라처럼 그냥 ‘퍼스트 버스데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별난 돌잡이 풍습을 만들어 준 나의 조국, 그런 어머니의 아들과 그런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돌날 붓을 잡은 나는 정말 평생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칭기즈칸도 아인슈타인도 없는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금 한국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잠시 흐려졌던 눈이 맑아지자 돌상 위에 놓인 낯선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건 컴퓨터 마우스 아닌가.” “예 맞아요. 빌 게이츠가 되라고요.” 돌잡이 아빠는 IT 벤처회사의 간부사원이었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는 변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책을 잡아도 판검사 되라고 법전일 테고 CEO 되라고 경영책일 텐데 무엇이면 어떠냐. 나처럼 붓을 잡지 않아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거라.” 폰 카메라 같은 것으로 누군가 백 년 전부터 돌상을 찍었더라면 아마 한국인의 다양한 꿈 사전이, 시대를 읽는 욕망의 역사책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느 화가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밥상을 부감촬영하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밥상의 테두리는 액자가 되고 오방색 음식 그릇들은 추상화가 된다. 더구나 돌상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꿈을 담은 물건들이니 우리 미래를 검색하는 데이터 베이스의 창처럼 눈부실 거다.
예나 지금이나 돌상 앞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래의 비전을 잡는 한국인의 모습, 그 시작 속에 우리 문화를 읽는 암호가 숨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돌잡이 풍속과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첫째는 상(床)문화다. 한국인의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돌상(床)에서 제상까지’다. 그 사이에 초례청, 결혼상이 있고 환갑상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상이 아니라 다다미방에 돌잔치의 물건을 진열한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돌상에 오를 수 없는 칼(사무라이의 칼잡이 문화)이나 주판(상인들 문화) 같은 것들이다.
둘째는 앉는 문화다. 상 앞에서는 서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된다. 한국의 좌식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일본의 돌잡이들은 평생 먹을 양식을 상징하는 떡(잇쇼모찌)을 짊어지고 다다미 위의 돌차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이가 걸어가는 쪽 물건으로 미래를 점친다.
셋째는 잡는 문화다. 돌잡이는 꿈잡이다. 한국인은 꿈을 꾸지 않고 손으로 잡는다. “잼잼”과 “곤지곤지”의 애들 놀이에서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집는 손기술까지 모두가 돌잡이의 ‘잡는 문화’로 상징된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이라고 해도 일본에는 돌잡이의 개념이 없다.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돌떡(잇쇼모찌)을 발로 밟게 한다.
이어령
그래 나도 돌상 앞에 저렇게 앉아 있었겠지. 아주 작고 반짝이는 그 많은 것들, 이름은 몰랐지만 분명 그것은 붓이고 책이고 무지개 같은 활이었을 거야. 무한대의 기호 모양을 한 것은 장수를 한다는 무명 실타래고 진주알같이 쌓여 있는 것은 만석꾼이 되라는 흰쌀이었을 것이다. “얼른 잡아! 저게 다 너의 꿈인 거야. 좋은 걸 골라 잡기만 하면 돼.” 누군가가 속삭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고 현실 속에서 내 기억을 일깨워 주신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네가 돌상에서 맨 먼저 잡은 건 붓이었단다. 그리고 낡고 헤어진 천자문 책을 집으려고 했지.” 그때의 말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흡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미소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부귀영화의 쌀과 돈, 권력의 활을 잡지 않고 붓 한 자루 잡았던 나를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신 어머니, 남의 나라처럼 그냥 ‘퍼스트 버스데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별난 돌잡이 풍습을 만들어 준 나의 조국, 그런 어머니의 아들과 그런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돌날 붓을 잡은 나는 정말 평생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칭기즈칸도 아인슈타인도 없는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금 한국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잠시 흐려졌던 눈이 맑아지자 돌상 위에 놓인 낯선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건 컴퓨터 마우스 아닌가.” “예 맞아요. 빌 게이츠가 되라고요.” 돌잡이 아빠는 IT 벤처회사의 간부사원이었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는 변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요즘 마우스는 명함도 못 내지요. 박찬호가 뜨면 야구공, 박세리가 이길 땐 골프공이 오르지요. 뭐 사라 장이 한국에 와서 연주를 하면 장난감 바이올린까지 등장한답니다. 그런데 요새는 스케이트래요. 유나 킴, 아시잖아요. 김연아말이에요.”
“어차피 책을 잡아도 판검사 되라고 법전일 테고 CEO 되라고 경영책일 텐데 무엇이면 어떠냐. 나처럼 붓을 잡지 않아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거라.” 폰 카메라 같은 것으로 누군가 백 년 전부터 돌상을 찍었더라면 아마 한국인의 다양한 꿈 사전이, 시대를 읽는 욕망의 역사책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느 화가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밥상을 부감촬영하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밥상의 테두리는 액자가 되고 오방색 음식 그릇들은 추상화가 된다. 더구나 돌상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꿈을 담은 물건들이니 우리 미래를 검색하는 데이터 베이스의 창처럼 눈부실 거다.
예나 지금이나 돌상 앞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래의 비전을 잡는 한국인의 모습, 그 시작 속에 우리 문화를 읽는 암호가 숨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돌잡이 풍속과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첫째는 상(床)문화다. 한국인의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돌상(床)에서 제상까지’다. 그 사이에 초례청, 결혼상이 있고 환갑상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상이 아니라 다다미방에 돌잔치의 물건을 진열한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돌상에 오를 수 없는 칼(사무라이의 칼잡이 문화)이나 주판(상인들 문화) 같은 것들이다.
둘째는 앉는 문화다. 상 앞에서는 서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된다. 한국의 좌식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일본의 돌잡이들은 평생 먹을 양식을 상징하는 떡(잇쇼모찌)을 짊어지고 다다미 위의 돌차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이가 걸어가는 쪽 물건으로 미래를 점친다.
셋째는 잡는 문화다. 돌잡이는 꿈잡이다. 한국인은 꿈을 꾸지 않고 손으로 잡는다. “잼잼”과 “곤지곤지”의 애들 놀이에서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집는 손기술까지 모두가 돌잡이의 ‘잡는 문화’로 상징된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이라고 해도 일본에는 돌잡이의 개념이 없다.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돌떡(잇쇼모찌)을 발로 밟게 한다.
이어령
으름덩굴 암꽃과 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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