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7] 여성 허리 괴롭힌 부뚜막 70년대 이후에야 사라져
조선일보/오피니언/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05.03 22:38
우리네 전통
부엌은 장작불로 취사와 온돌방 난방을 겸하는 구조였다. 한 세기 전 선교사 언더우드의 부인은 "솥에 짜 맞춘 아궁이는 밥도 짓고 온기도 주므로
경제적으로 상당히 유리하다"고 그 효용성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매운 눈을 비비며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허리를 반 접어
부뚜막에서 밥을 지어 보았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동이 이고 우물에서 물 긷고, 천변(川邊)에 나가 빨래하며, 텃밭 매서 푸성귀를 밥상에
올린 그 시절 아낙들의 삶은 곤고(困苦)했다. 그네들은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아궁이 옆 부지깽이로 멋모르고 부엌에 알찐거리는 하룻강아지를 쫓으며
달랬다.
'재래주택은 많은 부실과 결함을 갖고 있다. 침실·생활실·객실·서재·요리실 등 구미 주택제도 중 생활에 적합한 것을 본받아야 한다'(잡지 '개벽' 34호, 1923년). 평론가 겸 극작가 김유방의 말마따나 일제하에서 '남녀동권(男女同權)'을 외친 신여성들은 남성들의 고루한 생각을 바꿔나갔다. 그러나 1930년대 상류층의 문화주택이나 1940년대 중산층의 영단(營團)주택은 모두 온돌방과 부엌의 부뚜막은 그대로였다. 남성 건축가들은 주택의 겉모습만 바꾸었지 주부의 오랜 갈증을 덜어주지 못했다.
'재래주택은 많은 부실과 결함을 갖고 있다. 침실·생활실·객실·서재·요리실 등 구미 주택제도 중 생활에 적합한 것을 본받아야 한다'(잡지 '개벽' 34호, 1923년). 평론가 겸 극작가 김유방의 말마따나 일제하에서 '남녀동권(男女同權)'을 외친 신여성들은 남성들의 고루한 생각을 바꿔나갔다. 그러나 1930년대 상류층의 문화주택이나 1940년대 중산층의 영단(營團)주택은 모두 온돌방과 부엌의 부뚜막은 그대로였다. 남성 건축가들은 주택의 겉모습만 바꾸었지 주부의 오랜 갈증을 덜어주지 못했다.
-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과 사발을 올려놓은 살강으로 대표되는 전통 부엌(왼쪽 사진)은 1950년대 들어 시멘트와 타일로 마감된 부뚜막에 찬장과 석유화로가 놓인 신식 부엌으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 아파트의 시대가 열리고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부뚜막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엌은 한발 내려서야 하는 낮은 공간에서 동일 평면의 생활공간 속 입식(立式) 주방으로 진화했다. 밥상이 식탁으로, 개수통과 찬장이 싱크대와 수납장으로, 석유화로가 전자레인지로 바뀌며 주방은 온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거듭났다. 우리의 주방이 양성 평등 사회의 도래와 함께 스마트 가전을 갖춘 시스템 키친으로 진화하고 있는 오늘, 남자 아이들의 부엌 출입을 막았던 "이놈 고추 떨어진다"는 금기어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왕겨나 장작을 때서 밥해 먹는 아궁이 구조에서 현재의 시스템 키친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모두 겪고 자란 세대에 내가 속한다...ㅎㅎ...^-^
- 2013년 2월26일 화요일...수산나 -
아궁이 재연...화성 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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