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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허동현의 모던타임스]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23] 누가 헌책방의 시대는 저물었다 하는가/콩나물버스 버스차장 등 3장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23] 누가 헌책방의 시대는 저물었다 하는가

조선일보/오피니언/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09.13 23:04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깨침이 모두의 앎이 되는 지식의 공유(共有)가 일어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다. 누구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문일치(言文一致)의 문체, 대량 보급이 가능한 활자화, 그리고 유통의 장(場)인 책방이다. 1945년 광복이 찾아오자 우리나라도 이 삼박자가 맞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창피하도다. 종교서, 문학서, 정치서, 경제서 등 인간 실생활의 보감(寶鑑)이 될 만한 서적은 볼 수 없다('개벽' 1929년 3월)"고 개탄하게 했던 서울 종로 인근 고서점 중 상당수가 신간 서점으로 전업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1949년 조선출판문화협회가 펴낸 출판대감(大鑑)을 보면 광복 후 3년간 국사책의 경우 75권이 봇물 터지듯 간행되었으며, 그 중에는 초판만 5만부를 찍은 책도 있었다.

청계천 헌책방의 '세대교체' - 1960년대 서울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헌책방 두 곳의 대조적인 한글과 한문 간판은 새로운 독자인 한글 전용 세대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러나 6·25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폐허를 딛고 일어서던 1950년대에 도시마다 들어선 헌책방 거리가 그나마 지식과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의 책에 대한 갈망을 달래주었다. 그때 서울 평화시장 연변 청계천 일대에 형성된 헌책방 거리는 1970년대에 200여 곳을 헤아릴 만큼 번창했다. 없는 게 없던 이 서점가는 전성기 때 하루 2만명의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열 권 중 아홉 권이 새 주인을 찾던 헌책방의 책들이 1980년대 들어 대여섯 권으로, 다시 10년 뒤에는 한두 권으로 줄어들자 헌책방 수도 따라서 감소해 지금은 30여개만 남았다. 산업화의 성공에 따른 물질적 풍요, 대형 온오프라인 신간 서점의 등장, 도서관의 확충, 그리고 청계천 복원 등이 헌책방 거리 쇠퇴의 원인일 수 있다. 또 한글 가로쓰기로 편집된 교과서로 배운 한글 전용 세대들이 1990년대 이후 독자(讀者)로 대거 부상하면서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성이 세로쓰기 조판본을 기피한 것도 원인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로써 헌책방들이 몰락한 것은 아니고 새로운 타입의 독자와 함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따끈따끈한 지식과 정보가 담긴 새 책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책을 싼 가격에 유통하는 대형 중고서점이 성업 중이고, 역사적 희소성이 있는 고서(古書)의 사회적 상속을 중개하는 신고서점·북헌터·노마드북 등 온라인 고서점도 불황을 모른다.

 

 

나이거사줘 서울 평화시장 연변 청계천 일대에 형성된 헌책방 거리는 1970년대에 200여 곳을 헤아릴 만큼 번창했다....1970년대라면 내가 대학생일 때...ㅎㅎㅎ...그 때가 전성기 였네...그 옆에 쭉 늘어서 있던 실 파는 상가에 뜨개질실 사러도 자주 갔었는데...ㅎㅎㅎ...^-^

 

- 2013년 3월21일 목요일...성남학아카데미 강의 [고려 광종을 보는 또 다른 시각] 강의를 듣고 난 후...수산나 -

 

 

 

콩나물버스..."오라이"하며 버스차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사람들을 밀어 넣던 버스차장이 있던 시절을...ㅎㅎㅎ...^-^ 

 

 

버스 차장 모자와 가방......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물...^-^

 

 

1960~1970~1980년대 영화포스터...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