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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허동현의 모던타임스]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25] 추석 귀성… 속도전에 지친 사람들의 숨고르기였다/벌초하는 풍경 3장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25] 추석 귀성… 속도전에 지친 사람들의 숨고르기였다

조선일보/오피니언/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09.27 23:31

1970년 한가위, 서울역 - 1970년 9월 14일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귀성객들의 모습.
전통시대 추석(秋夕)은 죽은 이와 산 자, 그리고 마을공동체가 가을걷이의 풍요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추석날 아침이면 일가붙이가 모두 모여 햅쌀밥과 송편, 햇과일로 차례를 올린 후 조상의 묘소를 찾았다. 벌초를 끝내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풍년을 기원하는 소놀이와 씨름판을 벌였고, 밤이면 부녀자들은 둥근 달을 바라보며 강강술래를 돌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조선시대 한양의 연중(年中) 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1819)'에 담긴 민초(民草)들의 바람마냥 온갖 열매와 곡식이 무르익는 추석은 고픈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던 시대에 설날보다 소중한 명절이었다.

'시간의 문명화'가 단행된 근대 이후 태양력이 사람들의 일상을 규율하기 시작했지만, 음력 8월 15일 추석은 일제나 광복 후에도 국가권력이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6·25전쟁과 산업화에 따른 인구의 도시집중이 본격화된 1960~80년대 추석 연휴 기간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귀성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청운의 꿈을 좇아, 일자리를 찾아, 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잡기 위해 도시로 밀려들었던 사람들은 두 손 가득 선물 보따리를 챙겨들고 고향을 찾았다. '멈춤 없는 전진'이란 구호가 울려 퍼지고, 공장 굴뚝의 연기와 불 밝힌 사무실이 발전의 상징이던 그 시절에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와 같은 기차와 버스를 마다 않고 추석이면 고향을 찾은 것은 일터의 생존경쟁에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와 도시의 익명성이 초래한 고독을 달래 줄 가족과 이웃의 따스함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떠나 온 근원(根源)으로의 회귀(回歸)인 귀성(歸省)을 통해 시간과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가쁜 숨을 골랐다.

1990년대 핵가족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민속 명절인 추석의 의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촌의 부모들이 도시의 자녀를 찾는 '역(逆)귀성'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고, 조상 묘의 관리와 차례 상차림을 생면부지의 남에게 맡기는 '벌초 대행'과 '제사상 대행' 업체가 성업 중이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도 절반이 휴양지를 향하며, 공항은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마을공동체는 물론 가족마저 해체된 개인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해가 갈수록 돌아갈 고향과 품어 줄 가족의 품이 그리운 존재가 되고 말 것 같아 서글프다.

 

ㅋㅋㅋ추석 귀성… 속도전에 지친 사람들의 숨고르기였다...^-^

벌초...너무나 힘들다...벌초대행 업체 존재한다는 것 고맙다...ㅋㅋㅋ...^-^

 

-2013년 3월25일 월요일...수산나 -

 

벌초하는 풍경 1...^-^

 

벌초하는 풍경 2

 

벌초하는 풍경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