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악후 전성시대(1)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명성왕후
[출처] 사극 악후 전성시대(1)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명성왕후|작성자 김용상
요즘 TV에선 때 아닌 악후(惡后)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K2TV 수목드라마 '천명 :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엔 조선 최고의 악후로 꼽히는 문정왕후(박지영)가,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엔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선 문정왕후 못지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명성왕후(김선경)가 나오고 있다.
또 JTBC의 주말드라마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엔 정비는 아니지만 소현세자의 의문사에도 관련되고 소현세자빈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조 소용(김현주, 훗날 귀인 조씨)이 나온다.
조 소용에 대해선 이미 몇 차례 쓴바 있으니 생략하고 명성왕후와 문정왕후의 생애를 두 차례로 나눠 요약해본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선경이 연기하는 명성왕후는 1651년(효종 2) 세자빈(世子嬪)에 책봉되고, 1659년 현종이 즉위하면서 왕비에 책립되었다. 두뇌는 명석했지만 성격이 과격해 궁중 일을 처리하거나 아랫사람들을 다스릴 때 매섭고 거칠었다고 한다.
숙종이 보위에 오른 건 열네살 때였으니 마음 같아선 수렴첨정을 하고 싶었겠지만 왕실 최고 어른인 왕대비 장렬왕후(인조의 계비, '장옥정'에선 이효춘)가 버티고 있어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명성왕후는 편전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정사에 직접 간여했으며, 숙종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곤 했다 한다.
이 때문에 신료들 사이에선 '악후 문정왕후를 보는 것 같다'거나 '대비를 조관(照管)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조관이란 '살펴서 단속하거나 처리함'을 일컫는 말이다.
서인 편이었던 명성왕후와 그의 아버지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은 남인들을 축출하기 위해 불순한 계략을 몇 차례 꾸몄다. 특히 숙종 1년인 1675년 '홍수의 변(紅袖之變)' 때에는 명성왕후가 대신들 앞에 나와 울부짖는 추태를 벌이기도 했었다.
홍수의 변이란 명성왕후의 아버지 김우명이 인평대군(麟坪大君, 인조의 셋째아들)의 아들인 복창군(福昌君), 복평군(福平君)이 궁녀와 간통, 자식까지 보았다고 거짓 고변한데서 비롯된 사건이다.
홍수(紅袖)란 '붉은 옷소매'란 뜻으로 옷소매 끝동에 자주색 물을 들인 젊은 나인을 일컫는 호칭이다.
김우명은 복창군의 경우 인선왕후 초상 때 입궁해 김상업이라는 나인을 범해 임신시켰고, 복평군은 명성왕후가 왕비시절 중병을 앓자 현종이 불러 왕후의 치료를 보살피도록 했을 때 궁에 머물면서 내수사 관비 귀례를 강제로 범해 임신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모두 부인하고 심지어 명성왕후가 직접 붙잡아다 혹독한 고문을 가했던 귀례마저 억울하다며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그 어떤 물증도, 증언도, 증인도 없었고 당사자들도 강력히 부정하고 나서자 고변을 한 김우명이 난처해졌다.
숙종은 평소 모후와 외조부 김우명의 지나친 간섭에 염증을 느껴왔던 데다 부왕 현종이 총애했던 복선군(福善君) 형제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벌을 주고 싶지도 않아 하루 만에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러자 일부 신료들이 들고 일어났다. 종친을 무고한 김우명을 무고죄와 반좌율로서 다스릴 것을 주청하고 나선 것이다.
다급해진 명성왕후는 왕명을 사칭, 한밤 중에 대신들을 긴급소집해 소복차림으로 대신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는가 하면, 몸이 아프다며 병석에 누워 치료를 거부하는 것으로 숙종과 대신들을 압박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수치심과 분노를 견디지 못한 김우명은 낙향해 술로 여생을 보내다 그해 6월 죽었는데 홧병이라고도 하고 자살했다는 설도 있었다 한다.
그렇다면 명성왕후 측이 복창군 등을 무고한 까닭은 무엇일까.
남편 현종의 사촌동생이며 복창군의 아우인 복선군은 현종 12년에 발생한 대기근 때 동지사로 청나라 황제 강희제를 만나 식량을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강희제는 '너희 나라 백성들이 다 굶어 죽게 된 까닭은 신하들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너희 국왕에게 전하라'고 조롱하듯 말하면서도 복선군의 간청을 받아들여 많은 양식 등을 내주었다.
그 공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어서 복선군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고 그 세력도 날로 커졌다.
이에 대비 명성왕후는 잘못했다간 아직 어리고 병약한 아들 숙종의 보위가 복선군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한 끝에 복선군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평소 여색을 탐해 온 복선군의 형과 아우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명성왕후는 숙종 9년이던 1683년 12월 5일 창경궁의 저승전(儲承殿)에서 42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東九陵)
경내에 있는 숭릉(崇陵)에 안장되었다.
[출처] 사극 악후 전성시대(1)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명성왕후|작성자 김용상
[꽃들의 잔혹사]에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경덕궁으로 쫓겨나는 장면이 나오는데...[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숙종의 왕대비로 나오고...명성왕후는 숙종의 모후 이다...특히 숙종 1년인 1675년 '홍수의 변(紅袖之變)' 때에는 명성왕후가 대신들 앞에 나와 울부짖는 추태를 벌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명성왕후는 숙종 9년이던 1683년 12월 5일 창경궁의 저승전(儲承殿)에서 42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東九陵)
경내에 있는 숭릉(崇陵)에 안장되었다.
창경궁 저승전...현재는 사라진 전각 임...^-^
숙종의 모후이자 현종의 중전인 명성왕후 김씨가 이곳에서 승하했다. 경종이 왕세자 시절 주로 거처하였기에 경종의 사후 경종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도 이곳에서 살았다. 이후 사도세자의 동궁전이 되었다가 화재로 전소되었다
창경궁 명정문(보물 제3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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