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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이혼백서/전주향교 앞 '박진 효자비' 2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이혼백서

경향신문/오피니언/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법에 ‘간통 현장을 잡지 못하면 논죄하지 않는다(非奸所捕獲 勿論)’고 했습니다.”(<성종실록>)

1484년(성종 15), 원로대신 심회의 주장이다. 현감을 지낸 이윤검이 “(아내)손씨가 노비와 정을 통했다”면서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간통죄의 ‘증거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성종도 “현장을 잡은 것은 아니니 끝까지 추궁해도 사실파악이 힘들 것”이라고 판결했다(사진). 이것은 “의심스러운 죄는 가볍게 한다(罪疑惟輕)”는 <서경>을 따른 것이다. 남편으로서는 억울했을 것이지만, 증거 운운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조선의 <경국대전> 등에는 ‘이혼을 규정하는 법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대부의 이혼은 녹록지 않았다. 예컨대 1704년(숙종 30)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상대로 정식으로 이혼소송을 냈다. “시아버지를 욕하고, 더러운 물건을 제주(祭酒)에 섞고, 아들 집에 머물 때는 한밤중에 가출하는 등 패악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유씨 일족 50여명이 소장에 서명했다. 하지만 극심한 논쟁 끝에 소송은 기각됐다. “(이혼 규정이) 국법에 없다”는 이유였다. 이혼을 주장하는 측은 “<대명률>을 보면 ‘지아비가 이혼을 원하면 들어준다’는 조항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고 측’은 “<대명률>의 이혼조항은 ‘아내가 남편을 때렸을 경우’에 해당된다”고 반격했다. 부인이 욕설만 했지, 때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의금부 수장(검·경의 수장)인 판의금부사 홍수헌은 “아내 신태영의 죄상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법정증거주의’를 들었다. 또 ‘처가 있는데 처첩을 얻는 일(유처취처·有妻娶妻)’도 엄격하게 금지됐다(1413년).

남편이 죽은 뒤 처첩 간 적장자를 둘러싼 각종 소송이 난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입법이었다. 1452년(문종 2) 고태필이라는 이는 아내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후처를 맞이했다가 들통났다. 문종은 “죄질이 좋지 않다”며 “곤장 90대를 치고, 후처와 강제이혼 뒤 본처와 재결합하라”는 명을 내린다. 폭력남편 역시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1490년(성종 21), 조지산이라는 이가 사위(한환)를 고발했다. 사위가 아내(조지산의 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옷을 벗긴 뒤 마구 때렸다는 것이었다. 한환은 장인까지 구타했다. 장인은 “잘못하면 제 딸이 죽는다”며 “빨리 이혼시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성종은 강제이혼령을 내리고 한환을 유배시켰다. 처첩을 마음대로 들이고 내칠 수 있다며 조선시대를 꿈꾸는 남성들이 있다면? 아서라.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1452년(문종 2) 고태필이라는 이는 아내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후처를 맞이했다가 들통났다. 문종은 “죄질이 좋지 않다”며 “곤장 90대를 치고, 후처와 강제이혼 뒤 본처와 재결합하라”는 명을 내린다.

 

“법에 ‘간통 현장을 잡지 못하면 논죄하지 않는다(非奸所捕獲 勿論)’고 했습니다.”(<성종실록>)...현감을 지낸 이윤검이 “(아내)손씨가 노비와 정을 통했다”면서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간통죄의 ‘증거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성종도 “현장을 잡은 것은 아니니 끝까지 추궁해도 사실파악이 힘들 것”이라고 판결했다(사진).

 

 1490년(성종 21), 조지산이라는 이가 사위(한환)를 고발했다. 사위가 아내(조지산의 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옷을 벗긴 뒤 마구 때렸다는 것이었다. 한환은 장인까지 구타했다. 장인은 “잘못하면 제 딸이 죽는다”며 “빨리 이혼시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성종은 강제이혼령을 내리고 한환을 유배시켰다

 

사대부의 이혼은 녹록지 않았다. 예컨대 1704년(숙종 30)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상대로 정식으로 이혼소송을 냈다. “시아버지를 욕하고, 더러운 물건을 제주(祭酒)에 섞고, 아들 집에 머물 때는 한밤중에 가출하는 등 패악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유씨 일족 50여명이 소장에 서명했다. 하지만 극심한 논쟁 끝에 소송은 기각됐다. “(이혼 규정이) 국법에 없다”는 이유였다.

 

 

- 2013년 5월15일 수요일...수산나 -

 

전주향교 앞 '박진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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