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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시가 있는 아침] 냄비 하나가- 강은교(1945~ )/고양가을꽃축제 '나팔수' 3장

[시가 있는 아침] 냄비 하나가

[중앙일보] 입력 2013.10.04 00:49 / 수정 2013.10.04 00:49

냄비 하나가 - 강은교(1945~ )


낡은 냄비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누우런, 누덕누덕 우그러진 옷을 입고……한쪽 손잡이는 어디로 갔는지


외팔이 냄비 하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눈물 머금고……그걸 고치는 한 사람……그 사람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눈물 웃음 머금고……


어디로 가나 우리 모두 어디로 가나……가스레인지에서 내려와서 이 집 마루에서 내려와 맨발로, 신발도 못 신고……


냄비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세수도 못 한 외팔이 냄비 하나, 우그러진 분침을 들고, 별빛 바람 사이로 힐끗힐끗 달려가는 초침을 들고,


지평선에서 너희들 오늘도 헤매는구나, 구름의 살[肉]에 얹혀.


엄마는 뭐든 잘 못 버리는 사람입니다. 더는 입을 수 없이 작아진 셔츠의 단추랄까 고장 난 지퍼랄까 목이 늘어난 양말이랄까 금이 간 물컵이 있다면 그것조차 내 새끼라 하는 사람입니다. 엄마는 뭐든 버리면 죄라고 아는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살림을 짜게 해서가 아니라 살림을 재미나게 해서랄까요. 갈 데 없어진 단추에게 얘, 늙은 단추야! 하시고 목이 늘어난 양말에게 얘, 살 빠진 양말아! 하시고 금이 간 물컵에게 얘, 이 가는 물컵아! 하시니까요. 명명하기의 천재, 엄마들은 오늘도 설거지거리들에게 이름 붙이느라 젖은 앞치마 벗을 생각을 통 못하고 계시네요. <김민정·시인>

 


 

강은교(姜恩喬, 1945년 12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자고등학교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은교 소설가, 대학 교수
출생
1945년 12월 13일 (만 67세) | 닭띠, 사수자리
데뷔
1968년 '사상계' 등단
학력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1968년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5년 제2회 「한국문학상」, 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 2006년 제18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다. 

 

경력

  • 2001 ~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 1945 ~ 함남 흥원 출생, 연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 - 언론중재위원회 부산중재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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