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냄비 하나가
[중앙일보] 입력 2013.10.04 00:49 / 수정 2013.10.04 00:49
냄비 하나가 - 강은교(1945~ )
낡은 냄비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누우런, 누덕누덕 우그러진 옷을 입고……한쪽 손잡이는 어디로 갔는지![](http://nvs.uniqube.tv/nvs/article?p=joongang^|^12762093^|^1^|^joins.com^|^8e2957acedcaa79a15e3c65825a50300^|^%5B%uC2DC%uAC00%20%uC788%uB294%20%uC544%uCE68%5D%20%uB0C4%uBE44%20%uD558%uB098%uAC00^|^20131004004900^|^A001^|^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762093&ctg=20)
![](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joongang/12762093/article.joins.com/1/0)
외팔이 냄비 하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눈물 머금고……그걸 고치는 한 사람……그 사람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눈물 웃음 머금고……
어디로 가나 우리 모두 어디로 가나……가스레인지에서 내려와서 이 집 마루에서 내려와 맨발로, 신발도 못 신고……
냄비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세수도 못 한 외팔이 냄비 하나, 우그러진 분침을 들고, 별빛 바람 사이로 힐끗힐끗 달려가는 초침을 들고,
지평선에서 너희들 오늘도 헤매는구나, 구름의 살[肉]에 얹혀.
엄마는 뭐든 잘 못 버리는 사람입니다. 더는 입을 수 없이 작아진 셔츠의 단추랄까 고장 난 지퍼랄까 목이 늘어난 양말이랄까 금이 간 물컵이 있다면 그것조차 내 새끼라 하는 사람입니다. 엄마는 뭐든 버리면 죄라고 아는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살림을 짜게 해서가 아니라 살림을 재미나게 해서랄까요. 갈 데 없어진 단추에게 얘, 늙은 단추야! 하시고 목이 늘어난 양말에게 얘, 살 빠진 양말아! 하시고 금이 간 물컵에게 얘, 이 가는 물컵아! 하시니까요. 명명하기의 천재, 엄마들은 오늘도 설거지거리들에게 이름 붙이느라 젖은 앞치마 벗을 생각을 통 못하고 계시네요. <김민정·시인>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310/04/htm_2013100403511401144.jpg)
외팔이 냄비 하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눈물 머금고……그걸 고치는 한 사람……그 사람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눈물 웃음 머금고……
어디로 가나 우리 모두 어디로 가나……가스레인지에서 내려와서 이 집 마루에서 내려와 맨발로, 신발도 못 신고……
냄비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세수도 못 한 외팔이 냄비 하나, 우그러진 분침을 들고, 별빛 바람 사이로 힐끗힐끗 달려가는 초침을 들고,
지평선에서 너희들 오늘도 헤매는구나, 구름의 살[肉]에 얹혀.
엄마는 뭐든 잘 못 버리는 사람입니다. 더는 입을 수 없이 작아진 셔츠의 단추랄까 고장 난 지퍼랄까 목이 늘어난 양말이랄까 금이 간 물컵이 있다면 그것조차 내 새끼라 하는 사람입니다. 엄마는 뭐든 버리면 죄라고 아는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살림을 짜게 해서가 아니라 살림을 재미나게 해서랄까요. 갈 데 없어진 단추에게 얘, 늙은 단추야! 하시고 목이 늘어난 양말에게 얘, 살 빠진 양말아! 하시고 금이 간 물컵에게 얘, 이 가는 물컵아! 하시니까요. 명명하기의 천재, 엄마들은 오늘도 설거지거리들에게 이름 붙이느라 젖은 앞치마 벗을 생각을 통 못하고 계시네요. <김민정·시인>
강은교(姜恩喬, 1945년 12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5년 제2회 「한국문학상」, 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 2006년 제18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다.
경력
- 2001 ~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 1945 ~ 함남 흥원 출생, 연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 - 언론중재위원회 부산중재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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