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조·성가·기도문

[시가 있는 아침] 김밥 마는 여자-장만호 /남대문시장 4장

 

[시가 있는 아침] 김밥 마는 여자

[중앙일보] 입력 2013.10.14 00:10 / 수정 2013.10.14 00:10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1970~ )


눈 내리는 수유 중앙 시장

가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묽은 죽을 마시다 보았지, 김밥을 말다가

문득 김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 여자

끈적이는 생애의 죽간竹簡과

그 위에 찍힌 밥알 같은 방점들을,

저렇게 작은 뗏목이 싣고 나르는 어떤 가계家系를

한 모금 죽을 마시며 보았지

시큼한 단무지며 시금치며

색색의 야채들을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 놓고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오르는

삼색의 꽃들을


유명 요릿집에서 이름도 거창하게 달아 파는 궁중떡볶이와 시장 한구석에서 이름도 소박하게 붙여 파는 밀가루떡볶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무조건 후자입니다. 식재료 원산지 꼼꼼하게 따지라는데 내 여동생만 해도 어릴 적 불량식품 혀처럼 달고 살았어도 키만 쑥쑥, 1m76㎝까지 잘도 자란 걸요. 김밥도 그래요. 유명 체인점의 김밥보다 내키는 대로 간판 내건 구석진 동네의 좁아터진 분식집 김밥을 나는 더 선호합니다. 테이블에 가만 앉아 있으면 김밥을 마는 주름지고 투박한 손이 여지없이 보이거든요. 재료 몇 가지 없으면서도 김발에 힘 꼭꼭 주느라 길쭉길쭉 참 날씬했던 소풍날 아침 엄마의 김밥. 들판에 화단에 핀 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컬러감을 자랑하던 끈적끈적한 밥알 속 색색의 꽃들. 그래서 김밥은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걸까요. 영양만점 컬러만점 엄마손 김밥 한 줄. 아직 엄마가 못 되어봐서 그런가, 여하튼 제 특기는 모두가 김밥 말 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나 해대는 겁니다. <김민정·시인>

 

 


 

 

 

             장만호 시인

 

1970년 전북 무주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水踰里에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무서운 속도』(랜덤하우스, 2008) 가 있음.

[출처] [장만호 시인]|작성자 동화지기

 

 

남대문 시장 1

 

남대문시장 2

 

남대문시장 3...갈치집...^-^

 

남대문시장 4...갈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