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성장하려면
우리가 하느님께
무가치한 존재라면 세상이
우리를 소중하게 여긴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비난한다 해도 무슨문제가
되겠습니까?
칭찬은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지 못하고,
비난도 영원한 생명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려면 자신을
존중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욕망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참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주는
칭찬에 귀 기울이지
않아야 하며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가지는 단 한 가지
바람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필립 2, 3)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만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알퐁소 성인의 사랑의 기쁨 중에서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주는 칭찬에 귀기울이지 않아야 하며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가지는 단 한가지 바람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겸손해지는 것 입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립2,3)
나는 많이 소심한 편이다...^-^
성장과정에서도 "남들이 흉본다.../남들이 욕한다.../남들이 알면 어떡하려고 하느냐..." 등등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잔소리(?)를 세뇌교육 받듯 받았다...^-^
그래 그런지, 남들이 뭐라고 한마디를 하면...그 말을 박차고 나가는 기개 내지 용기(?)가 없다...ㅠㅠ...^-^
무언가 하고 싶을 땐...그냥 질러버려야지...만약 누군가에게 문의 내지 상담을 하다가...'NO' 소리를 들으면 실행을 할 엄두를 못낸다...ㅠㅠ...^-^
예를 들어 귀걸이를 달기위해 '귀를 뚫어야 하는데...
무심코 낼모레 귀를 뚫을 거라고 남편에게 말을 했는데...남편이 반대했다...그러면 귀를 못 뚫는다...ㅠㅠ...^-^
어느 날, 별안간 치기(?)가 생겨서...나도 한번 창조적 행동으로...세상의 관습을 깨기위한...유행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어 '묵주'를 목걸이처럼 하고 나갔다...ㅠㅠ...^-^
그 때가 월드컵 응원의 열기로...신성시 하던 태극기를 치마로 입고...머리수건으로 두르고 응원을 하던 때였다...ㅠㅠ...^-^
한 술 더 떠, 조선일보에서는 영국 국기가 사랑받는 존재로...방석 등 깔고앉는 소재의 문양으로 사용된다는 기사도 읽었다...ㅠㅠ...^-^
신성한 태극기의 변천사를 생각하면...얼마든지...묵주도 목걸이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선물로 받은 예쁜 묵주가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여 썩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예쁜 묵주와 어울리는 원피스를 입어...'묵주도 살리고/원피스도 살리고/친구생각도 살리는'...
1석3조의 생각에서 원피스를 뻗쳐(?)입고...묵주목걸이를 두르고...의기양양한척(?) 하며 외출했다...ㅠㅠ...^-^
만약, 누군가 한마디를 해도...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며...
꿋꿋하게 큰바위 얼굴처럼 나의 길을 가보련다 하고 내심 작심을 했고...그런데로 자신감도 있었다...ㅎㅎ...^-^
그러나, 처음 입고 간 첫날...바로 한마디를 들었다...ㅠㅠ...^-^
모란시장에 장보러 갔다가...나보다 3~4세 많은 듯한 상인아줌마가...
내눈을 똑바로 쳐다 보며..."이것, 묵주 아니유?" 한다..."예, 묵주 인데요."..."이런거 하고 다니면 안된다."고 정색을 하고 충고를 하신다...ㅠㅠ...^-^
그 날 이후 한번도 묵주목걸이를 할~ 엄두를 못 낸다...ㅠㅠ...^-^
꿋꿋하게 유행을 선도하겠다는 마음의 작심 내지 자신감은 어데(?)로 가고...
이것이 나의 한계이구나 하는 마음의 선긋기만 했다...ㅎㅎ...^-^
그냥~ 편하게 금 그어진 선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ㅠㅠ...^-^
그래서, 가끔은 요즘의 유행을 선도한 젊은이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예전에 비하면...의생활이 얼마나 편해졌는가?
정장 안 입어도 되고...반드시 블라우스는 언더로 안 입어도 되고...벨트 안해도 되고...스타킹 안 신어도 되고...가방을 메어도 되고...
감사해야할 패션이 한두가지가 아니다...ㅎㅎ...^-^
이렇듯, 남의 평가에 연연해하는 소심한 성격이 요즘에 빛(?)을 발한다...ㅠㅠ...^-^
고등학교 동창카페에 5개의 글을 올렸는데.....
카페의 글을 읽은 동창들의 반응이 어떤지 수시로 카페에 들어가 댓글을 읽는 나를 발견한다...ㅠㅠ...^-^
오늘 아침, 카톨릭 굿뉴스의 '우리들의 묵상'을 읽다가...소심한 나의 마음에 위로가 될 글을 찾았다...ㅎㅎ...^-^
"세상이 주는 칭찬에 귀기울이지 않아야 하며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립2,3)" ...ㅎㅎ...^-^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은 꿈에도 가져보지 않았으나...칭찬에 연연하는 마음은 확실히 있다...ㅠㅠ...^-^
오로지 사랑으로...겸손하게...카페에 글을 최선을 다해서 포스팅 했다면...
평가에 연연해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듣는다...ㅎㅎ...^-^
다음 부터는 카페에 글을 포스팅했다면...
24시간 동안은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 나만의 강제조치(?)로...
댓글을 보려는 마음을 자제해볼까 생각 중이다...ㅎㅎ...^-^
- 2014년 3월24일 사순제3주일 월요일에...수산나 -
백접초(나비바늘꽃, 흰색 가우라)<바늘꽃과
백접초(나비바늘꽃, 흰색 가우라)<바늘꽃과
백접초(나비바늘꽃, 흰색 가우라)<바늘꽃과
백접초(나비바늘꽃, 흰색 가우라)<바늘꽃과
백접초(나비바늘꽃, 흰색 가우라)<바늘꽃과
(사족)...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에게 경의를 표한다... ...
1926.6.10 평생 독신으로 살다 초라한 행색으로 전차에 치여 세상을 떠나다
"가우디는 바그너와 세잔 및 그 외의 예술가과는 반대로, 바르셀로나에서 혼자 혁명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지도 위에 카탈루냐의 위치를 표시하듯 미술사에서도 카탈루냐 지방의 위치를 표시함으로서, 다른 국가와 다른 분야의 천재들이 했던 모든 것, 앞서간 예술가들이 했던 모든 노력을 단 혼자의 재능으로 일궈낸 가우디를 발견하게 된다."
건축의 성자, 자신이 지은 최후의 역작에 묻히다
인용한 글은 1927년 푸란스시코 푸욜이 카탈루냐 출신인 가우디를 추모하면서 쓴 에세이의 마지막 문단이다. 약 일 년전인 1926년 6월 7일 가우디는 전차에 치어 3일 후인 10일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가우디는 너무 초라한 행색 탓에 아무도 이 거장을 알아보지 못해 너무 늦게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말년에 건축 작업에만 몰두한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가우디는 로마 교황청의 특별한 배려로 성자들만 묻힐 수 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하에 묻혔다. 가우디는 건축의 성자이면서, 실내 디자인과 장식 조각, 심지어 의자와 화장대에 이르기까지 제작한 20세기의 독창적인 예술가이다. 그의 전 작품에 드러나는 우아하고 기괴한 곡선과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를 건축에 사용한 그의 '집'들은 피카소의 그림과 견줄 수 있는 건축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거대한 영혼과 작품은 당대보다도 세월이 지날수록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교수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독창적인 학생
비록 실물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위대한 '작품'들은 도판으로 보아도 들어가고 싶고, 거닐고 싶고, 심지어 만지고 싶다. 건축물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그의 대표작인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구엘 공원’, ‘구엘 별장’, ‘사그라다 파밀리아’ 는 미켈란젤로나 피카소, 바그너처럼 작품으로 남아있다.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는 실용적인 공간이다. 벽에 걸어두고 보는 그림이 아니고, 음반으로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지만, 가우디는 건축물을 보는 이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1895년 바르셀로나 신도시계획 당시 세워진 연립주택으로 1910년 완성된 카사밀라(Casa Milà)의 1920년 모습과 현재 모습
1852년 스페인 레우스에서 태어난 가우디는 아버지가 주물제조업자였다. "내가 공간을 느끼고 보는 재능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와 조부와 증조부가 모두 주물제조업자였기 때문이다. 몇 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건축가인 내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물제조업자는 표면으로 부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가우디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전에 이미 공간을 본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설계도면에서 시작하여 부피를 창조해내는 조각가들이었다."
가우디는 자신의 재능을 타고난 유전자 덕분이라고 밝힌다. 가우디는 비록 가난한 집안에 병약한 소년으로 자랐으나 건축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가우디가 ‘가우디 건축의 성지’라고 불리는 바르셀로나로 간 것은 17세이며 건축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바르셀로나 대학 이공학부를 거쳐 바르셀로나 시립 건축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가우디가 졸업할 때, 학장 에리아스 토헨트는 “우리가 지금 건축사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 놈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가우디의 학교생활을 짐작해 하는 말이다. 학창시절, 그는 교수들 사이에서 논쟁과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독창적인 학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자 그는 생계를 위해 철 세공업과 같은 일을 시작했다. 물론 이 경험이 가우디 건축에 다 녹아 들어간다. 대장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망치를 들고 쇠를 두들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주물제조업자인 선대의 피를 이어받아 완성된 조각 같은 건축물
자연미와 조형미의 조화를 이룬 구엘 공원
그는 조물주의 손으로 작업했다. 모든 건축물의 설계도면으로부터 시작된 가우디의 정신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꿈틀거리는 건축물들은 조각 작품으로 변신한다.
'구엘 별장' 정면의 철제문은 철 세공품이다. 철문을 장식하고 있는 용의 몸체는 휘어진 철봉으로 표현하고 굵은 용수철을 휘감았다. 용의 다리들은 돋을무늬로 세공한 비늘이 덮고 있고, 왼쪽 발에 움직이는 연접 장치를 하여 문을 여닫도록 만들었다. 주물제조업자인 선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그의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선대의 피가 가우디라는 예술가를 탄생시켰으니, 그의 독창적인 건축물들도 문득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전통에 의해서 탄생한 바로셀로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직물업계의 거장 구엘의 후원
피렌체의 메디치 대공이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것처럼, 구엘이라는 부자가 가우디의 이상적인 후원자였다. 구엘은 직물업계의 거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우디가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투자한다. 그의 이름이 붙은 별장, 궁전, 공원이 가우디의 재능이 십분 발휘된 탁월한 작품이었다. 경제적인 후원을 구엘에게서 받았다면, 건축학적으로는 이슬람의 건축 양식과 아르누보 그리고 비올레 르 뒤크의 이론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뒤크의 <프랑스 건축 사전>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가우디는 뒤크의 가르침을 모든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자신만의 개성으로 수정 보안한다. 뒤크의 책을 통해 습득한 고딕양식은 '테레사 학원'의 모든 층에서 잘 나타난다. 테레사 학원은 청빈한 수도사들의 건물답게 가우디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만든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창적인 건축기법이 잘 살아있다.
평론가들은 가우디의 작품을 1890년대를 경계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 가우디의 진가는 후반부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건축물들은 후반기의 작품들이다. 특히 20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가우디'라고 명명할 수 있는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즉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건축에 사용된 모든 재료들이 하나의 생명력으로 재탄생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건축사에서 독특하면서 역동성이 넘치는 건축물들이다.
색채는 빛의 고통이라는 괴테의 말처럼 가우디 역시 건축 색감을 중요시했다. 가우디는 말한다. "건축은 색깔을 거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형태와 부피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색깔을 사용해야 한다. 색깔은 형태를 보안해주는 동시에 가장 분명하게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다." 가우디의 ‘카사바트로’ 기와의 색감을 보면 단순히 화려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자연의 색감을 느낄 수 있다. 부자들의 전원주택으로 설계된 구엘 공원에서는 자연미와 조형미의 절묘한 조화를 색감을 통해 보여준다. 소나무, 떡갈나무, 종려나무, 백리향 등의 나무와 재스민,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 건축자재로 사용된 타라고나 지방의 마른 돌멩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각각의 고유한 색과 불규칙한 배열이 자연의 풍경에 녹아 들어 있다. 구엘 공원은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미완의 대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위한 삶
가우디는 평생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를 건축할 때 예술가로서 날개를 달았다. 그 자신도 이 건축물에 감탄하면서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가우디가 이 대단한 건물의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1883년 가을이었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 간 이 작업 만에만 몰두했다.이 건축물은 서적상이자 발행인인 호세 마리아 보카베리야가 주도한 일이었다. 그는 성가족이 봉헌된 사원을 바르셀로나에 짓기로 결심하고 기금을 모아 당시 교구 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데 파올라덴 빌랴르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빌랴르가 건축의 기술 고문인 마르토렐과의 불화로 사임을 하자 가우디가 일을 맡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955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가우디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간이며, 손상된 인간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신을 위해 사용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 말년에 가우디는 건축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을 멀리하고 수도자처럼 살았다. 건축가로서의 명성과 열정이 종교적인 신성과 결합하여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건축물은 가우디 사후에도 계속 건축되고 있다. 가우디는 성가족 교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세 개의 파사드를 만들었다. 동쪽은 탄생의 파사드, 남쪽은 영광의 파사드, 서쪽은 수난의 파사드이다. 가우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첨탑이 빠진 탄생의 파사드만 완성된 상태였다. 이 파사드의 중앙 문은 사랑, 오른쪽은 믿음, 왼쪽은 소망의 문이다. '사랑, 믿음, 소망'이라는 신의 음성이 들려오는 문 앞에 서 있는 가우디를 상상한다. 그의 영혼이 깃든 건축물들을 통해 영원불멸의 신성을 잠시 엿본다.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가우디는 평생 강연도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은 건축가였다. 그러나 가우디가 지었다고 소개되어 있는 책이 있다. <가우디, 공간의 환상 >(이종석 역, 다빈치)은 가우디가 청년시절에 쓴 논문초고와 만년에 그를 방문했던 이들에게 남긴 말들을 모으고 정리한, 가우디의 건축관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더불어 그의 건축세계를 141개의 컬러 도상으로 함께 볼 수 있다.
19세말 유럽 및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 양식인 아르누보 전문가인 필립 티에보의 책 <가우디- 예언자적인 건축가 >(김주경 역, 시공사)는 가우디의 건축을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설명한 책이다. 아르누보는 장식을 중요시한 가우디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온 <안토니 가우디 >(마리아 안토니에타 크리파 저, 이영주 역)도 가우디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가우디와 관련된 책을 펼쳐 읽으면 글보다도 건축물에 압도당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손으로 '짓는' 사람이었다.
- 글
- 원재훈 시인, 소설가
- 글을 쓴 원재훈은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했으며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등의 시집과 <만남, 은어와 함께 보낸 하루>, <모닝커피>등의 소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작가이다.
'단상. 감사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신선해야 한다(2014.3.27.목)/분당 중앙공원 민들레 나물, 갯버들 수꽃 등 13장 (0) | 2014.03.27 |
---|---|
할미꽃 단상(2014.3.26.수)/할미꽃 7장 (0) | 2014.03.26 |
감동사연 7가지(2014.3.17.월)/때죽나무 18장 (0) | 2014.03.17 |
좋은 친구는 꽃과 벌 관계처럼...여의치 않다면 마음의 그림자 처럼(2014.3.16.일)/꿀벌 8장 (0) | 2014.03.17 |
형제를 심판하는 사람(2014.3.14.금)/헝가리 왕실의 보물 6장 (0) | 2014.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