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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단]묘청과 김부식-역사 속의 라이벌(2015.4.16.목)

 

 

'빛나거나 미치거나' 왕소-황보여원, 실제는 최고의 정치파트너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주인공 왕소와 그의 부인 황보여원의 금슬을 실제로 어땠을까?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태조 왕건(남경읍 분)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 호족들의 손에 놀아나는 고려를 황제의 나라로 다시 세우기 위한 고려 태자 왕소(장혁 분)와 그의 첫 사랑 발해의 마지막 공주 신율(오연서 분)의 로맨스를 그린 퓨전사극로맨스다.

로맨스사극인만큼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왕소와 그의 부인 황보여원(이하늬 분)은 극중 사랑없는 정략결혼을 맺은 부부로 등장한다. 가문을 지키기 위한 혼인일뿐 사랑은 없는 사이인 것이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진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왕소는 왕건의 세번째 부인 충주 출신 신명순성황후 유씨의 둘째 아들이고, 황보여원은 황주 출신 신정황태후 황보씨의 딸로 후일 대목황후가 된다. 이들은 실제로는 태조 왕건을 아버지로 둔 이복 남매지간이다.

 

어떻게 이복 남매지간이 부부의 연을 맺었을까? 태조 왕건은 삼한 통일의 대업을 위해 많은 지방 호족들과 혼인 동맹을 맺었다. 29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자식 또한 25남 9녀에 달했다. 혼인 동맹을 맺은 호족들은 자신들끼리 혼인을 맺어 세력을 공고히 하려했다.

황보여원은 가문의 안위를 위해 저주받은 황자로 기피하던 왕소와 혼인을 결정한다. 비록 혼인으로 부부의 연은 맺었지만 왕소와 황보여원은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마치 같은 배를 탄 원수 오월동주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대목왕후는 훗날 고려 5대 황제 경종을 비롯해 효화태자, 천추전부인, 보화궁부인, 문덕왕후를 낳았다. 또한 남편 광종을 황제에 올리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황제의 런닝메이트로는 최고의 파트너였던 셈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는건 왕소가 황제에 즉위한 후부터다. 광종은 호족의 세력을 꺾기 위해 다양한 개혁 정책을 펼쳤는데 그중 호족 세력의 목에 비수를 꽂은 것은 노비안검법이었다. 대목황후는 남편이 아닌 가문의 편을 들어 노비안검법을 반대했다.

광종은 주위의 반대에도 개혁 정책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호족들을 숙청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이복형제들은 물론 아들인 유(훗날 경종)마저 죽이려했다. 때문에 경종은 불안한 소년 시절을 보냈고, 황제에 즉위해서도 방탕한 삶을 살았다.

왕소와 황보여원은 훌륭한 정치 파트너였지만 사이좋은 부부는 아니었다. 이유는 가문의 존망이 개인의 생사를 결정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은 더 살벌한 사이였다.

여창용 기자 ent1@segye.com

 

고려 시대 왕조의 계보

                      

                         (1) 태조(918-943)                                                   허기(이허겸)인천이씨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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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혜종 (3) 정종 (4) 광종  대종    안종                       딸(配김은부-안산김씨)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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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경종 (6)성종 (8)현종+원성황후(1) + 원혜황후(2)  원평황후(3)          이자연   이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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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7) 목종 (9)덕종 (10)정종 (11)문종 (配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 이석      이정       이호

                                                                               ㅣ                                                ㅣ         ㅣ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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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순종          (13) 선종(配사숙왕후)     (15) 숙종 +명의왕후 유씨    사후태후 원신궁주 이자겸
                                                         ㅣ (配원신궁주)             ㅣ                                                             ㅣ

                                                                     ㅣ                                                     ┏---------------------┓

                                                (14) 헌종     왕윤         (16) 예종(配(1)순덕왕후) (1)순덕왕후 (2)복창원주 (3)연덕궁주

                                                                                             ㅣ      

                                                                                     (17) 인종(配(2)복창원주, 配(3)연덕궁주)

 

 

 

 

고려 인종

고려의 제17대 왕(1122~46 재위)으로 재위 기간 중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일어남.

예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자겸의 둘째 딸 순덕왕후이다. 비는 이자겸의 셋째 딸 및 넷째 딸인 폐비 이씨, 중서령 임원후의 딸 공예왕후, 병부상서 김예의 딸 선평왕후이다. 1122년 외조부 이자겸 등에 의해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인종은 외가인 이자겸의 집에서 자란데다가 이자겸의 세 딸을 비로 맞이했기 때문에, 즉위 초부터 이자겸이 권력을 휘둘렀다. 1126년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키고 궁궐에 불을 지르며 2차례나 그를 독살하려 했다. 그러던 중 척준경과 이자겸의 사이가 벌어지자, 척준경을 이용하여 이자겸을 제거했다. 이듬해에는 정지상의 탄핵으로 척준경도 섬으로 귀양 보냈다. 서경 천도를 위해 서경에 대화궁을 짓기도 하였으나, 개경 세력의 반대로 서경 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출처]브리태니커- 고등 한국사 <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발전 < 고려의 성립과 발전

 

정중부 무신의 난 수염 불장난


 

정중부는 해주(海州) 사람으로 용모가 우람하고 눈동자가 모지고 이마가 넓으며, 얼굴 빛이 백옥 같고 수염이 아름다우면서 키가 7척이라 위풍이 늠름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고을에서 그를 군적에 올려 그의 팔을 매어 수도인 개성으로 보냈는데 재상인 최홍재가 군사들을 가리다가 그의 풍채를 보고 비범하여 여겨 팔을 맨 것을 풀어주고 공학금군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인종(재위 1122~1146) 때 처음으로 초급장교 정도의 직책인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었으며, 이 때 정중부가 평생의 원한을 가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고려사에는 섣달 그믐(제석; 除夕)에는 역귀를 쫓는 의식을 했는데, 각 신하들이 각자 일종의 장기자랑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장기자랑은 잡기(杂技)라고만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귀신쫓는 춤 같은 것을 췄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서로 날뛰고 즐기는 중에 김부식의 젊은 아들인 내시(內侍) 김돈중이 무신들을 만만히 보고는, 당시 견룡대정이었던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워먹는 사건이 발생한다. 야사에 따르면 정중부의 수염이 길고 멋지게 생긴 것을 보고 '무신 따위에게 저렇게 멋진 수염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질투하여 태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알다시피 잘 키운 털이라도 그슬리면 그냥 말려버린다. 당연히 빡친 정중부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김돈중을 때리고 욕했는데 문제는 김부식이 왕한테 정중부를 때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시 왕이었던 인종은 그걸 허락했다.

인종은 정중부를 아끼는 사람이었고, 은밀하게 도망다니게 해줘서 실제로 때리지는 않았다.


이 때부터 정중부는 수십년 동안 김부식 부자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정중부는 다시 벼슬하여 1146년에 교위가 되었으며, 이 때 어사대에서 왕의 명령으로 수창궁 북문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였다. 그런데 정중부와 산원인 사직재가 마음대로 열고 드나들자 어사대에서 처벌하라고 청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이후 상장군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다혈질이고, 막나가는 경향이 없진 않은데도 인종과 의종 모두 정중부를 좋아했던 것을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정중부의 오랜 원수 중 한 명인 김부식은 1151년에 사망한다.


의종은 놀러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1164년에는 인지제(仁智齊)라는 곳에 간다. 그런데 법천사의 승려인 각예가 대접하겠다고 해서 의종은 달령원(獺嶺院)까지 또 다시 가서 술 대접을 하였으며, 1166년에는 왕이 성수원(聖壽院)에서 각예와 함께 연회를 베풀었는데, 성수원은 각예가 창건한 절이다. 의종은 여러 학사들과 놀러다니며 끝없이 시를 짓고 화창하였는데, 정중부를 포함한 호위군이었던 여러 무신들은 먼 길을 질질질 끌려다니며 피곤하게 호위나 서게 되었다. 이에 들러리가 된 무신들은 불만이 쌓여서 비로소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품게 되었으며, 왕이랑 문신은 시나 지으면서 노는데 무신들은 거기에 끼지도 못하였다.


문신들은 계속 무신들을 얕봤고 멸시하였는데 특히 좌부승선인 임종식과 기거주 한뢰가 왕의 총애만 믿고 무관들을 업신여기자 더욱더 분노하였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170년에 한뢰가 수박 경기에 참여했다가 지쳐서 나가 떨어진 상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린 사건이었다.
정중부가 한뢰에게 '네가 비록 문관이나고는 하나 이소응은 3품 벼슬을 지내고 있는데 너 따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라고 분노했으며, 한뇌의 직책 기거주는 종5품으로 이후의 사관에 가까운 직책이므로 대장군인 이소응보다 당연히 품계가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장군은 무신이 올라갈 수 있는 두번째로 높은 품계로 정중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과거의 굴욕이 비췄던 것으로 보이며, 과거에는 짬이 없어서 맞을 뻔 했다고 쳐도, 무신 최고참이 백주 대낮에 맞는다는 것은 자기도 평생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의종이 문신과 무신을 화해시키기 위해 수박대회를 연 것인데, 문신들이 계획적으로 판을 파토낸 것이다. 물론 의종 자신이 놀러다니면서 무신들을 불만스럽게 만들었으니 자신도 별로 할 말은 없었고, 애초에 수박 한 번 재밌게 한다고 풀릴만한 원한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너무 늦었던 것이다.

 

정중부는 1170년 8월에 이고, 이의방 등과 함께 반란을 주모하여 의종이 흥왕사에서 보현원으로 행차하자 순검군을 동원하여 정변을 일으켜 왕을 호종하는 문신들을 모두 죽이고 개성에 들어가 문신 50명을 죽였다. 이고가 문신들을 모두 죽이자고 했지만 이를 만류하였으며, 이 때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은 도망쳤지만 시종의 밀고로 인해 자신의 동생과 함께 같이 잡혀 죽은 것으로 볼 때 인망이 없긴 없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9월에 의종을 폐위하여 거제현으로 쫓아내고 태자를 진도현에 쫓아내면서 태손을 죽이면서 명종을 즉위시키면서 서해도 군현을 자신의 고향인 해주에 편입시켰다. 이후 참지정사(參知政事),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을 거쳐 문하평장(門下平章)으로 승진하였다가 10월에 이고, 이의방과 함께 벽상공신으로서 공신각 위에 초상이 그려졌다.
1172년에 북면 병마 판행영병마 겸 중군 병마 판사에 임명되었으며,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면서 장순석, 유인준 등 거제도의 의종을 데려와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장군 이의민, 장군 산원, 장군 박존위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남로로 가게 하면서 또다른 군사를 서해도로 보내어 김보당의 난을 진압한다. 1173년에는 문하시중에 임명되었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장난처럼 태운 사소한 사건이 무신의 난이 일어나고 고려는 무신정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신체발부는 부모로부터 받았다는 조선 유교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조그만 불씨가 역사를 바꾸듯이 사소한 불장난으로도 화재가 일어나고 한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으면 화상흉터를 입게 되며 그 사람은 치료과정이 더디니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등을 입기 쉽다. 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을 수도 있으며 불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게 된다. 가장 오래갈 화상흉터는 예전에는 치료법이 없다고 여겨져서 지레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화상흉터를 B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 치료원리는 진피 콜라겐을 자극해서 피부를 재생시키는 방법인데 치료기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상담 및 치료를 서둘러야한다.

 

 

 

[묘청과 김부식-역사 속의 라이벌]

 

매주 목요일 10시~12시에 실시하는 '서현문화의 집-성남학아카데미'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묘청과 김부식-역사 속의 라이벌>이다...강사는 김주* 박사이다...ㅎㅎ...

 

 '서현문화의 집-성남학아카데미' 강의는 2011년 4월부터 듣기 시작했으므로...지금 만 4년이 되어간다...ㅎㅎ...

분기별로 답사도 가므로...한국의 역사, 지리 등에 대해서 많이 유식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ㅎㅎ...

 

요즘 TV 드라마 중 고려시대를 다룬 퓨전사극로맨스 '빛나거나 미치거나'가 있다...오연서-장혁의 러브라인도 재미있지만...

고려 태조 왕건이 호족들의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하여...지방호족마다 부인을 두어...29명의 부인과 25남9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 자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미루어 짐작 내지 공감가는 장면들이 있어 흥미가 간다...

 

드라마의 주연인 장혁은 나중에 광종이 될 왕소이고...왕소의 부인은 황보여원(이하뉘 분)인데...이복누이 관계이다...

왕소는 왕건의 세번째 부인 충주 출신 신명순성황후 유씨의 둘째 아들이고, 황보여원은 황주 출신 신정황태후 황보씨의 딸로 후일 대목황후가 된다. 이들은 실제로는 태조 왕건을 아버지로 둔 이복 남매지간이다....ㅠㅠ...드라마 상의 현재 왕은 '정종'인데 왕소는 친동생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해서인지...고려 초기 왕의 계보까지 외웠다...ㅎㅎ...

태조 왕건/ 2대 혜종/3대 정종/4대 광종(왕소)/5대 경종 등...이런 순서로 나간다...

김주* 박사의 <묘청과 김부식-역사 속의 라이벌> 강의를 들으니 무척이나 재미있다...

 

묘청과 김부식은 제17대 왕인 '인종' 때 일어난 사건이다...

'인종'은 14세 때 왕위에 올랐고...어머니가 이자겸의 둘째 딸 '순덕왕후'이고....'인종'의 비로 이자겸의 세째 딸, 네째 딸 2명이 있다...ㅠㅠ...

인종은 어릴 때 이자겸의 집에서 자란데다 어린 나이인 14세에 왕위에 올랐고...이자겸의 딸을 두명이나 비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척인 이자겸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듯 할 것을 명백할 것이다...ㅠㅠ...

그래도 이자겸은 욕심이 안찼는지...'도참사상(성에 '木'자가 있는 자가 왕이 될 것이다.)'을 염두에 두고...

왕위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반역행위인...'이자겸의 난(1126년)'을 일으켰다...ㅠㅠ...

 

인종은 이자겸의 부하인 '척준경'을 시켜 이자겸을 제거하지만...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귀족들의 착취로 백성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졌고 고향을 등지고 유랑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개경은 지덕이 쇠하므로...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서경천도설'이 나오게 된다...

 

'서경천도설'을 주장한 사람이 승려 '묘청'이다...

'묘청'은 이밖에도 인종에게 자주성을 강조하여 고려가 금나라의 제후국인 아닌 황제국으로 처신하자...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인종이 처음에는 묘청의 주장에 솔깃했으나...나중에는 묘청을 멀리하였다...

이에 묘청이 황당무게한 사기술을 도입했다...ㅠㅠ...

 

"떡 속에 기름을 채워서 대동강 물에 가라앉혀 두고...기름이 물에 뜨게 한 다음...

대동강에 신령한 용이 침을 토하여 서기가 서린다고 주장하며... 서경으로 천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꾸민 일임이 발각이나 신뢰를 더욱 잃었다."

 

이에 묘청이 '묘청의 난(1135년)'을 일으켰는데...김부식이 이끄는 정부군에 의하여 1년여만에 진압되었다...

김부식은 경주 김씨...신라계 사람이다...고려가 건국될 때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투항하면서...신라의 귀족들도 함께 투항...

고려시대 신라계 귀족들이 요직에 많이 등용되었다고 한다...

 

나의 남편도 경주 김씨...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 경주 김씨라고 하니 괜히 반갑다...ㅎㅎ...

김부식은 유학자, 정치가, 역사가라고 한다...인종이 명하여 편찬한 삼국사기는 '관찬사서' 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본기 10권/신라본기 12권/백제본기 6권'....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부분이 신라 사람이라고 한다...

김부식이 경주 김씨...신라계 귀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다...ㅎㅎ...

 

고려 인종 때 도참설(성에 '木'자가 있는 자가 왕이 될 것이다.)을 염두에 둔 '이자겸의 난(1126년)' 이후 정치세력은...

신진세력...서경천도설/ 독자 연호를 쓰는 황제국(자주국)/ 북진정책과 고구려 계승....을 주장했던 '묘청 등의 서경파'와...

기성세력...수도 개경 유지/금나라와 사대관계를 유지/ 유교 사상과 신라 계승...을 주장하는 '김부식 등의 개경파'가  대립되었다...

결국, '묘청의 난(1135년)'은 김부식 등의 기성 문벌세력에 의해 몰락하였는데...

김부식 등의 기성 문벌세력이 너무 강대하져 이후 무신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다...ㅠㅠ...

 

고려시대 '무신의 난' 계기는...

김부식의 아들이 궁중연회에서 무신인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모두 태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와같은 행태의 문신들의 무신에 대한 수모, 푸대접, 불만 등이 누적되어 생긴 것이라고 한다...ㅠㅠ...

 

고려시대!!...조선시대와는 매우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나라 임을 알게 되었다...ㅎㅎ... 


 - 2015년 4월17일 금요일 오후 9시5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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