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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아침묵상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2016.6.12.화)/백할미새 5장


[아침묵상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016년 7월12일 연중15주간 화요일,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종교 도시로서, 종교 교육도 잘 이루어졌던 도시입니다. 또 카파르나움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업이 번성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편에 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이 윤택하고 평화로우면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신앙도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지지 못하고, 최소한의 계명 유지와 외적인 형식 위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이 도시들은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들과 풍요로움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 결국 예수님의 꾸지람을 피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부족할 때 주님을 찾습니다. 부족함은 우리 마음에 아쉬움을 주고 그 아쉬움이 커지면 간절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풍족할 때 오히려 주님을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풍족함으로 우리에게 더 큰 사명과 임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굿뉴스-우리들의 묵상 '울림이 있는 글'>

1. 하느님 앞에 김시하는 마음과 겸손을 잃는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주신 축복을 가로챈 '배신자로 낙인' 찍힐게다...회개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다....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풍요로움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면 결국 그분의 꾸지람을 피하지는 못하리라....가시 틈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감사하기보다는 가시에 찔렸다고 툴툴거리기만 한다. 많이 받은 축복에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두고 두루두루 불평만 한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이는 참으로 불쌍한 이다.(박윤식)


2. 우리 역시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주님을 알아볼 수 없으며,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후회만 하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 안에서 만족과 기쁨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 처음 살아보는 오늘, 그러한 설레임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빠다킹 신부)


3. 코라진, 벳싸이다, 가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열심히 활동하신 지역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필립보는 벳사이다 출신입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 활동의 근거지요,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은총을 거부하였고 결단의 시간을 낭비하였기에 불행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12,14)고 하셨으니 마음을 다잡아 오늘을 충실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불속에 던지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니 만큼 알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먼저 자신을 잘 살핀다면 심판은 기쁨이요, 곧 하늘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두려워 마십시오. 자신을 갖고 심판을 맞이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기를 다짐하며 이 날을 봉헌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면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내가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구원됩니다. 만일 내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저는 단죄 받게 되는데 이것은 그분에 의한 단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내리는 단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3년 3월 29일 콜로세오 십자가의 길에서 행한 연설).(반영억 라파엘 신부)

 

4. 오늘 1독서의 장면이 사드 배치 문제로 뒤숭숭한 불안한 국내 현실과 비슷합니다.


‘아람이 에프라임에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앞에 떨 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


우리의 최고의 가이드이신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위로와 격려의 처방을 주십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마지막 대목이 오늘 제1독서 말씀의 요약입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고故 거산 김영삼 대통령의 좌우명, 불신불립不信不立과 일치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불신불립을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는 불신불립不信不立은 관계에 있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처럼 하느님을 잊고 공정과 정의를 상실한 

불의와 죄악이 만연한 우리의 부패한 현실은 아닌지 성찰하게 합니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제1독서가 ‘믿음’이 주제라면 복음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제1독서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9


 1 우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하즈 시대에,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2 아람이 에프라임에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
3 그러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아르 야숩과 함께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즈를 만나, 4 그에게 말하여라.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5 아람이 에프라임과 르말야의 아들과 함께 너를 해칠 계획을 꾸미고 말하였다. 6 ′우리가 유다로 쳐 올라가 유다를 질겁하게 하고 우리 것으로 빼앗아, 그곳에다 타브알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자.′ 7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8 아람의 우두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우두머리는 르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다섯 해만 있으면 에프라임은 무너져 한 민족으로 남아 있지 못하리라. 9 에프라임의 우두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르말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5.  예수님께서는 참회하라는 부르심을 거부하는 도시들을 저주하면서 하느님의 엄중한 경고를 선포하십니다. 퇴폐가 극심했던 코라진과 벳사이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는 이 저주의 말씀은 그분의 간절한 사랑의 호소입니다.

하늘나라를 거부하는 자들은 나라의 신비를 알지 못하지만, 오히려 보잘것없는 겸손한 이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늘나라는 감춰져 있으면서도 드러나고, 거절당하면서도 환영받는 하느님의 선물인 셈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활동은 결단을 요구하며 재래식 가치관을 전복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많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의 가장 심각한 죄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무감각과 서로에 대한 무관심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 생애에 걸쳐 드러났던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간절한 사랑’에 대하여 ‘느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시며 계속 일하고 계시는 그분에 대한 관심과 느낌이 없다는 것은 근본적인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무감각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메마른 사랑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느님께로 자신을 통째로 되돌리는 것이며, 마음을 온전히 갈아 넣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사를 예수님의 눈으로 다시 보기를 시작하는 것이며, 모든 이들에게 가슴으로 다가감으로써 ‘느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의 회개를 말하고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느낌’을 회복해야겠지요.

서로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번민, 사랑과 분노, 외로움을 ‘더불어’ 느끼려는 마음과 움직임이 간절해지는 때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움직임이 없는 나 자신이 바로 코라진과 벳사이다일 수 있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향하여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이 매섭게 내리치실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께 돌아갈 채비를 할 때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퇴폐가 극심했던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는 이 저주의 말씀은 그분의 간절한 사랑의 호소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결단을 요구하며 재래식 가치관을 전복시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 생애에 걸쳐 드러났던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간절한 사랑’에 대하여 ‘느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시며 계속 일하고 계시는 그분에 대한 관심과 느낌이 없다는 것은 근본적인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느님께로 자신을 통째로 되돌리는 것이며, 마음을 온전히 갈아 넣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사를 예수님의 눈으로 다시 보기를 시작하는 것이며, 모든 이들에게 가슴으로 다가감으로써 ‘느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의 회개를 말하고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느낌’을 회복해야겠지요.

서로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번민, 사랑과 분노, 외로움을 ‘더불어’ 느끼려는 마음과 움직임이 간절해지는 때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움직임이 없는 나 자신이 바로 코라진과 벳사이다일 수 있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향하여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이 매섭게 내리치실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께 돌아갈 채비를 할 때입니다.


제1독서가 ‘믿음’이 주제라면 복음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믿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는 불신불립不信不立은 관계에 있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느님 앞에 김시하는 마음과 겸손을 잃는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주신 축복을 가로챈 '배신자로 낙인' 찍힐게다...

회개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풍요로움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면 결국 그분의 꾸지람을 피하지는 못하리라....


가시 틈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감사하기보다는 가시에 찔렸다고 툴툴거리기만 한다.

 많이 받은 축복에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두고 두루두루 불평만 한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이는 참으로 불쌍한 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면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내가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구원됩니다.

만일 내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저는 단죄 받게 되는데 이것은 그분에 의한 단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내리는 단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주님을 알아볼 수 없으며,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후회만 하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 안에서 만족과 기쁨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 처음 살아보는 오늘,  설레임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 2016년 7월12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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