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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아침묵상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2016.7.17.일)/송골매 5장


[아침묵상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2016년 7월17일 주일, 연중 제16주일 [농민주일]...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제1독서 창세기 18,1-10ㄴ에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 세사람을 극진히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그네 세사람이 천막어귀에 서있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땅에 엎드려...

<나리,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세사람에게 발을 씻고, 빵도 먹고 원기를 돋은 다음에 길을 떠나라고 부탁한다.

또한 사라에게 빵을 구우라고 명령하고, 송아지 한마리를 서둘러 잡아 요리하라고 하인에게 주어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도 대접한다...

그들이 먹는 동안 나무 아래에 서서 시중들기까지 하였다.

사막이라는 악조건에서 나그네 세사람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알기에 아브라함이 이런 극진한 대접을 하였으리라고 짐작을 해본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나그네에 대한 극진한 대접을 믿음의 후손인 우리도 본받아야 하리라.


<나리,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8,1-10ㄴ
그 무렵 1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3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5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7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여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

이에 마르타가 자기 혼자 시중을 들므로, 마리아도 시중을 들게 예수님께 일러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하면서...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오늘날, 마르타는 활동의 신앙인, 마리아는 관상의 신앙인을 대표한다고 한다.

복잡다단한 21세기 현대사회의 삶은 다양하다. 활동의 신앙인이나 관상의 신앙인이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모두 중요하다.

마리아를 향한 마르타의 질책(?)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좋은 몫 선택을 옹호(?) 하셨다.

우리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굿뉴스-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하느님의 신성을 품고 가장 인간다워지기 위하여 서로를 환대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몫, 곧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필요한 한 가지(10,42)를 지녀야겠지요. 그것은 하느님을 받아들여 차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분과 함께 하며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삶이야말로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다운 모습임을 상기하는 은총의 날이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하는 우리는 구별하여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관계를 기회로 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로 내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내 자신의 사랑을 시험하고 인내를 시험하는 기회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로 삼으려 하는 이에게는 어떠한 만남도 두려움이 아니라 기다려짐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배가 뒤집혀 다 죽게 되었는데 당신은 두렵지 않느냐고. 그 노인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나에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큰 딸은 몇 년 전에 잃고 지금은 작은 딸을 찾아가고 있는 길입니다. 만약 이 배가 뒤집혀 죽게 되면 천국에 있는 큰 딸을 먼저 만나게 될 것이고 다행히 배가 무사히 항구에 닿게 되면 작은 딸을 먼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만남의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군요.” (요셉신부)


3. 하느님의 말씀을 품어야 그분을 알아 뵙고 그분과 얼굴을 맞대고 살 수 있다.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황홀감과 무아지경처럼 행복의 극치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말씀에서 멀어지면 온갖 이기심으로 가득 채워져서 하느님을 뵙지 못할 뿐더러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마음이 더러우면 만사가 더럽게 보인다. (박영식 야고보 신부님)


4. 관상이 활동보다 우월하고, 선비가 농사짓는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그런 것의 우열(愚劣)을 논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이 다양할 뿐입니다. ...

오늘 복음은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를 등장시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라고 우리에게 권합니다. 세상의 잡다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권합니다....우리의 나라에는 차별과 서열과 우월감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관상하는 사람과 활동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차별들을 끊임없이 만들면서 우리의 나라에 삽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차별들을 그분의 자비와 사랑의 실천, 곧 섬김으로 극복하는 그분의 나라입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5. "아님 말구!"는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있어서 매우 필요한 자세이며,

더 나아가 참으로 "거룩한 순명"의 자세입니다.(이해욱 신부)


6. 매일매일의 소음과 번잡함은 자주 하느님의 현존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간적이며 일상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의 가치’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가치는 우리 삶 안에서 늘 감춰 있습니다. 이 가치를 늘 찾아야 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매일의 ‘성소’입니다. 그래서 매일의 우리 삶은 하느님의 신비를 찾고 만나는 ‘영적 순례’입니다.


- 마르타와 마리아는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한 하나의 상징적 인물 혹은 모델입니다. 그러나 마르타와 마리아는 서로 분리된 인물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마르타의 모습과 마리아의 모습이 다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델을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치시키고 통합해야 합니다. 마르타의 삶을 사는 것만큼 마리아의 삶도 살아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주위를 기울이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힘은 ‘참된 포도나무’(주님)에 붙어 있을 때만, 곧 생명과 사랑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의지가 나오는 참된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확고하게 유지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
사실 하느님은 우리를 대부분 ‘마르타’처럼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곧 하느님은 매번 더 우리가 ‘마리아’처럼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가 ‘좋은 몫을 선택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부르셨습니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아무 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며아무 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마라.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나,하느님은 변하지 않으시도다.인내는 모든 것을 이겨내도다.하느님을 소유한 이는 아쉬울 것이 없나니하느님만으로 충분하도다. (인영균 끌레멘스 수사신부)


7. 우리 모두 신앙생활의 거품을 거둬내고 주님께 내 자신을 의탁하고, 나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을 함께 나누면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하신 그분의 수용 자세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 현세의 삶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완전하시고 우리의 삶을 당신의 뜻대로 채워주시는 하느님 때문에, 삶에 불평불만을 터뜨리기보다는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기적적인 현상을 찾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의 인격과 행위를 받아들이고 사회 정의와 이웃 사랑을 실행하는 거품을 뺀 속이 꽉찬 신앙인이었으면 합니다.


- 오늘도 살아있는 표징 자체요 표징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품고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그분의 사랑과 정의를 실행하는 삶을 통해 기쁘게 회개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8. 주님께서 말씀이든 성체 든 하나만 선택하라시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가톨릭 신자라면 당연히 성체를 선택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선택하겠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말씀을 잃으면 성체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으로 충만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성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을 집안에 모셔 들였습니다. 마리아가 모셔 들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집안에 모셔 들인다는 것은 성체성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르타는 여전히 예수님께 무엇을 해 드릴까만 생각하며 분주하게 일합니다. 이런 마르타에게 칭찬을 해 주셔도 괜찮으실 텐데 예수님은 그런 쓸모없는 염려와 걱정은 갔다버리고 마리아처럼 당신 발치에서 당신 말씀을 들으라고 초대하십니다. 마리아는 성체대신 말씀을 받아들여 칭찬을 받은 것이고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것이 유일한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성당에서 일어난 큰 사기극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분이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 엄청난 배당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자들이 앞서 그 사람에게 돈을 투자하였는데 그 사람은 엄청나게 모인 돈을 들고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기를 친 사람은 새벽미사까지 포함해서 매일미사를 나오는 착실한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치기 위해 미사를 나왔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성체성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모셨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는데, 거룩한 성체는 그 성체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부모를 떠나 하란 삼촌 집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삼촌 라반의 딸 라헬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라헬을 위해 7년간 일을 해 줍니다. 라반은 처음엔 그렇게 약속했지만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신방에 넣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야곱은 깜짝 놀라고 속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라반은 그곳 전통상 동상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그래서 7년을 더 일하게 되고 라헬을 사랑하게 된지 14년 만에 비로소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 두 아들을 낳고 죽습니다. 결국 요셉이 나머지 야곱의 가족을 살리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분이 참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분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말씀을 듣고 있지 않던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며 성경말씀을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봅니다. 말씀의 전례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은 상태면 성찬의 전례가 사실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즉 성체를 만나기 위해 반드시 먼저 만나야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라헬과 혼인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먼저 혼인해야 하는 것이 레아인 것과 같습니다. 둘은 같은 자매로서 결국 야곱과 혼인하는 말씀과 성체이고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건너뛰고 성체를 바로 만날 수는 없게 되어있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성전에 봉사하러 가는 사제나, 예배드리러 가는 레위인이 실제로는 당신을 섬기는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성당에 나와 성체를 영하지는 못할지라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진정 당신을 만나고 있는 사람이고 구원받을 사람이라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말씀이 채워지지 않은 성체는 텅 빈 것과 같습니다.


대전의 한 의사 부부가 개신교를 다니다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첫 영성체를 하는데 자매님이 한없이 눈물을 흘리더라고 합니다. 남편이 창피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매는 지금까지 성경말씀만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진정 그분의 살과 피를 실제로 영하게 됐는데 어떻게 눈물이 안 나와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성체를 영하는 다른 신자들이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는 이미 말씀으로 충만해져 있기에 성체성사 때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건너뛰었던 사람이었다면 성체를 영하면서 그런 감동은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노력이 없다면 성체는 그 노력의 결실로 만날 수 있는 말씀의 정점인 것입니다. (요셉신부)


9. 우리 인간은 영육의 합일체로 인간입니다. 그런데 구지 영과 육으로 구분해 본다면 ‘영을 지닌 육이 아니라 육을 가진 영’입니다. 영이 먼저입니다. 그렇다면 밥도 먹고 말씀도 먹어야 산다고 할 때, 말씀이 먼저 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지, 밥을 먹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 활동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마르타와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역할이 다 필요하지만 무엇이 근본적인 선택이고 우선이냐를 생각하면 마리아의 몫이 먼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르타도 자기가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으면 그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준비하였으면 그것으로 행복해야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와 비교하여 시기나 질투, 얄미운 마음을 갖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처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의이름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부르신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 그러나 우리의 영적생활에도 선택과 집중이 요구됩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성모님을 경청의 달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마리아도 경청에 몰두하였습니다. 우리도 경청의 달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활동과 기도의 조화는 꼭 필요합니다. 사실 활동은 기도 안에서 나와야 바른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는 활동이 되려면 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활동을 아무리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도가 없었다면 그 일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도 없이 이루어지는 활동은 힘을 잃게 됩니다. 활동은 창조사업의 연장이요 구원사업의 하나이지만 거기에는 항상 기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성 줄리 빌리아르). (반영억 라파엘 신부)


10. 복잡한 세상에 맞춰서 복잡하게 살아가는 우리였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으며, 부정적인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던 마리아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여유와 함께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분주히 살아가는 내 삶 안에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마음이 복잡했던 이유, 걱정이 많았던 이유, 부정적인  불평불만이 가득한 이유는 바로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 말씀을 듣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빠다킹신부)


***인생은 답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질문하는 여행이다.(브라이언 그레이저)


11. 주님은 마르타의 불평에 환대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시며 그의 무지를 깨우쳐 주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하며 염려하고 걱정하는 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주님을 환대하는 미사전례 역시 먼저 말씀 경청의 ‘말씀전례’에 이은 주님의 성체성혈을 나누는 ‘성찬전례’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 주님은 환대의 원천입니다. 주님은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환대하십니다. 

- 오늘 복음의 마리아는 물론 1독서의 아브라함과 2독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전형적인 환대의 사람들입니다. 

아니 성서의 인물들이 모두 주님을 닮아 환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환대와 환대가 만나는 놀라운 축복의 미사시간입니다. 

-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제 자작시 한 연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땅에 엎드려 세사람의 나그네에게 환대하는 말을 하여 천막 안으로 그들을 맞아들이고,

발 씻을 물을 내어주고 쉬게하면서 빵을 굽고, 송아지를 잡아 엉긴 젖과 우유, 송아지 요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나그네에 대한 극진한 대접을 믿음의 후손인 우리도 본받아야 하리라.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들여 각가지 시중을 들어 환대한 마르타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

활동과 관상의 신앙인으로 모두 본받아야 하리라.


사람 인(人)은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사는 존재

하느님사랑, 이웃사랑의 이중계명을 을 실천하며 살아야하는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관계를 ‘사랑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사랑을 시험하고 인내를 시험하는 기회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모든 관계를 '사랑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이에게는 어떠한 만남도 두려움이 아니라 기다려짐으로 다가옵니다.

아멘.



- 2016년 7월17일 연중제16주일, 농민주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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