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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천상륙 老兵에 경례하지 않는 나라(2016.9.8.목) / 인천자유공원-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 안내문 등 6장


[기자수첩] 인천상륙 老兵에 경례하지 않는 나라

입력 : 2016.08.13 03:00


김수혜 도쿄 특파원 사진
김수혜 도쿄 특파원


1950년 8월 24일 20대 첩보부대원 17명이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안에 몰래 내렸다. 작전명 '엑스레이.' 이후 3주간 이들이 적군 치하의 인천에 잠입해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9월 15일 연합군 7만5000명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다.

그 주역 김순기(90)옹을 인터뷰한 곳은 일본 교토에 있는 한 쇼핑몰 휴게용 의자였다. 장바구니 든 주부들이 왔다갔다하는 한쪽에서 귀가 어두운 김옹과 2시간 동안 목청을 돋워가며 6·25 얘기를 했다.

주변은 연립주택과 목조주택이 밀집한 서민 동네였다. 김옹은 자택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도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인터뷰 뒤 '바래다 드린다'는 핑계로 뒤따라갔다. 그의 집은 예닐곱 가구가 한데 모여 사는 낡은 공동주택이었다. 한 집당 10평 남짓 돼 보였다. 집 안 좀 보자는 말이 안 나왔다.

김옹은 1945년 11월 해군 창군 멤버 70명 중 1명으로 군복을 입었다. 6·25 당시 우리 군이 낙동강까지 밀려갈 정도로 어려웠을 때 목숨을 건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했다.

그런 그가 지금 국가에서 받는 지원은 월 2만엔가량이다. 충무무공훈장 두 건을 받은 데 따른 수당이다. 근속 20년이 되기 전에 전역해 군인연금은 없다. 우리 정부는 그를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 초대하거나 '증언을 듣자'며 찾아간 적도 없었다. 그나마 그는 작전에 참가한 노병 17명 중 복무 기록이 남아 있는 4 명 안에 든다. 6명은 이름 석 자만 있고, 7명은 아예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다.

김옹 자신은 정작 뭘 요구할 생각도 없었다. 생활이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만족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상륙작전 현장에 방문하고 싶었는데, 주변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못 갔다고 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업고라도 모셔갔어야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숨은 공로자 - 작전명 '엑스레이]


1950년 8월 24일 20대 첩보부대원 17명이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안에 몰래 내렸다. 작전명 '엑스레이.' 이후 3주간 이들이 적군 치하의 인천에 잠입해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9월 15일 연합군 7만5000명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다.


그 주역 김순기(90)옹을 인터뷰한 곳은 일본 교토에 있는 한 쇼핑몰 휴게용 의자였다....


그가 지금 국가에서 받는 지원은 월 2만엔가량이다. 충무무공훈장 두 건을 받은 데 따른 수당이다. 근속 20년이 되기 전에 전역해 군인연금은 없다. 우리 정부는 그를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 초대하거나 '증언을 듣자'며 찾아간 적도 없었다. 그나마 그는 작전에 참가한 노병 17명 중 복무 기록이 남아 있는 4 명 안에 든다. 6명은 이름 석 자만 있고, 7명은 아예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다.

****'엑스레이.' 작전에 참여한 17명 중 7명은 복무기록에 이름조차 없다고 한다. 6명은 이름 석자만 있고 4명만이 복무 기록이 있다고 한다.....ㅠㅠ...

의인을 찾아서 널리 알리고, 그분들의 공로를 기억해주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할 일이 아닐까 한다.

그나마 영화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그분들의 공로를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다.


- 2016년 9월7일 수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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