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21일 수요일 [(홍)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우리들의 묵상
성 마태오 사도는 세리로 일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마태오 복음서’를 쓴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증언의 핵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복음서가 서술하는 나자렛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주석 성경 ‘마태오 복음서 입문’ 참조)이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사도는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수인이 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며,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은총을 받은 대로 직무를 수행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있는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며,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7.11-13
복음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인 세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고, 부정한 사람인 죄인들과 어울려서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왜 예수님께서 품위 없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지 제자들에게 따졌습니다. 그들의 비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영적 의사’이며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한 로마의 돈을 만진 마태오의 손은 정화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뚜렷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산상 설교, 선교사들에 대한 가르침, 하늘 나라의 비유들,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위한 권고들이 메시아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그 가르침들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고, 후일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마태오 사도의 열정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튼튼한 이에게는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바리사이들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매사 주님의 ‘자비의 눈’으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공동체는 잘난 이들의 엘리트 공동체가 아니라 병자들의 공동체, 죄인들의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죄인이자 병자인 우리를 부르시어 용서와 치유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이런 깨달음이 우리를 겸손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합니다.
오늘 바오로가 공동체의 일치의 비전을 환히 보여줍니다. 공동체에서 주님과 이웃을 만남으로 참나의 만남이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하십시오.”
바로 겸손과 온유, 인내와 사랑, 평화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요, 공동체의 일치의 비결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끊임없이 하나의 공동체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세리였던 마태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분을 만난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던 마태오는 하느님나라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손가락질을 받던 죄인에서 천국에서 빛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예수님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예수님의 탄생, 표징, 가르침,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모습을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마태오 사도의 기억을 통해서 하느님나라의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 안에 하나인 것입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바람과 햇살은 누구의 편도 아니잖아요.’라는 글이 있습니다. 세리였던 마태오는 사도가 되었고, 죄를 지었던 여인은 부활한 주님을 처음으로 보았고,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죄인일지라도, 부족할지라도, 실패해서 넘어졌을지라도 주님을 만나면 치유되고, 용서받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유다인들은 물론 제자들의 눈에도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그토록 중대한 사명을 위해 하필 공적 죄인으로 여겨지던 그를 부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탁월한 이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은 그런 사람들을 ‘사랑의 학교’의 제자로 뽑아 사랑의 교육을 하신 다음, 하느님 나라를 체험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비와 선과 정의를 선포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마태오를 부르신 것도 죄인인 그에게 자비를 체험할 가능성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눈길로 마태오를 바라보시고, 사랑으로 부르심으로써 그의 어두운 영혼에 빛을 비춰주시자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그렇게 사랑에 사로잡힌 그는 이제 영원을 향한 사랑의 길을 걷게 되고, 주님 사랑의 발자취와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주었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기에 이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사랑의 부르심을 받았고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에페 4,1). 곧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4,2-3).
지금 이 순간 나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매순간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시며, 내 영혼의 어둠을 밝혀주시기 위해 자비의 손길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자각하고 감사드려야겠습니다. 나아가 비록 연약하고 자주 넘어지지만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주님의 그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투신함으로써 내 삶으로 '제5복음서'를 써내려가는 오늘의 사도가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4.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돈과 쾌락이 삶의 목표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주시는 성령의 선물, 하나를 위해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한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희망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참 행복입니다. 만약 우리가 참 믿음이 있다면 단 한 분이 주시는 단 하나의 희망만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9월21일 수요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오늘의 복음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돈과 쾌락이 삶의 목표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주시는 성령의 선물, 하나를 위해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한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눈길로 마태오를 바라보시고, 사랑으로 부르심으로써 그의 어두운 영혼에 빛을 비춰주시자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그렇게 사랑에 사로잡힌 그는 이제 영원을 향한 사랑의 길을 걷게 되고,
주님 사랑의 발자취와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주었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기에 이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사랑의 부르심을 받았고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에페 4,1).
곧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아멘.
- 2016년 9월21일 수요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수산나 -
딱총나무 1
딱총나무 2
딱총나무 3
딱총나무 4
딱총나무 5
딱총나무 6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9월23일 금요일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우리들의 묵상/망종화 5장 (0) | 2016.09.23 |
---|---|
2016년 9월22일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우리들의 묵상 / 루브라참나무 2장 (0) | 2016.09.22 |
2016년 9월20일 화요일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우리들의 묵상 /대추나무 5장 (0) | 2016.09.20 |
[2016년 9월19일 [(녹) 연중 제25주간 월요일]우리들의 묵상]/ 능수버들 수꽃 4장 (0) | 2016.09.19 |
[2016년 9월18일 [(녹) 연중 제25주일]우리들의 묵상] / 느티나무 5장 (0) | 2016.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