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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1월5일 [(녹) 연중 제31주간 토요일]매일미사 묵상/종려나무 5장


2016년 11월5일 [(녹) 연중 제31주간 토요일]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안다며,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며,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4,10-19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ㄴ-15


오늘의 묵상

재물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 대적하는 가장 큰 우상입니다. 세상은 점점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될 것 같고, 돈이 권력이 되고 선이 되는 듯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이 재물의 역할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갖도록 요구하십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재물은 부자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산주의는 재물을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재물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 사용권만을 받아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재물이 수중에 들어오면 우리의 이기심을 이겨 내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을 벌려고 우리는 일을 하고 경쟁을 합니다. 일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데 필요한 근거와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경쟁시키고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르는 세상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의로운 사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경쟁에서 패배해 굶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나에게 맡겨 주신 재물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정의이고, 이것이 재물이 아닌 하느님을 선택한 표시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신앙생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복음삼덕입니다. 복음삼덕은 가난, 순결, 순명입니다. 수도자들은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가난을 선택하였습니다. 세상의 것들이 좋기는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것이 더욱 좋기 때문입니다. 흙탕물은 흔들면 흔들수록 더욱 혼탁해 집니다. 조용히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흙탕물은 정화되고 맑은 물이 되는 것을 봅니다. 신앙인은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순결입니다. 우리는 자유 의지를 지녔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양심과 말씀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하는 교만이 아니라, 양심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순명입니다. 이 순명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줍니다.

 

둘째는 향주삼덕입니다. 향주삼덕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끝까지 믿어주는 믿음입니다. 나에게 잘 해 줄 때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도움이 될 때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나에게 잘못을 했어도, 나를 배신했어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죄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그 믿음이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희망은 씨앗을 심는 마음입니다. 씨앗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 안에 있는 희망의 씨앗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자들, 나약한 제자들은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의 힘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님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도 사랑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는 사랑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릇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더욱 드러납니다. 탐욕, 거짓, 분노, 교만을 담으면 겉은 화려해도 속에서는 악취가 날 것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을 담는다면 비록 질그릇과 같을 지라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 질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가 자신의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는지를 보셨습니다. 그 아들을 바친다고 하느님에게 어떤 유익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신께 무언가를 봉헌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드님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그분의 은혜에 티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먼저 내어주신 주님을 찬미하며 그 받은 것을 도로 바쳐 드리는 행복을 느껴봅시다. 가지려는 자는 슬퍼지고 내어주려는 자는 기뻐집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 삶을 방향과 목적을 분명함으로써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6,13)고 하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 중요한 자세로 ‘성실성’을 요구하십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고’(16,10),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도 성실하며’(16,11),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한 사람’(16,12)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실성이란 섬겨야 할 하느님을 삶의 목표와 존재이유로 삼고 그분께 시선을 집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하면서 그분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공동의 선과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에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세상의 온갖 가치를 이용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세를 말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1월5일 [(녹)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신앙인에게 재물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 사용권만을 받아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재물이 수중에 들어오면 우리의 이기심을 이겨 내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 중요한 자세로 ‘성실성’을 요구하십니다.

성실성이란 섬겨야 할 하느님을 삶의 목표와 존재이유로 삼고 그분께 시선을 집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하면서 그분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공동의 선과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에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세상의 온갖 가치를 이용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세를 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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