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2016년 11월7일 [(녹)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묵상 / 중국단풍 5장


2016년 11월7일 [(녹)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크레타에 있는 믿음의 아들인 티토에게 인사하며 흠잡을 데가 없는 이를 원로와 감독으로 임명하라고 지시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지 말고, 죄지은 형제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신다. 또한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원로들을 임명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시작입니다. 1,1-9
복음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6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가족으로, 친구로, 스승과 제자로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많은 관계 안에서 우리의 인생은 자라나고 성숙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친구를 잘못 만나면 인생이 꼬이기도 하고, 스승이 제자를 잘못 가르치면 그 제자는 잘못된 가르침을 평생 진리로 알고 살아갑니다. 내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적은 없는지를 생각하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 부정적인 영향들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분열입니다. 서로 의견이 다른데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하고 내 의견만을 고집할 때, 나의 명예만을 지키려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짓밟을 때, 내가 잘못했음에도 용서를 청하지 못하고 자존심만을 내세울 때, 그리고 잘못한 형제가 찾아와 용서를 구하는데 나의 상처만을 내세우며 그를 용서하지 못할 때, 이런 것들이 무서운 죄가 되는 것은 바로 분열의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바로 용서와 믿음입니다. 이들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일치와 친교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맺는 많은 관계 안에서 우리가 일치의 원동력이 되지 못하고, 추문과 악한 표양으로 분열의 씨앗이 된다면, 이것은 개인적인 선행이나 악행의 차원을 넘어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의 심장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가끔은 사람들로부터‘나는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삶의 여정 안에서 크든 작든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과 허물을 안고 살아왔고, 또 앞으로의 여정 안에서도 끊임없는 자비와 용서를 입어야 할 연약함을 지녔습니다. 결국 우리자신이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남을 용서 하기위해서는 내가 이미 용서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살려고 애를 쓰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었다고 장담한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한다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부끄러움 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피조물인한 연약함 속에 끊임없는 자비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처지에서든지 앙갚음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반영억 라파엘신부)


2.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사도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사도들이 믿음이 부족하고, 지혜롭지 못했어도 끝까지 믿어주셨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믿음을 통해서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지혜의 길입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브렌던 케널리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납니다. 

친구와의 우정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든지, 

환한 햇살 속에 익어가는 옥수수밭을 보면서도 경이의 감정이 솟아오르지 않는 게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선이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고정된 사고의 틀과 왜곡되고 비합리적인 사고로 남을 판단하며, 자기혐오와 열등감 등을 남에게 투사하게 되지요. 선과 사랑의 결핍이 남을 걸려넘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무감각, 무관심, 상처와 고통의 방치, 불의 앞에서의 회피를 떨쳐버리고, 하느님의 선과 사랑 안에 머물러 다른 이들에게 죄의 짐을 떠넘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5.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생명 자체이십니다. 사랑이 곧 생명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생명도 지닌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 우리 모두가 당신에게 살아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실 수 있는 사랑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보아주시는 그 분은 살아계신 분인 것입니다.

 

반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 취급한다면 사실 그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작은 희생쯤은 누군가가 감수해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만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자신들 안에 생명이 없으니 타인의 생명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도 하나고 생명도 하나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그 안에 생명을 품은 사람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11월7일 [(녹)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바로 용서와 믿음입니다.


우리자신이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남을 용서 하기위해서는 내가 이미 용서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살려고 애를 쓰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었다고 장담한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한다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부끄러움 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피조물인한 연약함 속에 끊임없는 자비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처지에서든지 앙갚음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아멘.


- 2016년 11월7일 [(녹)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수산나 -



중국단풍 1


중국단풍 2


중국단풍 3


중국단풍 4


중국단풍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