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6일 [(녹) 연중 제32주일] 매일미사 묵상
▦ 죽은 이를 기억하며 기도하고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 성월의 첫 주일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도 살리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부활의 복된 희망을 품고,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성자의 말씀과 착한 행실로 열매를 맺게 해 주시기를 청하며 미사를 시작합시다.
말씀의 초대
마카베오기 하권은, 율법으로 금한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임금에 맞서 법을 어기기보다 죽음을 택한 일곱 형제와 의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인들에게, 우리가 지시한 것을 여러분이 실행하리라 믿는다며 기도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에게, 저세상에서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고,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1-2.9-14
제2독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 2,16─3,5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38<또는 20,27.34-38>
영성체 후 묵상
▦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이들도 사후에 대한 관심은 있습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저세상에서는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고,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답게 희망을 가지고 굳세게 살아갑시다.
오늘의 묵상
우리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로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삶이 어제의 결과이고, 또 오늘 삶의 결실이 내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 안에 엄습합니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내가 병들었을 때 누가 나를 챙겨 줄까? 그리고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음에 대해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시각과 감정, 또는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우리는 그 이후를 경험해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곳의 셈법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습관적으로 이 세상의 삶에 비추어 하늘 나라를 그려 보지만, 그곳의 시간은 여기와 어떻게 다른지,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될지, 하느님께서는 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 주실지 두려운 마음을 떨치지 못합니다.
하늘 나라의 모습은 이 세상의 셈법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참여한 이들은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그리고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알려 주시며, 다시 우리의 시선을 ‘오늘’로 돌려 주십니다. 오늘을 성실히 살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면, 부활하신 그분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이고, 이 확신으로부터 신앙인은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그러니, 오늘 우리는 파스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두가이가 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현대판 사두가이는 누구인가?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갇혀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곧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 지니고 있는 현재의 틀(패러다임)을 과감히 깨야만 할 일입니다. 과감하게 바리사이적인 고착과 완고함을 깨고,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이영근 아오스딩신부)
2. 바오로 사도는“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1코린2,9).하며 약속된 부활의 삶을 확인시켜줍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훨씬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몸소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도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사람은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생명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3. 부활의 희망이 진짜 희망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마카오베기 하권의 순교자 일곱 형제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 희망하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한결같이 부활의 희망을 고백하고 부활을 믿으며 순교한 일곱 형제들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희망을, 부활의 믿음을 살아야 합니다.
이 또한 주님의 미사은총입니다.
사두가이들의 황당한 궤변에 예수님은 추호도 당황하거나 망설임 없이 정공법으로 이들을 제압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설명은 얼마나 명쾌한지요.
결코 현재의 연장선상에서의 부활이 아님을, 또 이런 부활의 삶은 은총임을 명백히 밝히십니다.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복된 운명, 복된 미래입니다.
이의 생생한 예표가 결혼하지 않고 하늘나라를 위해 독신의 천사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아니 이미 세례를 통하여 죽고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되어 사는 우리 믿는 이들 역시
이미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품으로 가면 ‘천사’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세상 속에서 천사와 같은 모습을 보곤 합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달걀은 부화를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눈이 있고, 다리가 있고, 날개가 있습니다. 땅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죽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됩니다. 애벌레와 나비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천사처럼 된다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두운 달걀 속에서 껍질을 깨고 밝은 세상을 바라보는 병아리처럼, 우리는 가식과 허위와 위선과 교만의 껍질을 깨고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의 날개를 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 천사처럼 된다면 그래서 사랑과 평화를 찾는다면,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016년 11월6일 [(녹) 연중 제32주일]
오늘의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늘 나라의 모습은 이 세상의 셈법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참여한 이들은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그리고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알려 주시며, 다시 우리의 시선을 ‘오늘’로 돌려 주십니다.
오늘을 성실히 살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면, 부활하신 그분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이고,
이 확신으로부터 신앙인은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품으로 가면 ‘천사’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땅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죽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됩니다. 애벌레와 나비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천사처럼 된다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두운 달걀 속에서 껍질을 깨고 밝은 세상을 바라보는 병아리처럼,
우리는 가식과 허위와 위선과 교만의 껍질을 깨고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의 날개를 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 천사처럼 된다면 그래서 사랑과 평화를 찾는다면,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 2016년 11월6일 [(녹) 연중 제32주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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