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8일 [(녹)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을 하라며,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준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2,1-8.11-14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오늘의 묵상
요즘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종과 주인의 관계로 엮어진 직업은 없습니다. 노동이 여전히 힘들고 고달픈 건 사실이지만, 노동법과 노동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모두 직장인으로 성실히 일하는 것이지 그 일이 종과 주인의 관계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터 안에서 윗사람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에서 마치 종보다 더한 처우를 받는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법으로, 또는 노동 계약을 바꿈으로써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내 일터의 환경과 분위기를 밝고 맑게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더 큰 행복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내가 모시는 윗분을 존경하며,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를 사랑한다면, 아무리 힘든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내 자신을 성취시키는 행복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종의 모습은 참으로 가혹해 보입니다. 밭에서 들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종에게 다시 밥상을 차리게 하고, 그 이후에도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고 말해야 하는 종은 참 비참한 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이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겸손에서 나오고, 하느님을 향한 그지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라면, 그 종은 정말 더없이 행복한 종입니다. 사랑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을 떠올려 봅니다.
“주여,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침착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 두 가지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을 동양에서는 道라고 불렀습니다. 머리 首와 쉬엄쉬엄 갈 ?(착)의 합성입니다. 인간의 머리가 향하는 하늘, 그 하늘의 뜻대로 걸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땅과 자신의 뜻을 내세우면 오히려 道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 제대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발적 순종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의 극치일 것입니다. (윤경재 요셉)
2. 각기 고유의 순례 여정길입니다.
비교할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다 그 나름대로 순간순간 의미가 있습니다.
결코 우연은 없고 모두가 섭리입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바로 주님께 대한 주님의 종인 우리의 진실과 성실, 사랑과 신뢰의 자세를 반영합니다.
사실 매일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기에 자랑할 것도 우월감을 지닐 것도 아닙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오늘은 평일미사 4번째 감사송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오늘 복음은 ‘겸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무엇보다 주님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예수님입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고 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바치셨던 예수님입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던 분입니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소박하고, 겸손한 사제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제는 늘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제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모든 신앙인들이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4. 예수님의 제자들의 일은 개인의 원의나 취향에 관계없이 해야만 하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곧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하느님 사랑의 창조물로서 사랑의 존재가 되어 사랑을 실행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 안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이유요 소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자가 주님의 종답게 주님의 일을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앞서 행해야 하는 일로 여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많지만 문제는 우선순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랑과 정의의 실천, 희생과 선행과 같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며,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자랑하거나 대가를 챙기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자신의 일로 삼는 교만한 태도임이 분명합니다. 사실 온힘을 다해 주님의 일을 한다 해도 해야 할 일의 극히 일부만을 해낼 뿐이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최선을 다 하되 겸손해야 하며, 오히려 주님의 사랑의 도구로 쓰여짐에 감사드려야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5. 사람은 사회 안에서 안정되게 소속되어 있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나치 정권 안에 있을 때는 그들이 유태인을 학살할 때 그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이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게 세상의 힘이고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실 때는 이 상황의 힘을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먼저 모범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의 힘이 큰 것입니다. 그분들이 먼저 길을 닦아놓으면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그러면 그 힘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엄청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마치 프란치스코회가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 한 사람으로 시작 되었지만 그의 일곱 친구들이 함께 했고 지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 삶을 본받으려고 수도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에서 오지 행위에서 오지 않습니다. 행위만을 강조하는 것이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삶의 모범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믿음이 완전하지 못한 타인들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본받아 그 힘이 상황의 시너지적 에너지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도 그 힘에 이끌리게 만들고, 또 적대자들에게는 괜한 트집거리를 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11월8일 [(녹)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종의 모습은 참으로 가혹해 보입니다.
밭에서 들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종에게 다시 밥상을 차리게 하고, 그 이후에도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고 말해야 하는 종은 참 비참한 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이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겸손에서 나오고,
하느님을 향한 그지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라면,
그 종은 정말 더없이 행복한 종입니다.
사랑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구원은 믿음에서 오지 행위에서 오지 않습니다.
행위만을 강조하는 것이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삶의 모범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믿음이 완전하지 못한 타인들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본받아 그 힘이 상황의 시너지적 에너지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도 그 힘에 이끌리게 만들고,
또 적대자들에게는 괜한 트집거리를 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
아멘
- 2016년 11월8일 [(녹)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수산나 -
찰피나무 1
찰피나무 2
찰피나무 3
찰피나무 4
찰피나무 5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11월10일 목요일 [(백)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매일미사 묵상/튤립나무 6장 (0) | 2016.11.10 |
---|---|
2016년 11월9일 수요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매일미사 묵상 / 청가시덩굴 5장 (0) | 2016.11.09 |
2016년 11월7일 [(녹)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묵상 / 중국단풍 5장 (0) | 2016.11.07 |
2016년 11월6일 [(녹) 연중 제32주일] 매일미사 묵상/죽단화 5장 (0) | 2016.11.06 |
2016년 11월5일 [(녹) 연중 제31주간 토요일]매일미사 묵상/종려나무 5장 (0) | 2016.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