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9일 수요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매일미사 묵상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이다.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母)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천사에 이끌려,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는데, 천사는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시면서, 이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며 부활을 예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22
오늘의 묵상
원래 황실 가족의 소유였던 라테라노 궁전은 4세기에 교황님의 공식 거처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딸려 있던 대성당은 처음으로 로마의 주교좌성당이 되고, 거기에서는 특히 부활 성야에 세례식이 집전되었습니다. 후에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에게 봉헌되어 라테라노 성 요한 성당이라고 불리게 된 이 대성전은 로마 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여겨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로마의 교회에 결합되면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언급한 ‘사랑의 수위권’을 로마 교회에 인정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교구에 있는 주교좌성당에도 교구의 모든 본당과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모든 성당에서 ‘구원의 신비’가 거행됩니다. 교회 건물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입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고,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음식으로 내어 주시며, 기도 안에 모인 공동체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영원히 머물러 계십니다.
신앙인들은 늘 성전을 지으며, 그 안에 하느님의 모습과 자신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머릿돌이 되어 계십니다. 교회의 형상인 성전은 공동체와 친교를 드러냅니다. 설계사와 건축사의 힘이 모여서 하나의 건축물이 단단하게 지어지듯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진지하고 확고한 연대와 친교를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게시판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거짓 없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입니다.
고해성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축복의 장입니다.-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
2.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지혜 가운데 아주 특별하고 독특한 지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전에 활동하던 그 어떤 철학자, 선각자, 예언자, 종교인, 성인도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입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창조주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른 것이며, 두 번째는 당신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활을 통한 진정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몸은 떠나가셨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 안에 위의 세 가지 내용이 한꺼번에 다 나옵니다. 이 장면을 흔히 성전정화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님께서 최초로 세상에 공식적으로 나타나시는 장면입니다. 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 앞에서 당신의 신원과 새로운 진리를 만천하에 선포하시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인류에게 수많은 지혜를 남겨준 예언자, 철학자, 성인들의 가르침들은 공통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며,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통해 진리에 다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몸소 가리켜 보이신 이 세 가지 진리의 길에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어딘가 조금씩 미진한 면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그분들과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점입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인간의 죄는 하느님의 작품을 모독하는 행위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모독, 여성에 대한 모독, 어린이의 모독, 노동의 모독, 사랑의 모독, 자연의 모독이 결국 하느님의 작품을 하찮게 여기고 하느님의 자리에 서려는 시도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고린 3,16~17)
죄에서 멀어지고 벗어나는 가장 바른 길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 안에 성전을 세우신 덕분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에페4,24)’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더 큰 마음의 성전을 우리는 확충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의 성전은 무척 여려서 자칫하면 부숴지기 쉽습니다. 반면에 무한히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특별한 진리로 거듭 남으로써 온전한 성전이 될 때 치우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윤경재 요셉)
3.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그 안에 거룩함을 잃지 않으려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결정 됩니다. 초라한 마구간이 빛난 것은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웅장하지도 값진 예술품 하나 없어도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집은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그러나 많은 돈을 들여 지은 건물에 갖가지 값진 예술품으로 장식을 해 놓았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면 그 집은 그저 건물일 뿐입니다. 결코 성전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제대로 모시고 거룩함을 간직한다면 대성전이든 마당이든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다면 어디에서든 거룩함으로 빛나야겠습니다. 외적인 건물의 화려함보다도 마음의 성전을 빛내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을 기도의 찬미, 말씀선포의 성전이 되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성모님의 발현장소로 강복하시길 청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증오, 탐욕으로 차 있다면, 악습에 젖어 있다면,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4. 가톨릭 교리서 1179항에서도 형제들이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진정한 성전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신약의 예배는 어느 특정한 장소에만 매이지 않는다.
온 땅은 거룩하며, 사람의 자녀들에게 맡겨졌다.
신자들이 한 장소에 모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집’으로 세워지도록 모인 ‘살아있는 돌’이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생수가 솟아 나오는 영적인 성전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다.”
교리서의 진술이 참 명쾌하고 은혜롭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차원의 성전을 보게 됩니다.
가시적 건물로서의 성전, 불가시적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성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하나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놀랍고도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그러니 매일의 이 세차원의 성전이 하나되는 미사보다 더 좋은 성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궁극적 천상낙원의 실현을 향해 가는 우리 교회의 순례여정입니다.
묵시록에서 보여주는 언젠가 그날의 천상낙원 비전입니다.
“그 천사는 또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의 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요한묵시22,1-2)
에제키엘의 천상낙원의 꿈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은혜롭게도 매일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을 통해
이런 천상낙원의 꿈을 앞당겨 실현하며 하루하루 천상낙원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성전, 은총의 성전입니다.
관상觀想만하라 있는 천상낙원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실현實現하고 이웃과 나누라 있는 천상낙원의 꿈입니다.
주님은 당신 생명나무의 열매인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이를 이루어 주십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5.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황님들께서 지내시던 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오랜 박해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려 주는 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음을 알려 주는 성전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친교를 나누는 곳입니다. 성전은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얻는 곳입니다. 성전은 생명의 빵을 나누는 성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성전은 성전만으로 남으면 단순히 건물일 뿐입니다. 성전은 그곳에서 신앙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몸이 바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에서 ‘가난, 순결, 순명’의 물이 흘러나오면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에서 ‘믿음, 희망, 사랑’의 물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 성당 문에 있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이 관광객으로 오셨다면 순례자가 되셔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순례자로 오셨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셔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 따라서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 자매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서로를 사랑으로 존중하며 소중히 대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야말로 성전을 참 성전이게 하는 우리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실행함으로써 성전다운 거룩함의 향기를 풍길 때 구원의 샘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세계 모든 교회가 로마 교회와 일치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사명을 실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되어 이 세상을 사랑 가득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의 성전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한복판에서 구원의 신비, 사랑의 신비를 선포하고 거행할 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실현 되겠지요. 그 순간 세상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과 교회의 머릿돌로서 늘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랑의 친교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바치며 투신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7. 오늘 독서에서는 에제키엘서 47장의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 우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있는데 그 물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물은 성령을 의미하고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성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그분께 붙어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즉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를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기 때문에 주님을 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웃에게 생명을 전해주는 성전은 항상 주님을 향하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성막을 제작하라고 하십니다. 그 성막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바깥뜰, 성소, 그리고 지성소입니다.
바깥뜰에서는 짐승들이 살라 바쳐지는데 이는 주님을 향하기 위해 내 자신의 동물적인 본성, 즉 육체적 욕망을 살라 바쳐야 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엔 가지가 일곱 개인 등잔대가 있고 오른쪽엔 빵이 있으며 그 정면엔 향이 피워지고 있습니다. 일곱 등잔은 일곱 은사를 주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 성령의 비추임이 영혼 안에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빵은 바로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빵 만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도 양식으로 매일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그 정면의 타고 있는 향은 자신의 생각까지 봉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가 주님과의 대화라면 자신과의 대화가 생각입니다. 주님 앞에서 생각을 봉헌하지 않으면 기도가 아닌 분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곳, 즉 사람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영이라고도 하는 이 곳에는 계약의 궤가 있습니다. 그 궤위에 주님께서 내려오시니 우리 자신의 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대 안에는 주님의 계명이 들어있습니다. 그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 유일하게 주님의 뜻이 실현되기만을 바라고 있어야 참 성전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만드는 것을 동편의 주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11월9일 수요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오늘의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지혜 가운데 아주 특별하고 독특한 지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전에 활동하던 그 어떤 철학자, 선각자, 예언자, 종교인, 성인도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입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창조주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른 것이며,
두 번째는 당신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활을 통한 진정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몸은 떠나가셨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그 안에 거룩함을 잃지 않으려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결정 됩니다.
초라한 마구간이 빛난 것은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웅장하지도 값진 예술품 하나 없어도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집은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제대로 모시고 거룩함을 간직한다면 대성전이든 마당이든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다면 어디에서든 거룩함으로 빛나야겠습니다.
외적인 건물의 화려함보다도 마음의 성전을 빛내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을 기도의 찬미, 말씀선포의 성전이 되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성모님의 발현장소로 강복하시길 청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증오, 탐욕으로 차 있다면,
악습에 젖어 있다면,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2016년 11월9일 수요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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