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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1월12일 토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매일미사 묵상 / 호랑버들 5장


2016년 11월12일 토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매일미사 묵상


요사팟 주교는 1580년 무렵 우크라이나의 동방 교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쏠렸기 때문이다. 사제가 된 요사팟은 수도원의 원장까지 맡아 수도회 개혁을 주도하였다. 주교가 된 그는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1623년 이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이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가이오스에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이들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려 달라고 조르는 과부와 재판관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됩니다.>
▥ 요한 3서의 말씀입니다. 5-8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8


오늘의 묵상

정의는 각자의 것을 온전하게 지켜 주고, 또한 함께 벌어들인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평등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참으로 간결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세상의 삶에 적용할 때는 뭐가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가야 한다거나, 검사나 변호사를 만나야 하는 일은 그 자체로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서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두 사람 앞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해 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를 가려내려고 수많은 조사를 하고, 법리를 검토하는 중에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이나 음모들이 드러나면 우리 인간들의 삶이 참으로 복잡함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 앞에 나서는 과부는 절실함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간청이 그 재판관의 마음을 돌려놓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간절함과 절실함은 세상의 어떤 것도 이겨 내고 뚫어 낼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간절함은 인간의 마음을 넘어 하느님의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지만, 하느님 앞에서 가장 큰 정의는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불의한 재판관까지 청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하느님께서야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느냐는 예수님의 대비 논법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자세에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어찌보면 기도는 하느님과는 물론 나와의 평생 줄다리기 싸움 같기도 합니다. 

하여 우리는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한마음, 한목소리로 미사와 시편 성무일도를 함께 바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내적성장도 성숙도 없습니다. 

진정한 변화도 없습니다. 기도를 통한 내적 혁명입니다. 

기도해야 변화變化의 발효醱酵 인생이지 기도하지 않으면 변질變質의 부패腐敗 인생이 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입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참된 지혜라는 그림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랑, 나눔, 봉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은 아름답고,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석이 많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경쟁과 승리를 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퇴근길에 아내를 위해서 장미꽃을 사 가는 남편, 부모님의 생일을 기억하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 자녀들,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 여보! 사랑해 우리 가족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게요. 오늘도 힘내세요!’라는 편지를 넣어 주는 아내는 각박한 세상에서도 하느님께서 숨겨두신 아름다운 그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정과 불의를 찾아내는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진실을 찾아서 드러내려는 언론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은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리의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사실 우리는 자신이 지닌 힘과 재물에 기대어 대단한 존재인 양 착각을 하지만 하느님 앞에 먼지에 지나지 않지요! 우리 모두 자신을 재판관처럼 하느님도 사람도 무시하며 추하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어 늘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과부와 같은 처지에 있음을 명심해야겠지요.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귀찮아 할 정도로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계속 청하자 올바른 판결을 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18,5).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을 때 그 청을 지체 없이 들어주실 것입니다."(18,7-8)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8,1)는 것입니다. 여기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한 것은 청한 것을 받을 때까지 그치지 말고 언제나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지요. 우리는 청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며 다른 세상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서곤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들어 주신다”는 신뢰를 가지고 끈기있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정해진 시간 안에 성과를 내는 사업이 아니라 ‘인내하는 사랑’이요, ‘믿음 안에서의 버티기’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온전히 맡겨드리고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기도의 호흡 안에서 ‘끝까지’ 청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리는 ‘사랑의 기다림’인 셈입니다.

오늘도 과부처럼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굳게 믿고 모든 것을 내맡기며 끈질기게 기도하는 거룩한 고집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4. 오늘 복음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올바른 판결을 내려준다는 이야기 입니다(루가18-4-5).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마음을 다해 청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4,2). 그렇다면 떼를 서야 하지만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5. 과부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가장 힘없고 가난한 부류입니다. 그러니 그가 시도해 볼 만한 일은 뇌물도 배경도 아니라 간절함뿐이었습니다. 간절함은 행동으로 들어날 때 남을 움직이는 영향력이 생깁니다. 정의롭지 못한 재판관도 귀찮음에는 자유롭지 못 한가 봅니다.

 그러니 공정하시고 정의로우시며 쉴 틈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간절한 청원을 모르는 체하실 리가 없습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아무 소용없다고 자포자기도 합니다. 자신의 기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거래가 아닙니다. 기도는 사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를 말합니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처럼 주어가 주님이 되어야 하고 동사가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당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의 기도는 동사를 주님께 돌리고 맙니다. 자신은 손을 놓고 기다립니다. 주어의 몫을 쉽게 자신이 차지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흔히 우리가 주님께 바치는 기도를 ~을 할테니 들어 주세요 하는 '거래의 기도', 이번에 ~을 해주시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외상으로 바치는 기도'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바치는 '거래의 기도'도, '외상으로 바치는 기도'도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리석고 나약하다는 것을 수긍하면서 최선을 다해 외상 빚을 갚고 공정 거래를 완수하려는 자세를 보이면, 그런 유치한 기도마저도 놀라운 응답의 효과가 있었음을 저는 고백합니다. (윤경재 요셉)



2016년 11월12일 토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 앞에 나서는 과부는 절실함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간청이 그 재판관의 마음을 돌려놓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찾아내는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진실을 찾아서 드러내려는 언론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은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리의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귀찮아 할 정도로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계속 청하자 올바른 판결을 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18,5).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을 때 그 청을 지체 없이 들어주실 것입니다."(18,7-8)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8,1)는 것입니다.

여기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한 것은 청한 것을 받을 때까지 그치지 말고 언제나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오늘도 과부처럼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굳게 믿고 모든 것을 내맡기며 끈질기게 기도하는 거룩한 고집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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