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16일[(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성령께 사로잡혀 하늘로 올라가 스물네 명의 원로들과 네 생물이 “거룩하시다!”고 외치는 가운데 어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을 뵙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왕권을 받으러 떠나며 종들에게 돈을 나누어 준 귀족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4,1-11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ㄴ-28
오늘의 묵상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할 때, 새로운 도화지를 선물로 받은 듯이 기뻐합니다. 그 위에 다시 뭔가를 그리고자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갈 때는 그 백지 위에 무엇을 그렸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하느님께 과제물을 제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미나의 비유는 우리의 이런 처지를 너무나도 또렷이 보여줍니다. 왕은 여행을 떠나며 열 사람에게 미나를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것을 셈하는데, 많이 벌지 못한 종의 처지를 불쌍히 여길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깨고, 오히려 그 사람의 게으름을 크게 벌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시지 않고 우리 존재를 사랑하시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게으름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성장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어린아이만 어른이 되도록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외적으로는 비록 이미 다 성장한 사람도 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이 성장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가꿔 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커다란 축복이요, 또한 평생 과제인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기쁨은 나누면 커지고 슬픔을 나누면 작아진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고 합니다. 마음을 키워서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픔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상의 삶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순간순간이 하늘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분께서 주신 '미나'를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마음이 열린 이에게는 천상은 이미 지상에서 시작되었고 종말에 완성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칙을 피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주신 달랜트를 뿌리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를 소중히 여기는 하루를 기대합니다. 어떠한 큰일도 작은 것에서 시작되니 만큼 작은 것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각자가 받은 은총은 다 다르고 그것은 단순 비교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어진 것을 분수에 맞게 쓸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많이 이룬 것도 중요하지만 이루기 위한 과정을 귀히 여기는 주님이시니 하나를 가지고 열 개를 늘렸건 다섯으로 늘렸건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를 위한 땀과 노력과 정성, 희생이 값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성공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도록 부르셨습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2.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준 글이 있습니다.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 없어져 간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신은 우리에게 부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닌 만인이 가진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각(Senses)을 선사하셨다.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나를 따라다니고, 나와 함께하고, 지속할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이다. 우리가 현재 삶의 어느 순간에 있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삶이란 극의 커튼이 내려오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줘라. 타인에게 잘 대해 줘라.”(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미나의 비유 뒤집어 보기...한 형제님이 기발한 착상으로 새로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 미나를 투자해서 손해를 보거나 다 잃는 경우도 나올 터인데 그럼 이 주인이 무어라고 했을까? 야단을 치셨을까 아니면 그래도 칭찬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게으름은 느림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잃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몸이 바쁜 게으름뱅이’는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들의 특징은 자신을 미화하고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입니다. 신중함으로 돌리거나, 성격의 여유로움으로 미화하고, 경우에 닥치면 다 해낼 거야라고 합니다. 아니면 우리 집안 내력이야, 일이 바빠서 등등 다른 핑계를 댑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스스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소소한 것에 매달려 사안의 경중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게으른 종을 책망하시는 까닭은 단순히 그가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삶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잃고서 남들의 소문에 부화뇌동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행태는 자신의 삶과 인격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신앙의 길은 주체성을 지닌 한 인격체로서 결단을 내리고, 그 결과 한 쪽을 포기하더라도 참된 길을 선택하여 누가 뭐라 해도 꾸준히 믿음의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길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험난한 길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신앙 안에서 위장된 게으름에 빠집니다. 몸만 바쁜 게으름에 빠집니다. 교회 할동은 열심히 하나 내적 결실이 전혀 없어집니다.
신앙 속 위장된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살피는 각성의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질문과 좋은 답을 구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매 순간 내 모든 행위에 숨은 진실은 없는지 뒤집어 생각해보고 검증해보아야 합니다.
그 형제분의 질문대로 우리가 한 미나를 모두 잃었다면 지혜로운 주인이 무엇이라 말씀하셨을까요? 과연 야단을 치고 책망하셨을까요? (윤경재 요셉)
4. 주님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라고 하시고, 또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나머지는 하느님 나라를 찾는 이에게 주님께서 알아서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청해야 할 것은 ‘성령님’뿐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분이 우리가 무언가를 청하면 당연히 들어주셔야 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면 아직은 우리 처지가 어떤 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를 감사로만 채워도 그분의 은혜를 충분히 감사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주님의 어좌가 놓여있었고 그 어좌 둘레에는 스물네 개의 어좌가 더 놓여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앞뒤로 눈이 달린 네 생물이 밤낮으로 주님께 “거룩하시도다!”를 외치며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그 스물두 개의 어좌에 앉아있던 원로들이 각기 자신의 왕관을 하느님의 어좌 앞에 던지며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즉, 위의 광경은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이 성령의 힘으로 각자 자신의 왕 됨을 포기하여 주님 앞에 엎드려 찬미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 나라에서는 주님께 경배만 드릴뿐 자신을 위한 다른 것을 요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거룩하시다, 혹은 감사와 영예와 찬미를 드리기만 해도 행복할 사람이 되기를 연습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것저것을 해 달라며 청하는 것도 자녀로서 나쁜 행위는 아니지만 그저 종으로라도 써 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오던 탕자의 그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전삼용 요셉 신부)
5. 하느님 자비의 손길을 느낀다면 불평불만 대신 그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겠지요. 고통과 시련 중에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자긍심을 갖고 자신의 좋은 점을 보며 기쁘게 살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은 내가 겪는 시련과 번민을 이겨내고도 남음이 있음을 믿어야겠지요.
끝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주신 선물들을 잘 관리해나가야겠습니다. 또한 주님의 청지기답게 모든 사물과 사람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특히 미소한 것과 심지어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도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 죄 중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하느님의 얼을 지니지 않는 사람은 없고, 모든 순간은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는 까닭이지요!
우리 모두 종말을 사는 사람답게 지금 나의 처지를 받아들이면서 언제 어디서든 온힘을 다하여 충실하게 임해야겠습니다. 게으름과 무사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늘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청지기의 자세이지요.
변화란 하느님께로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곧,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세속적인 유치한 원리를 버리고, 받기보다는 주는데서 기쁨을 찾고, 듣기보다는 말하기 좋아하는 습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되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지요. 기쁘게 형제자매들과 삶을 나누고, 지니고 있는 능력과 시간과 재화 모두를 형제들과 나눌 때 금화 하나를 열 개로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금화에 감사드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올바로 인식하여 사소한 것까지도 소중히 여기며, 나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느님께 얼굴을 돌리는 변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되돌리고 나눔으로써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잘 맞이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더 많은 것을 받게 되겠지만, 변화를 거부하고 나누지 않는다면 가진 것마저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체스코 신부)
2016년 11월16일[(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오늘 복음의 미나의 비유는 하느님께 과제물을 제출해야 우리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왕은 여행을 떠나며 열 사람에게 미나를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것을 셈하는데, 많이 벌지 못한 종의 처지를 불쌍히 여길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깨고,
오히려 그 사람의 게으름을 크게 벌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시지 않고 우리 존재를 사랑하시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게으름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성장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어린아이만 어른이 되도록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외적으로는 비록 이미 다 성장한 사람도 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이 성장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가꿔 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커다란 축복이요, 또한 평생 과제인 것입니다.
아멘.
- 2016년 11월16일[(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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