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12일 [(자)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인자로이 들어주시고, 저희를 찾아오시는 성자의 은총으로, 저희 마음의 어둠을 비추어 주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시나이다. 아멘.
말씀의 초대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며,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고 하느님의 신탁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가르치느냐고 하는 이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물으신다(복음).
제1독서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4,2-7.15-17
복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3-27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합니다. 얼마 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부당하게 장사하는 환전상들과 비둘기 장수들을 쫓아내시며 성전을 정화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꼬투리를 잡으려고 예수님께 질문하지요.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들은 예수님께서 왕이라고 대답하신다면 로마 총독에게 고발할 심보였지요. 또는 메시아라고 대답하신다면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옭아매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계를 슬기롭게 피해 가십니다. 오히려 그들이 질문한 방식대로 질문하시지 않습니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이 질문에 그들은 말문이 막힙니다. 지금까지 요한을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하늘에서 온 것이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라고 하면 요한을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진퇴양난에 빠진 그들은 자리를 피하고 맙니다.
결국, 그들 스스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고백한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의 슬기로운 처신을 대하면서, 우리 역시 어떤 어려운 역경을 당하더라도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 지혜의 은총을 청했으면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이제 성탄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도록 스스로를 추슬러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능력은 세상의 지식이나 물질적 능력, 인간적 재능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자(他者)를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은 자신의 힘을 빼고 하느님의 권능에 의지하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나의 소유와 내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고 진리 안에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는 이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느님 친히 선물로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정의를 위해 헌신하고, 진실하고 열린 자세로 서로를 이롭게 하는 일에 투신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닐 참 권한은 사랑의 권한뿐임을 기억하는 오늘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산은 성공을 향한 여정입니다. 성공을 향해 오르는 길은 광야생활이 아닙니다. 그런 삶에서는 절대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광야는 오를 곳이 없어서 떨어질 곳도 없습니다. 그저 견뎌내는 시간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었어도 주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실패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더 이상 무언가를 희망할 힘도 없을 때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광야를 걷는 삶이어야지, 산을 오르는 삶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은 절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망해야만 만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세상에서의 경쟁과 성공에 굶주리지 맙시다. 인생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인생은 산길이 아니라 끝도 보이지 않는 쩍쩍 말라진 광야로의 초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3. 원래 ‘권한’ 혹은 ‘권위’를 말할 때, “권”은 저울을 말한다고 합니다. ...
“모르겠소.”라는 이 말마디가 가슴을 쿵 내리칩니다. 이는 평소의 나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비겁하고,진실,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적이고 눈치 보며 하는 계산적인 이 말마디가 바로 내가 자주 내뱉는 말마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에 가린 제 마음을 질책하십니다.가려진 거짓을 들추시고 제 오만함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죄를 일깨워주십니다. 제가 저 자신의 저울로 예수님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제 자신의 저울로 다른 이들을 저울질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봅니다. 타인을 저울질 하다가, 자칫 제 자신이 저울질 당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봅니다.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제 자신의 속셈을 들여다봅니다. 은밀히 감추어진 속내를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을 저울질하기보다, 주님의 저울인“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처신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 오늘 하루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는 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권한을 따지기보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따지게 해 주십시오.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그에게 나의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가리게 해 주십시오.
타인을 저울질 하다가, 제 자신이 저울질 당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저울질하는 바로 그 순간, 막상 저울에 올려 진 것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가려진 제 자신의 위선의 무게임을 깨우쳐 주십시오.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제 자신의 속셈을 들여다보게 해 주십시오.
거짓과 위선으로 치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시고,
저울 위에 타인을 올려놓기보다 저 자신을 올려놓게 해 주십시오. 아멘.(이영근 신부)
4. “욕심을 부리는 병은 고칠 수 있으나 이론을 고집하는 병은 고치기 어려우며, 사물의 장애는 없앨 수 있으나 의리에 얽매인 장애는 없애기 어렵다고 합니다. 백성의지도자들이 ‘저희끼리’모여 의논한 것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의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리에 얽매여 하느님마저 자기들의 만족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김영수신부).
신자들의 유형이 여러 가지인데 ‘백설공주형’이 있답니다. ‘백방으로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이’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바빠야 하는 데 오히려 남을 흉보고 헐뜯고 욕하는 사람이지요. ‘원불교’형도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불만하고 교만한 신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거지’형도 있습니다.‘우아하고 거룩하고 지성적인’신자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기왕이면 ‘우거지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5. 조용히 배어 오르는 눈물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정화시킵니다. 막혔던 시야를 열어 줍니다. 어떤 행동이 옳은 일인지 판단을 내리고 실행할 힘을 줍니다.
고통(passion)은 함께(com) 나누면 가벼워지고, 행복은 함께 나누면 더 커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compassion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든 말씀과 행동의 근거가 바로 compassion입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띤 것이 아니라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본성의 떨림으로 저절로 솟아오르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굳게 닫힌 감옥 문을 열어준 권한은 바로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예수께서 그렇게도 강조하신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윤경재 요셉)
6. 민심이 천심임을 깨닫습니다.
세례자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무수히 따랐던 민중들을 통해 민심이 천심임을,
이분들의 권위가, 권한이, 자격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당대의 민중들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얼마전 광화문의 자발적 축제와 같은 평화로운 촛불 집회 뉴스를 보면서도 민심이 천심임을 깨달았습니다.
촛불을 든 온 세대가 망라된 무수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 상반된 감정을 느꼈습니다.
“두렵다. 사랑스럽다.”
그대로 전율戰慄의 체험, 황홀恍惚의 체험,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
무수한 군중이 두려우면서도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종교학자들은 절대자의 체험을 ‘전율의 두려움과 황홀의 사랑’ 둘로 요약합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7. 내 마음에는 어쩌면 그 아들의 '짧은 내맡김'보다,
그 어미의 일생을 통한 '긴 내맡김'이 오히려 제 마음에 더 아프게 시려올 뿐이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라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의 이 한마디의 말씀에 이 온 세상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하느님의 뜻이 당신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신 성모님의 그 말씀과
당신 아드님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대로 하십시오" (루카22,42)라는 말씀이
어쩌면 그리도 닮은 꼴의 말씀인지?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이신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근원을 낳으신 어머니의 사랑이! 그 두 마음은 둘이 아니라 분명 '하나'이다.
티없으신 성모 성심과 열절하신 예수 성심과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성모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성모님처럼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야 한다.(이해욱 신부)
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권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한은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권한은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국민들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권한들은 그 권한을 부여한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신앙의 시작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습니까?’(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9.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으시면서도 당신 자신의 안일함과 행복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권한은 군림하는 권한이 아니라 봉사하는 권한이다. 봉사하기 위해 하느님의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을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인간을 치유시키시는데, 인간을 구원하는데 사용하셨다.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으시면서도 봉사 받으려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인간에게 봉사하셨고 봉사 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셨다. 왜 그러셨는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유강수 야고보 신부)
2016년 12월12일 [(자)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신앙의 시작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권한’ 혹은 ‘권위’를 말할 때, “권”은 저울을 말한다고 합니다. ...
타인을 저울질 하다가, 자칫 제 자신이 저울질 당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봅니다.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제 자신의 속셈을 들여다봅니다. 은밀히 감추어진 속내를 말입니다.
이제는 남을 저울질하기보다, 주님의 저울인“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처신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 오늘 하루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는 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권한을 따지기보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따지게 해 주십시오.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그에게 나의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가리게 해 주십시오.
타인을 저울질 하다가, 제 자신이 저울질 당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저울질하는 바로 그 순간, 막상 저울에 올려 진 것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가려진 제 자신의 위선의 무게임을 깨우쳐 주십시오.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제 자신의 속셈을 들여다보게 해 주십시오.
거짓과 위선으로 치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시고,
저울 위에 타인을 올려놓기보다 저 자신을 올려놓게 해 주십시오.
아멘.
- 2016년 12월12일 [(자) 대림 제3주간 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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