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16일[(자) 대림 제3주간 금요일] 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주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주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니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며,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 곧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6,1-3ㄴ.6-8
복음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6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가 지상 것을 슬기롭게 헤아리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진정한 메시아이심을 밝히십니다. 이를 위해 당신을 증언할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들지요. 먼저 요한은 빛을 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하듯이 요한도 어둠을 밝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이끌었지요.
또한, 등불은 뜨거운 열을 발산합니다. 요한도 뜨거운 열정으로 하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아울러 등불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다가 마침내 꺼지고 맙니다. 요한 역시 그러했지요. 자신을 다 태운 등불처럼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증언하려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머물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명을 더 큰 증언으로 제시하십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증언은 추상적인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을, 그리하여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1요한 1,5).
그런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는데(요한 1,9 참조), 그 빛이 예수님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보다 더 큰 증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시려고 생명까지 바치셨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루카7,28).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인정받고 높아 진다해도 그는 결국 오실 ‘가장 작은 이’, 예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오실 주님의 길을 닦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위대한 인간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릴 수는 있으나 실제로 그 시대를 여는 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비천하게 오셨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4-1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이전에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위로해 주고 사랑함으로써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눈에 드는 삶이 중요합니다. 많이 사랑 받기보다 많이 많이 사랑하는 오늘을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2.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5,3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예수님께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과 하느님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입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3.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라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희망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며, 구세주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로서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에 빛을 내는 등불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등불을 보고 하느님 나라를 생각했고, 회개의 삶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이제 그 회개의 삶으로의 변화의 시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증언들은 무엇인가? 에 답을 구하는 것이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를 가진다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지신 증언의 내용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구원으로 이끄는 등불로서의 증언을 했던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증언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신 일들을 이야기 하십니다. 더불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이 그 증언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과 함께 동고동락하시며 행하셨던 일들이 무엇입니까? 지난 수요일 복음에서 우리가 들었던 말씀을 되새겨봅시다.
“눈 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예수님께 메시아이심을 물을 때 예수님께서 “보고 들은 대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을 살리시고, 죄를 용서하시며, 병자를 낫게 하시는 일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증언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그 누구도 대가 없이 할 수 없는 일, 그 누구도 자신을 그토록 낮추어 다른 이들에게 내어줄 수 없는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느님께서 다시금 당신의 백성을 당신 품 안으로 불러 모으시기 위해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일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 메시아 이심을 증언한다고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을 기점으로 전례적 변화를 가집니다. 12월 16일까지의 대림 시기 전반부에서는 임박한 종말론에 대한 언급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회개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오늘부터 성탄 전날 까지는 임박한 구세주의 탄생을 준비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복음의 내용도, 성찬기도문도 이제는 구세주의 탄생이 우리에게 가까이 왔음을 전해줍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구세주의 탄생, 우리가 기다리는 구세주의 탄생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오심”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보면서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말로서 구세주의 탄생을 증언할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 자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의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로서 살아가도록 합시다.(강헌철 펠릭스 신부님)
4. 참빛이신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입니다.
요한이 발광체發光體가 아니라 주님이란 발광체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反射體이듯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자 요한처럼 타오르며 빛을 내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빛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주님의 증언자들로서 주님의 빛을 충실히 반사할 때 많은 이들이 이 빛을 찾아 주님께 올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빛의 축제’인 미사를 통해 당신께 찬미와 감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를
당신 빛의 사람들로, 빛의 증언자들로 어둠의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빛이신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져 우리 모두 ‘주님 빛의 투명체透明體’가, ‘주님 빛의 반사체反射體’가 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웃을 환히 밝힐 것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5.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요한 5,33~36)
요한이 제창한 회개와 세례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전부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요한과 예수님 활동의 차이점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4,8)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중점이 정의와 심판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잘못을 회개하라는 요구는 처음에 충격요법으로 다가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이웃에게 전달하고 남과 나누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측은지심과 공감에서 나왔으며, 우정과 사랑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정과 사랑은 한 사람이 변화하면 그 영향이 이웃으로 번져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께 받은 동감(compassion)은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을 키우고 서서히 안으로 쌓아올려 끓어 넘치게 됩니다. 마치 주전자의 물이 열에 끓으면 수증기를 뿜고, 물이 넘쳐 오르는 현상과 닮았습니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아무런 저항감이 없습니다.
예수 한 분으로 시작된 사랑의 운동이 핵분열을 일으켜 거대한 폭발을 유발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요한1서 4,10)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는 요즘 애들 말로 ‘노는 물이 달라요.’입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요한의 증언이 필요치 않고,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차이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윤경재 요셉)
6.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지요. 요한의 증언은 타오르는 등불과 같았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 자체가 그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되는 까닭입니다(5,36). 의식을 깨우는 불타는 혀보다 더 강력한 것은 완전한 사랑을 온전히 살아내는 삶입니다. 사랑 앞에 더 이상 인간의 증언은 필요하지 않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그 사랑이요, 고통 중에 함께하시려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시며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일생 동안 우리를 향한 사랑의 순례를 미친 듯이 계속하셨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와 같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행복하여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 어떤 악행에도 손을 대지 않는 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을 기쁘게 하리라.”(이사 56,1-2.6-7)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2월16일[(자)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진정한 메시아이심을 밝히십니다.
이를 위해 당신을 증언할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들지요.
먼저 요한은 빛을 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하듯이 요한도 어둠을 밝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이끌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머물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명을 더 큰 증언으로 제시하십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는데(요한 1,9 참조), 그 빛이 예수님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보다 더 큰 증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시려고 생명까지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그 사랑이요, 고통 중에 함께하시려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시며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일생 동안 우리를 향한 사랑의 순례를 미친 듯이 계속하셨던 것이지요.
사람에게 인정받기 이전에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위로해 주고 사랑함으로써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눈에 드는 삶이 중요합니다.
많이 사랑 받기보다 많이 많이 사랑하는 오늘을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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