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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2월18일 [(자) 대림 제4주일]매일미사 묵상/전나무 7장


2016년 12월18일 [(자) 대림 제4주일]매일미사 묵상


▦ 오늘은 대림 제4주일, 대림초 네 자루에 모두 불을 밝힙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해 온 우리 마음도 촛불처럼 환하게 빛납니다. 길을 떠나, 유다 산악 지방의 한 고을을 찾아간 마리아께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이라고 한 엘리사벳의 외침이, 우리에게도 기쁨이 되도록 성모님의 굳센 믿음을 본받읍시다.       


본기도

주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다윗 왕실에게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보여 주시어,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시어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말한다(제2독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한 요셉에게 천사는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전한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제2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7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영성체 후 묵상

▦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던 요셉은 꿈에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보내 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도 요셉처럼 겸허하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행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의로운 사람 요셉 이야기입니다. 먼저 천사가 요셉에게 약혼자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요셉의 처지에서는 얼마나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까? 이와 비슷한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기에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그 결과 이 땅에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신뢰한다는 것은 큰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때로 만나지 않습니까?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마저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 계신 것으로 보여도 끝내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잘 극복한 사람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시각에서 고통과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눈앞의 것만 보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을 살며 힘들어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주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만 있다면, 그동안 볼 수 없던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희망을 새롭게 품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그러하였지요. 오늘은 주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에 관하여 묵상했으면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요셉은 주님의 천사에게서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하느님의 구원경륜과 관계를 맺는 요셉의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의로움에 의탁한 것입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나 불의 앞에서 자기 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항변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요셉의 방법이었습니다. 구원경륜과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개입하시도록 여백을 드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추구한다면서 얼마나 자주 나의 뜻을 내세우는지 모릅니다.

요셉이 지녔던 또 다른 의로움의 자세는 하느님의 음성을 따르는 받아들임입니다. 이 세상의 현실, 인간역사를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바꾸는 것은 의로움이신 하느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당시 사회질서와 율법에 비추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묵인한 것이 아니라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의 의로움은 단순한 불의의 거절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동참을 통해서 실행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그렇게 고상한 신비스러움이나 추상적인 관념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여 자신을 사랑의 신비의 일부로 내놓을 때 가능한 것이지요.

오늘도 성 요셉처럼 하느님의 의로움에 의탁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다른 이들과 이 사회의 구체적인 고통에 동참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 역사를 뚫고 오시어 생명과 참 기쁨으로 변형시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신앙인은 예수님이 하신 기적에 놀라서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실천하신 ‘불쌍히 여김’, ‘가엾이 여김’, ‘측은히 여김’을 보고 그것이 하느님과의 연대성을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죄인이라고 버린 사람들, 경건하지 못하다고 외면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천한 사람들을 가엾이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행위들 안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당신의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버지의 일을 행하는 아들이라고 스스로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이 과연 하느님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그분의 부활 사건입니다.


위대한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정직한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강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과 친분을 갖는 것은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의 생활 방식입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삶은 그런 우리의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위대하고, 강하고, 많이 가진 생명이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베풀어 주신 생명이라서 그것을 은혜롭게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서 그분과의 연대성 안에 살겠다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입니다. 그 연대성은 우리 주변의 어떤 인간 생명도 외면하거나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살고 소중히 생각하신 연대성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생명을 베푸셨고 또 아끼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앙인은 하느님과의 연대성 안에서 다른 생명들을 보고 소중히 생각합니다.

성탄은 그런 삶을 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출생한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출현은 하느님이 하신 새로운 일이었다는 초기 신앙인들의 믿음을 담아 알리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당신의 삶 안에 함께 계시게 살았고, 그 삶을 배워 실천하는 우리들 안에도 하느님이 살아계신다고 믿었습니다.(서공석 신부님)

3. “그 사람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들은 훗날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나는 늘 보이지 않는 어떤 운명의 실에 이끌려 왔다는 말을 한다. 누구나 자기 생애의 행복과 불행은 오로지 이 원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A. 쇼펜하우어) 


4. 오늘 하느님은 의인 요셉을 통해 개입하셨습니다. 


의인 요셉처럼, 1.연민의 사람, 2.기도의 사람, 3.순종의 사람만이 

‘신의 한 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요셉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인내의 기다림이 놀랍습니다. 

이런 의인 요셉을 통해 비로소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의 이름 뜻이 참 은혜롭습니다. 

의인 요셉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불리움을 받은 우리의 존재 또한 신의 한 수임을 깨닫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2월18일 [(자) 대림 제4주일]

오늘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오늘 복음은 의로운 사람 요셉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의 구원경륜과 관계를 맺는 요셉의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나 불의 앞에서

자기 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항변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요셉의 방법이었습니다.

구원경륜과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개입하시도록 여백을 드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현실, 인간역사를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바꾸는 것은 의로움이신 하느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당시 사회질서와 율법에 비추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묵인한 것이 아니라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의 의로움은 단순한 불의의 거절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동참을 통해서 실행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그렇게 고상한 신비스러움이나 추상적인 관념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여 자신을 사랑의 신비의 일부로 내놓을 때 가능한 것이지요.

여백을 드리고 기다리는 것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인 것

자신을 사랑의 신비의 일부로 내놓는 것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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