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17일 [(자)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 평생 동정녀의 태중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인성을 받아들이신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도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게 하시나이다. 아멘.
말씀의 초대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뒷날 겪을 일들을 일러 주며, 유다에게는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고 한다(제1독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까지를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전한다(복음).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1-2.8-10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천상 양식을 받고 비오니, 저희가 늘 이 양식을 바라며 성령의 빛을 충만히 받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등불을 밝혀 들고 마중 나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마태오 복음 맨 처음에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유다 혈통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계신 분임을 당대 유다인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혈통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만일 어떤 사람에게 타민족의 피가 섞였다면 그는 유다인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상실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14대씩 3부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1부는 영광의 시기로서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을 대국으로 만든 다윗 왕까지입니다. 2부는 다윗 이후부터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시기인데, 비극과 수치의 시기라 하겠습니다. 3부는 바빌론 포로 시기 이후부터 예수님까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족보에는 의외의 인물들, 곧 명예스럽지 못한 여인인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장벽을 헐어 버린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유다인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지는 것이고, 둘째는 남녀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고, 셋째는 선인과 죄인의 구별이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인이건 악인이건,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구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차별과 편견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그런데 성경은 이미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사람도 부끄럼 없이 올라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다말(=타마르), 창녀로써 적군과 내통한 라합, 그리고 젊은 과부로 보아즈를 유혹했던 이방인인 룻, 자기 남편을 죽인 다윗의 자식을 낳은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 입니다. 감추고 싶은 죄인들이 등장함은 의미가 큽니다. 메시아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묘한 방법으로 대를 이어가셨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의인과 죄인의 장벽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을 등장시킴으로써 유다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결국 주님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시려 인간역사 안에 오신 것입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2. 새삼 성경은 윤리교과서가 아니라 구원의 책이요,
하느님이 보시는 바는 우리의 죄가 아닌 믿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죄책감에 너무 시달리지 말고 주님 향한 믿음을, 사랑을 키우는 것이 제일이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정말 은혜롭기 한이 없습니다.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순간에 하느님이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가신 것이니,
이 여인들은 하느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이자 절정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은 마리아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족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족보에 편입된 우리의 은혜로운 신분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은 여전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은혜로이 개입하시어
당신 최상最上, 최선最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족보에는 4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여성들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타마르는 지혜로웠습니다. 유다가문의 혈통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지혜로운 타마르를 받아들였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라합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롯은 지극한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롯은 다윗왕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다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비천한 직업이었고, 이방인이었고, 과부였고, 가난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4. 하느님께서 인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신 것은 우리의 처지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끼어드시어 관계를 맺으시고 함께하시기 위한 것이지요. 사랑은 그렇게 철저히 타자중심적으로 움직입니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조건을 취하신 처사야말로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포기요 끝을 모르는 가난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찾기에 앞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당신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시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우리의 한계와 영혼의 어두움에도 하느님의 사랑의 역사는 항구히 지속됨을 말해줍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죄로 기우는 경향으로 인하여 늘 더럽혀진 역사요 어둠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를 품어 재창조를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족보는 모두를 사랑으로 품어주신 하느님의 애정 가득한 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인간 족보에 이름을 올리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을 삶의 정점에 두어야겠습니다. 그분처럼 다른 이들의 고통과 죄악, 상처와 부조리한 현실, 비정상과 몰상식마저도 사랑으로 품어 주님의 창조를 이어가도록 힘쓰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인간 족보에 이름을 올리신 주님의 족보에 나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행복한 날이 올 수 있을까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5. 예수님은 권위라는 허세도 없이, 물질의 풍요라는 허풍도 없이, 약자(弱者)의 초라함과 서민의 애환(哀歡)을 당신 것으로 하면서 인류역사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주면서 아버지이신 하느님과의 연대성을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같은 연대성을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막강한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휘두르는 권력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믿었습니다. 싸움에 이긴 사람은 하느님이 주신 승리라고 믿었습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이 주신 재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높은 지위를 얻은 사람은 하느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높고 강하고, 승리하고, 재물을 주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믿고 가르친 하느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상상하던 하느님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강하고, 승리하고, 재물과 권력을 주는 분이라고 고집하던 사람들의 위협에도 예수님은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생명을 잃으면서까지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을 처형한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달아놓고, 내려오는 기적을 해 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하면서 죽어 가셨습니다. 하느님은 강자와도, 승리자와도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면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실천한 예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느님은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우리의 노력들 안에, 또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을 퇴치하기 위해 봉사하는 우리의 노력들 안에, 살아계십니다.
성탄이 다가왔습니다. 옛날 베들레헴의 구유에 탄생하셨던 그 생명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 계시도록 기도합시다. 불쌍히 여기고, 이웃을 돌보아주며, 섬기는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실천들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십니다. ◆(서공석 신부)
2016년 12월17일 [(자)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성경은 윤리교과서가 아니라 구원의 책이요,
하느님이 보시는 바는 우리의 죄가 아닌 믿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죄책감에 너무 시달리지 말고 주님 향한 믿음을, 사랑을 키우는 것이 제일이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정말 은혜롭기 한이 없습니다.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순간에 하느님이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가신 것이니,
이 여인들은 하느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이자 절정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은 마리아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족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족보에 편입된 우리의 은혜로운 신분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은 여전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은혜로이 개입하시어
당신 최상最上, 최선最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죄로 기우는 경향으로 인하여 늘 더럽혀진 역사요 어둠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를 품어 재창조를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족보는 모두를 사랑으로 품어주신 하느님의 애정 가득한 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인간 족보에 이름을 올리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을 삶의 정점에 두어야겠습니다.
그분처럼 다른 이들의 고통과 죄악, 상처와 부조리한 현실, 비정상과 몰상식마저도 사랑으로 품어
주님의 창조를 이어가도록 힘쓰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인간 족보에 이름을 올리신 주님의 족보에 나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행복한 날을 희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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