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15일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가엾이 여기시어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며, 세례자 요한을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은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4,1-10
복음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염두에 두시고는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광야란 어디를 뜻합니까? 성경에 따르면 광야는 풀조차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을 뜻합니다. 생명이 싹트기 힘든 곳입니다. 그런 광야에서는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광야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바로 광야입니다. 혼란과 분열, 앞날에 대한 불안, 폭력과 증오, 환경 파괴, 이런 현상을 볼 때 우리는 마치 광야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마저 광야가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하느님을 모시면서도 막상 “하느님은 나와 함께 계신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지요. 본의 아니게 한눈마저 팔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염두에 두고 군중에게 재차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요한은 어떤 모습을 군중에게 보여 주었습니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예언자로서 활동하다 헤로데에 의해 목숨마저 잃었지요.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광야와도 같은 이 현실에서 요한을 대신하여 예언자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와 세상이 바라는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낮은 자세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리켜 보인 내용 중에서 가장 독특한 점이 바로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따라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며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윤경재 요셉)
3. 진짜 영성의 특징은 개방성, 유연성, 신축성, 단순성 등인데 ...존재는 관계입니다.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활짝 열려 있어야 성공적 유배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소리였을 뿐 그는 “복음”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헤로데 앞에서 정의를 외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 안에 십자가의 신비가 담겨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찬홍 야고보 신부)
5. 오늘도 고통스럽고 불평들과 불의로 가득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꿔주시는 주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는 복된 날이길 바랍니다. '이왕이면 현찰이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영성체송) 지혜로운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2월15일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소리였을 뿐 그는 “복음”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헤로데 앞에서 정의를 외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 안에 십자가의 신비가 담겨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리켜 보인 내용 중에서 가장 독특한 점이 바로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따라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며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와 세상이 바라는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낮은 자세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현찰이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지혜로운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2016년 12월15일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수산나 -
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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