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25일 일요일 [(백)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이 밤, 하늘의 군대가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강생의 신비를 다시 묵상하는 이 밤,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우리도 천사들과 소리 맞춰 구세주를 보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본기도
하느님,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 거룩한 밤을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세상에서 이 빛의 신비를 깨닫고, 천국에서 그 빛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시나이다.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한 아들이 주어졌다며 그의 이름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다며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한다(제2독서). 요셉이 호적 등록을 하러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가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아기를 낳는데,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찬미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9,1-6
제2독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2,11-14
복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영성체 후 묵상
▦ 우리의 복된 희망이 오늘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밤 우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를 보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밤에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는,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놀라운 신비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묵상
구세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갓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셨지요. 이는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행위를 뜻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밤새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지요. 목자들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양 떼와 함께 잠도 들판에서 자야 했지요. 그래도 빈 들판을 지키며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밤을 새우는 목자들은 누구입니까? 열심히 일하는데도 시련만 겪는 이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주어지는 온갖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는 겸손한 이들이지요. 이분들이 주님을 먼저 뵙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님이 가장 필요한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마음을 못 열고,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아기 예수님의 빛이 가장 필요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도록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눌 때, 이 어두운 사회에 빛을 비추게 됩니다. 이럴 때 2천여 년 전 들려왔던 저 아름답고 평화로운 천사들의 노래가 어둠 속에서 다시 들려올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그리스도는 낮고 작은 곳을 “향하여” 계신 분이시고, 우리도 역시 그렇게 중심이 아니라, 변방을 “향하여” 있는 이들이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본질적으로 그리로 ‘향하여 있는 존재’(본 휘퍼)요, 그리로 ‘향하여 방향 지워진 존재’(아우구스티누스)요, ‘위타적 존재’(폰 발타살, 발터 카스퍼)여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향하여’ 계시니, 우리를 항상 당신 ‘앞에’ 곧 ‘면전에 서게’ 하십니다.(이영근 신부)
2. 우리가 돌보는 짐승에게 필요한 먹이는 여물이지만, 하느님께서 돌보시는 인간에게 필요한 먹잇감은 예수님의 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알아듣기 거북하고 놀라운 진리를 가리켜 보이려고 굳이 아기 예수님을 말구유에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표징을 알아들으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먹이시러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길은 바로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께서 기르시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서는 분명히 당신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6,60)
수제자 베드로는 어렴풋하게나마 예수님의 몸을 먹고 마시라는 말씀의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먹잇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말씀을 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고 마시며 살아온 자는 예수님처럼 제 몸을 이웃에게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또 다른 짐승들의 구유에 자신의 몸을 눕힐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의 현세적 기쁨에 싸여 표징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각 성당 제대 앞에 꾸며 놓은 마구간의 광경을 그저 장식물로만 여기고 머리 숙여 절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구유 속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의 표징을 새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죽어야만 하는 짐승인 우리가 진정 살아나는 길은 바로 구유에 누워 먹잇감으로 오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참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윤경재 요셉)
3. 오늘 복음사가 루카의 안목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심오한 의미를 꿰뚫어 통찰한 루카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루카 역시 이를 통해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우리를 다스릴 진짜 임금은 예수님뿐임을 상기시킵니다.
‘아우구스트’란 칭호가 주어진 황제 옥타비안은 전례없는 번영과 평화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룩한 분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의 구원자savior of the world’로 불렸습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을 다룹니다.
진짜 평화의 임금이 누구인지, 진짜 세상의 구원자가 누군지 은연중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당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들판의 천사들에 의해 가난한 목자들만이 충격적으로 체험했을 뿐입니다.
강보에 싸인 이 작은 예수 아기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역설적 신비입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 장차 로마제국을 접수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궁극의 승리를 거두어 로마제국을 접수하여 그리스도교화했고
진짜 세상의 구원자로 등극하여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na'를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아직도 미완성의 현재진행형인 평화입니다만 말입니다.
탄생하신 예수님의 평화와 기쁨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들판에서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돌보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들만이 구유에 주님의 탄생을 체험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탄생하신 구원자 예수님께서 구유에 뉘어 계시리라 생각했겠습니까?
하늘 높은 곳에서가 아닌 낮고 낮은 비천한 자리에서 만나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 은폐의 신비입니다.
구유의 신비는 마침내 십자가의 신비로 연결됨을 봅니다.
하여 오늘 탄생하신 주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들판에서 밤의 고독과 침묵중에 깨어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아나빔인 목자들이었습니다.
결코 예루살렘의 부자들도 유명한 종교인들이나 신학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목자들처럼 제 삶의 자리에 충실하면서 가난한 영혼이 되어 깨어 기다릴 때 탄생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의 천사는 복음의 목자들은 물론 오늘 밤 깨어 주님 탄생을 기다려온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이들에게 평화!”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성당에 가는 것이 의무와 책임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성당에 가는 것은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들리는 것처럼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곧 70이 되신다는 기사 분은 곧 성당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쩌면 기사 분에게는 제가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성탄 선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겸손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성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 성탄의 정신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어 줄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교회가 스스로 성탄의 정신대로 사랑과 희생, 자비와 정의의 행동을 보여줄 때 우리 교회는 참으로 한국 사회 안에 구세주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염수정 추기경)
5. 목자들은 경사롭고 놀라운 구원 사건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합니다(2,15). 찾아오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를 함께 공유하고 나누며, 함께 찬미하려고 ‘거룩한 소통’을 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알려 주신 일을 보기 위하여”(2,15) 가려 한 것이지요. 구원의 길, 주님 성탄을 맞이하는 태도는 주님께 집중하고 그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고통과 시련을 뚫고 찾아오신 구세주의 선물에 대해 “곰곰이 되새기고”(2,19), 목자들처럼 구세주의 오심에 대해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를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온 세상에 성탄의 신비가 드러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6. 하느님은 인류구원이라는 당신의 뜻을 실행하려고 우리와 같은 비천한 사람이 되신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눕혀 보호하셨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증명하는 신비다. 하느님은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우리 가운데,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호자, 우리의 ‘그대’임을 입증하셨다. 우리는 구유조배를 할 때 목자들이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뵙고서 가난과 고독을 느끼기보다 자기 백성을 위한 하느님 보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험악한 세상에서 보호하고 보살펴주시는 분이다.
사랑의 원리는 가까이 다가섬으로써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격을 유지하면서 보호해 주는 것이다. 그 간격을 얼마나 두느냐가 문제이다. (박영식 야고보 신부)
2016년 12월25일 일요일 [(백)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오늘의 복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갓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셨지요.
이는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행위를 뜻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밤새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지요.
하느님께서는 알아듣기 거북하고 놀라운 진리를 가리켜 보이려고 굳이 아기 예수님을 말구유에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표징을 알아들으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먹이시러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길은 바로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께서 기르시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고 마시며 살아온 자는 예수님처럼 제 몸을 이웃에게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또 다른 짐승들의 구유에 자신의 몸을 눕힐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우리 가운데,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호자, 우리의 ‘그대’임을 입증하셨다.
우리는 구유조배를 할 때 목자들이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뵙고서
가난과 고독을 느끼기보다 자기 백성을 위한 하느님 보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험악한 세상에서 보호하고 보살펴주시는 분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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