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예심화반

문예심화반 제3강 글짓기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비교', 찾아야 할 것은 '비유'>/박새 2장


문예심화반 제3강 글짓기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비교', 찾아야 할 것은 '비유'>


매일 아침 기상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톨릭 <굿뉴스>에 들어가 '매일미사'와 '우리들의 묵상'을 읽는 것이다. 꼼꼼하게 읽으면서 심금을 울렸던 내용을  발췌하여 블로깅하는 것이 나의 습관이다. 2012년 3월1일부터 시작하였으므로 한달반이 모자란 5년을 한 셈이 된다. 습관처럼 굳어지기도 했지만 나는 이 아침 묵상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어느 날, '우리들의 묵상' 글에서 나의 심금을 울린 것이 윤경재 요셉님의 '비교와 비유'이다. 발췌한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동물 유치원에 오리, 토끼, 참새가 엄마 손에 이끌려 공부하러 모였습니다. 수영 시간에는 오리가 제일 빨랐고, 등산 시간에는 토끼가 오리를 따돌렸습니다. 노래 시간에는 참새가 음악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토끼는 아예 아무 소리도 못 내었습니다. 토끼가 수영을 못한다고 극성쟁이 엄마가 수영대표 팀 코치에게 개인교습을 해준들 오리를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등산 시간에 토끼에게 뒤떨어졌다고 오리의 발을 성형수술 해준들 제대로 달릴 수나 있을까요? 노래 못 부르는 토끼에게 성대 수술을 해 주어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냥 자기가 잘 하는 것의 성공체험을 가지고 살면서 타인이 잘하는 것에 박수를 쳐주는 게 올바른 길입니다. 그런 삶이 비유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면 자신이 본래 가진 능력마저 퇴보하는 우를 범할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처사는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여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유의 비전을 여는 방법입니다. 그럴 때 그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비교'는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비교'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도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비교'의식이 생겨서 뻐기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사실 환갑 나이가 훌쩍 지난 나는 별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음치와 박치이므로 노래나 악기를 배우는데 자신이 없고, 손재주가 별로이므로 뜨개질이나 조각, 공예 등에 흥미가 없다. 단지 글쓰기와 야생화 이름 알기 등에 취미가 있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이것 역시 하다보니 '비교'의식이 생겨서 작아지며 위축되는 나를 발견한다. 


야생화 이름 알기는 요즘 '모야모' 앱이 생겨서, 모야모 회원으로 온라인, 오프라인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잎이나 열매, 줄기 등의 일부 사진만을 보고 식물의 이름을 즉각 대답하는 재야의 고수 회원들이 너무나 많은 사실에 놀라고 있다. 원예종의 경우에는 외국어로 되어있어 입안에서 뱅뱅돌면서 외워지지 않는 이름인데도 즉각적으로 그 이름을 댓글에 달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곤충의 고수, 나비의 고수, 다육의 고수, 버섯의 고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어, "옴매, 기죽어" 이다.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비교를 하게 되면서 문득문득 맥이 풀려 자포자기의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난감하다. 별것도 아닌 짧은 글을 쓰면서 몇시간 이상을 끙끙거리고 있는 나를 생각하면 한심스럽기가 그지없다. 지난 문예심화반 수업시간에 격월간 <그린에세이 1.2월호> 책자의 수필 2편과 단상 1편을 읽고 토론하였다. 수필 「은행나무 / 정인순」, 수필「한 떨기 코스모스 / 안과순」, 「겨울 단상 / 김애자」님의 글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비교의식이  스물스물 올라와 한숨이 나온다. 사춘기 10대의 소녀도 아닌 60대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도 남과 나를 비교하여 열등감에 빠지는 어리석은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한심하다. 지난 성탄절 판공성사 내용도 "남과 나를 비교하여 자기비하감이 생겨요"였다. 신부님께서는 보속으로 묵주5단 기도를 주셨다. 


올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비교', 찾아야 할 것은 '비유'이다. 오리는 수영, 토끼는 달리기, 참새는 노래에 소질이 있다. 이와같이 사람도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여 패배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면서 앞만 보고 가는 그런 뚜벅이의 삶을 살아야 하리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좌고우면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성장시켜가는 것이 내가 찾아야 할 비유의 삶이고 희망이고 비전이다.


'우리들의 묵상'글에서 읽었던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님이 주장하셨던 1만 시간의 법칙이 생각난다. 어느 한 분야에 1만 시간만 소비를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하루에 2~3시간씩 10년을 소비하면 1만 시간이 된다고 한다.

신부님은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을 정말로 어려워했다고 한다. 초등학생보다도 더 못쓴다는 평가를 받는 글 실력과 남들 앞에만 서면 울렁증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해서 책을 보다가 좋은 구절을 찾으면, 또는 주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신부님들의 강론을 꾸준히 모았다고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책을 읽고 스크랩 등의 준비를 10년 정도 하다 보니 사제 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사제가 된 이후에 빠다킹 신부라는 닉네임으로 묵상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하다보니 지금처럼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하게 되었다는 글을 읽었다.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나의 매일미사 묵상글 블로깅 작업이 5년을 더하면 10년이 되므로 1만 시간 법칙이 적용되어 어느 정도 고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말하면 내가 가진 달란트가 비록 우월하지 않더라도 감사하며 성장하는 '비유'의 삶을 찾아야 할 것이며,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는 일은  내가 버려야 할 삶이다.


- 2017년 1월11일 수요일...수산나 -


(참고)

비교[]: 이상 견주어 공통점이나 차이점, 우열 살핌.

비유[/]: 어떤 사물이나 현상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 빗대어 표현함.



박새 1


박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