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1월29일 [(녹)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매일미사 묵상/땅비싸리 4장


[매묵]2017년 1월29일 [(녹)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매일미사 묵상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다.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에 쓰인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4주일이며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약속하셨으니, 교회를 성령의 힘으로 복음의 작은 이들처럼 신랑이신 주님을 따르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질병과 기아로 고통을 겪는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기로 다짐하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분노의 날에 이스라엘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라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시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시어, “행복하여라!” 하고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라.>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3; 3,12-13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 후 묵상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을 곰곰이 묵상합시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어리석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랑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행복은 세속적인 기준에 따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박해받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이른바 착한 사람들, 의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행복을 채워 주시면, 그 많은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 속에서도 참된 행복이 마음속에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을 주는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산상 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 행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산상 설교의 참된 행복은 현실의 역동성 안에 드러나는 것이지, 미래에 막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행복의 조건을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말합니다. 지상에서 가난한 마음, 겸손의 영을 지니는 사람이 하늘 나라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픔의 밑바닥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위로’를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유함과 의로움과 자비로움, 깨끗한 마음 안에서 주어지는 예수님의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의 삶 속에 불멸의 평화가 가득 찹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다가 어려움이나 박해를 당할 때, 우리는 불사불멸의 즐거움, 영원한 상급의 전조를 체험합니다. 예수님의 ‘진복팔단’이 내 안에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세상의 눈으로 볼 때 하느님 때문에 가난하고 슬프고 박해 받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스럽고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참 행복을 주시려고 세상의 어리석고 약한 것과 비천하고 천대받는 것을 선택하시고(1코린 1,27-28),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의로움과 겸손함을 찾으러(스바 2,3) 기쁘게 걸어가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때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도 역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피하고 싶고,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긴장과 갈등, 불화와 대립, 적대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상대를 뜯어고쳐 변화시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 어찌합니까! 그 질곡은 진절머리 날뿐! 벗어나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그를 거부하면 더욱 더 멀어지고, 미워하면 더욱 더 미워지기만 합니다. 바로 이럴 때가,진정 축복을 빌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복을 빌어주어야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축복기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주님, 그를 축복해주십시오. 저도 그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축복이 실현되도록 저희가 응답하게 하소서!
 
 참 묘한 것은, 그렇게 하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렇게 할 때, 이미 내 자신이 변한 것입니다. 거부하고 미워하던 그 상대를 축복해주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이미 내 안에서 함께 하십니다. 벌써 내 안에 그를 ‘위하는 마음’을 북돋으십니다.
 
이처럼, 이 소박한 우리의 축복기도는 우리에게 당신의 권능에 응답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공간을 열어 드립니다. 그분의 자비가 흘러들게 하고, 그분 존재를 건네받게 합니다. 바로 이 소박한 축복이 가져다 준 선물입니다.
 다시 한 번 축복을 빕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받아 누리는 축복의 한해 되길 빕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이영근 신부)

3. 성경의 가난은 무소유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 자유로움에 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부자라도 성경의 가난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세속 판단으로는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성경의 관점에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물론 가난은 적극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힘이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살면 주님께서 힘과 행복을 주신다는 암시입니다. 돈과 물질은 흐르는 물과도 같습니다. 붙잡는다고 잡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셔야 진정한 소유가 되고,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김대열 가브리엘 신부)

2017년 1월29일 [(녹)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
오늘의 복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성경의 가난은 무소유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 자유로움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힘이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살면 주님께서 힘과 행복을 주신다는 암시입니다.
돈과 물질은 흐르는 물과도 같습니다. 붙잡는다고 잡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셔야 진정한 소유가 되고,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수산나 -



땅비싸리 1


땅비싸리 2


땅비싸리 3


땅비싸리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