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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1월28일 토요일 [(백) 설] 매일미사 묵상/등나무 4장 / 등나무 4장


[매묵]2017년 1월28일 토요일 [(백) 설] 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 오늘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조상들을 기억하며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임을 잊지 말고, 주님의 성실한 종으로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살아갑시다.

본기도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주 하느님, 오늘 새해 첫날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하오니, 온갖 은총과 복을 가득히 베푸시어, 저희가 조상들을 기억하며 화목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이르신다(제1독서).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니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이른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3-15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영성체 후 묵상
▦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온 주인은 깨어 기다리던 종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듭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신 우리는 오늘 하루도 깨어 있는 자세로,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고 주님의 종답게 겸손하게 고백하며 열심히 살아갑시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기원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새해 첫날인 설 명절에 이러한 축복을 서로 나누면 좋겠습니다.
설날에 우리는 ‘낯섦’을 경험합니다. “올 한 해의 운세는 어떻게 전개될까?” 하고 호기심과 불안감을 지닌 채 묻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음력으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에 조용히 자신을 삼가며 하느님의 섭리와 말씀을 바라보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우리가 오늘 가슴에 새길 말씀입니다.
새 옷과 새로운 마음으로 단장하면서 하느님 앞에 깨어 있는 시간이 더 많도록 결심해 봅니다. 한 해 동안 세속의 시간에 머무르기보다 성스러운 시간에 더 머무르기로 다짐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등불 하나를 켜 두어야 하겠습니다. 자유와 평화의 나라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등불을 비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쁜 사회생활과 세속 생활을 떠나 가족의 귀중함과 민족의 일체감을 느끼는 시간으로 옮아갑니다. 고향과 친척들을 만나면서 공동체의 결속과 정신적인 유대감을 새롭게 발견하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뿌리가 가족과 조상을 넘어서 하느님에게서 나옴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한 해 동안 저희를 평화로이 지켜 주소서!”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다른 깡통이 그런 말을 외친 까닭은 뚜껑을 열지 않은 채 강물에 들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빈 깡통이 머리를 숙이고 강에 들어갔더라도 열려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제 속을 비우고 또 겸손히 머리 숙여 실천했더라도 개방성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장자에 이런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옛날 노나라 서울에 한 바닷새가 날아와 앉았다. 이를 안 노나라 임금이 이 새를 친히 궁궐 안 종묘에 데리고 와서 술을 권하고,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바닷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장자는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대접해도 바닷새가 원하는 바를 살펴 지켜주지 못하면 결국 진정한 사랑과 보살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타자성을 살펴 지켜주는 것이 첫째라는 가르침입니다.

깨어 기다리지 못하고 잠을 자는 사람은 자신을 개방하지 못하고 뚜껑을 닫아 폐쇄상태로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방심과 무기력, 의혹 속에서 주인이 맡긴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했던 어리석은 종(루카19,20)과 같은 자일 것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가혹한 말처럼 들리지만, 결국 자신이 되기를 포기한 사람이 받는 댓가입니다.
 
이처럼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상대의 타자성과 주체성을 함께 인식하고서 먼저 자신을 열고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자아를 주장하여 상대와 부딪치는 것이 아닙니다. 통념과 습속에 젖고, 무엇보다 자기 관심에 갇혀 있는 한 타인의 얼굴이 보일 리 없고 전체를 향한 책임 또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타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전체를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려는 자세를 갖추기를 예수께서는 바라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첫번째 깡통처럼 신선한 생수를 자신 안에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깨어 기다릴 때 주인은 띠를 매고 나서서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시중을 들며 함께 식사를 나눌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행복은 나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깨어 주인과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늘 깨어 내 안에 계신 성령과 교류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윤경재 요셉)

2. 설날은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축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데 모여 조상들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감사와 기쁨을 나눕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이 축제의 주인이신 주님이 누구이신지 생각해야겠습니다. 또한 그분께서 조상들과 우리에게 해주신 은총에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제 1독서에서 주님은 축복의 원천이요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한편 제 2독서 야고보서에 따르면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나약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길을 충실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내 삶을 주관하시는 선하신 주님의 축복 안에서 축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길을 제시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주님을 기다리고 맞이해야 할까요?

우리는 복음에 나오는 종처럼 주인이 언제 돌아오든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만이 온갖 선의 원천이시요 주인이시기에 우리는 그 좋은 것을 받기에 합당한 자세로 기다려야겠습니다. 오시는 분이 내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분께 좋은 것이 있음을 믿으며 사랑의 설렘 속에 기다리는 것이 복받을 사람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3. 성서학자들은 루가복음서의 것이 행복선언의 원형(原形)에 더 가깝다고 말합니다. 마태오복음서는 행복한 사람들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서 말하지만, 루가복음서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그리고 지금 우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시선에서 현실을 보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세상의 통념 따라 말하지 않습니다. 부자(富者)와 권력자(權力者)들을 기쁘게 하여 그들과 잘 지나겠다는 의도로도 말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자기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유대교 기득권자들이 주장하던 것과 다른 말씀을 하다가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한 이해타산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난도 있고, 굶주림도 있으며, 슬픔과 아픔도 있습니다. 우리의 통념은 그것을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말하며, 외면하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행복선언을 들은 신앙인에게 그들은 우리의 축복을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라면, 하느님의 축복을 그들에게 실천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자기의 소원성취를 하느님에게 빌지 않고, 그 축복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실천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2017년 1월28일 토요일 [(백) 설]
오늘의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우리가 오늘 가슴에 새길 말씀입니다.
 
아무리 제 속을 비우고 또 겸손히 머리 숙여 실천했더라도 개방성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타자의 타자성을 살펴 지켜주는 것이 첫째라는 가르침입니다.
이처럼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상대의 타자성과 주체성을 함께 인식하고서 먼저 자신을 열고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깨어 기다릴 때 주인은 띠를 매고 나서서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시중을 들며 함께 식사를 나눌 것입니다.

“주님, 한 해 동안 저희를 평화로이 지켜 주소서!”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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