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3일 [(녹)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본기도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에게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의 간계로 헤로데 임금은, 자기 생일잔치에서 춤을 춘 헤로디아의 딸의 청을 받아들여 요한의 목을 베게 한다(복음).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8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히브리서 저자와 시편 저자의 신념에 찬 두 고백 속에 우리는 세상의 권력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느님을 향한 더 큰 희망을 지닌 이들의 믿음을 봅니다. 반대로 세상에 희망을 둔 이들은 자신이 차지한 재산과 권력, 지위와 명예를 잃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 여깁니다.
오늘 복음의 헤로데의 모습 속에서 한 인간의 가장 초라한 모습을 엿봅니다. 헤로데는 자기 생일잔치에 찾아온 고관들과 무관들 앞에서 권력의 욕망을 드러내고 싶었고, 그래서 손님들을 즐겁게 한 헤로디아의 딸에게 했던 호언에 책임을 지려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맙니다. 물론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존경했지만,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잘못을 비난하는 세례자 요한의 질책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체면과 자기기만에 빠진 헤로데의 결정으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위대한 예언자는 한순간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하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은, 한 권력자의 명령에 의해 끝나 버린 세례자 요한의 운명이 아닙니다. 칭송받던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의 환생이라고 믿을 만큼 권력과 욕망을 지키기 위한 진퇴양난에 빠졌던 나약한 권력가와는 정반대로,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자신을 맡긴 세례자 요한의 신뢰에 찬 삶을 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려고 광야에서 회개를 요청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모순된 권력의 희생양이 되실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계획과 의지를 넘어섭니다. 때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자신의 숙명을 사랑하는 용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하느님은 인간이 자유롭게 또 다양하게 살 것을 원하셔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고, 숨어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가 자유로운 실천으로 소금과 빛이 되어 은혜롭게 살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자유롭게 사셨습니다. 그분은 주어진 각본대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유대교가 요구하던 계명 준수에 얽매여 살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당신의 창의력으로 다양하게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이를 만나면, 병고를 덜어주고, 죄인이라 낙인찍힌 이를 만나면,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율법을 못 지켜, 혹은 직업이 세리라, 유대교 당국으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을 만나면, 그분은 그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기쁨이고 해방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당부하신 말씀도 기쁜 소식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며 죄를 용서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실천하신 바를 제자들도 실천하여 사람들을 살맛나게 하는 소금이 되고, 사람들이 진실을 보게 하는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
2.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르 6,18)
주님!
숨 막히게 외치고 있는
제 뼈 속에 새겨진
진실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힘으로 짓눌러
가라앉힐 수 없는
그 무엇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혀는 멈추어도
결코 멈추지 않는
목이 베여도
결코 베어지지 않는
살아있는 말이 되게 하소서
제 혀가 울 줄을 알게 하소서.
진정으로 사랑하여 울게 하소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울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3. 복음서에 나오는 헤로데는 두 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유다 땅을 지배했던 자는 헤로데 대왕이며,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고 십자가 신비를 드러내시며 부활하셨을 당시 갈릴래아 지방의 영주였습니다. 헤로데 가문은 유다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이두매아 출신 귀족으로 로마에 유학하여 안토니우스와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거금을 뇌물로 주고 유다 땅의 왕권을 차지한 헤로데 대왕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혈통 콤플렉스와 반란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마태오복음서 2장16절에 베들레헴 땅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죽이는 이야기도 이에 비롯하였습니다.
권모술수에 능한 헤로데 대왕은 유다인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헤로데 성전을 지어주었으며 유다인 혈통 하스모네아 가문의 공주 미리암네와 정략 결혼하여 아들들을 낳았으나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의심하여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 혈통의 손녀가 헤로디아입니다. 그가 AD4년 병으로 급사하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천벌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를 닮고 싶었습니다. 엄부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그는 내면에 분노를 안고 살았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한 억울한 심정이 앙금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중인격을 보입니다. 겉으로는 원만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집에 가면 폭력 남편으로 또 폭력 아빠로 변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남들은 전혀 뜻밖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들은 외면과 내면의 갈등을 만만한 상대에게 분풀이하는 못난이일 뿐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남들이 자신을 좋게 본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이 벌이는 폭력이 정당하다고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큰 범죄를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 업적을 따라하려고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의 이름을 딴 신도시를 지어 바쳤습니다. 그러나 유다인 공동묘지 터에 자리를 잡았던지라 유다인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디테일에 세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도 유다혈통인 헤로디아와 정략적으로 재혼하여 살로메를 딸로 받아드렸습니다. 조카이자 제수였던 헤로디아도 전 남편인 필립보가 무능해 보이자 내치고 삼촌인 안티파스와 재혼한 것입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었습니다.
헤로데 가문은 이렇게 유다인들에게 여러 가지 횡포를 부렸습니다. 점령군의 행태를 최악으로 보였습니다. 그 극치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사건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 여긴 것은 자신도 아버지처럼 천벌을 받아 급사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창조주 성부와 성자께서 피조물인 인류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은 아주 달랐습니다.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뭇 천사를 파견하신 게 아니라 최고의 권위를 지니신 아드님을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송구스럽게도 인간을 친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인간의 세세한 점까지 다 헤아려 주시고 참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께서 작은 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살펴주신 바대로 점령군의 행태가 아닌 이웃과 우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윤경재 요셉)
4.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도 형제애의 실천 권고에 즉시 이어지는 환대의 권유입니다.
“형제 여러분,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13,1-2).
모든 형제애의 근저에 스며있는 환대의 사랑입니다.
환대는 그리스도교는 물론 수도전통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정주서원을 사는 베네딕도 수도자들에게 환대는 대표적 영성입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성규53,1).(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5.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건강하였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오늘 화답송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쳐도, 내 마음 두렵지 않으리라. 나를 거슬러 전쟁이 일어나도, 그래도 나는 안심하리라. 환난의 날, 그분은 나를 당신 초막에 숨기시고, 당신 천막 은밀한 곳에 감추시며, 바위 위로 나를 올려 세우시리라.”
사제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제는 이슬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는 험한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돛단배와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굳센 믿음이 있다면, 다윗처럼 자신의 잘못을 겸손하게 뉘우친다면, 베드로 사도처럼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제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힘을 주실 것입니다.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6.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순교를 전하는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태도에 주목해 봅니다. 당시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시작된 하스모니아 왕가의 처절한 왕위 쟁탈전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고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야 할 만큼 국력도 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로데는 “군중이 요한의 말을 듣고 매혹되어 모두 그 주위로 모여들었고, 요한의 권고에 따라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으며, 요한이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요한을 없애버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여겼습니다.”(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고사)
더구나 요한은 여덟 번이나 결혼하여 열 명의 부인을 거느린 헤로데 왕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6,18) 그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그의 지적에 당황해 하면서도 그의 말을 기꺼이 듣곤 했습니다(6,20). 그러나 명예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체면을 중시했던 그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며 요한의 처형을 허락해버립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2월3일 [(녹)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히브리서 저자와 시편 저자의 신념에 찬 두 고백을 외웁니다.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자신을 맡긴 세례자 요한의 신뢰에 찬 삶을 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려고 광야에서 회개를 요청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모순된 권력의 희생양이 되실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계획과 의지를 넘어섭니다.
때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자신의 숙명을 사랑하는 용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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