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2일 목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 40일째 되는 날, 곧 해마다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본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신 뒤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 의식을 치르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이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전례 개혁으로 1970년부터는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어 주님의 축일로 지내 오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점에서 죄가 없으신 성모님에 대한 ‘취결례’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해마다 이날 교회는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한편, 젊은이들을 봉헌 생활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기도할 것을 권한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비오니, 사람이 되신 외아드님께서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셨듯이, 저희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저희 자신을 봉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언젠가 주님께서 홀연히 당신 성전으로 오시리라고 예언한다. 그분께서 오시는 날은 선과 악을 갚으시는 심판 날이며 세상을 정화하시는 날이다. 그분께서는 사제들을 정화하시어 당신 백성이 하느님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실 것이다(제1독서). 성탄 축일 후 40일이 되는 날,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한다. 말라키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실 때, 시메온과 한나는 이스라엘의 기다림이 이제 끝나고 구원이 도래했음을 알아본다(복음).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또는 히브 2,14-18>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또는 2,22-32>
감사송
<주님 봉헌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원하신 성자께서는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시어, 성령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광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밝혀지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를 기쁘게 맞이하며,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시메온의 기다림을 채워 주셨으니, 이 성체를 모신 저희가 주님의 은총을 풍부히 받고, 시메온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기쁨을 누렸듯이, 저희도 기쁘게 주님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유다인의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시는 요셉과 마리아를 생각해 봅니다. 성령의 계시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요셉의 마음은 먹먹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낳은 아기 예수님이 정말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될지 확신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첫 아기를 봉헌하는 두 사람이 만난 늙은 예언자 시메온의 고백은 자못 진중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살면서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으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시메온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 암흑의 역사를 살고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죽기 전에 틀림없이 구원의 빛을 보여 주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시메온의 눈은 어둠 속에서 빛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본 것입니다.
삶이 너무 괴로우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고 말하고, 너무 억울하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평생 무엇을 찾으며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늙은 예언자 한나도 그랬습니다. 평생을 과부로 살아온 그녀에게 남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짓밟힌 예루살렘의 영화를 되찾는 날, 과부로 살 수밖에 없었던 한 많은 삶에도 하느님을 섬기며 믿어 온 영광의 날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을 성모님께서도 당신 고통을 세상을 위한 보속으로 봉헌하시며, 하느님 구원을 미리 맛보는 증인이 되십니다. 봉헌 생활의 날인 오늘, 수도자들의 봉헌된 삶은 바로 종말론적 희망, 곧 ‘지금-여기서’ 미리 맛보는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수도자들이 그런 봉헌의 삶을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2,34~35) (윤경재 요셉)
“예수께서는 벌거숭이 어린아이로 오셨지만,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분이 되셨던 것은 아버지와 이 세상 모든 것에서 배움을 청하셨기 때문이지요. 말구유에서 가장 연약하게 태어나셨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 되신 것은 자신을 이기시고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이지요. 가장 가난하게 태어나셨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부유하셨던 것은 당신의 길을 완벽하게 긍정하시고 자유 자재하셨기 때문이랍니다.”(성 프란치스코의 고백 중-윤경재 요셉)
2.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영어로는 ‘Presentation of the Lord’인데 우리의 ‘봉헌’이란 말마디의 느낌을 맛볼 수 없습니다.
봉헌의 사랑, 봉헌의 기쁨, 봉헌의 축복, 봉헌의 아름다움, 봉헌의 거룩함입니다.
봉헌은 믿는 이들의 삶의 의미입니다.
봉헌은 우리 삶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에 봉헌보다 아름다운 말마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가 봉헌생활의 모범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더 멀고 힘든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봉헌 축일입니다. 많은 본당에서 오늘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성합니다. 봉헌 축일에 초를 축성하는 것은 초가 가지고 있는 3가지 특성 때문입니다. 초의 3가지 특성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삶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첫째, 초는 밝은 빛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둘째, 초는 따뜻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셋째, 초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슴에서 발까지의 긴 여행을 기쁜 마음으로 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4. 하느님에게 봉헌하라는 말은 사물을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보고 처리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봉헌하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선한 실천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맏아들을 봉헌하는 것은 이제부터 태어나는 모든 자녀를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보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실천을 바꾸기 위한 봉헌의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 마음을 움직여서 혜택을 받아낼 대상이 아닙니다. 신앙은 인간이 하느님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변하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에게 봉헌하는 것은 하느님의 시선이 그 봉헌된 것 위에 내려오게 해서, 그 시선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보고 처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자기와 자기 주변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세상의 한 생명체로서 누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과 주변을 보면서 그분의 숨결이 이 세상에 살아있게 노력합니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를 비우고 베풀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세례로써 봉헌된 사람이면, 우리도 그 하느님의 일을 실천합니다. 우리 자신만 보는 시선과 우리 자신만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 하느님의 시선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 그분과 같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높이기보다는 비우고, 많은 것을 가지기보다는 베풀고, 이웃을 미워하고 무관심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새로운 마음을 찾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서공석 요한 세레자 신부)
5. 예수님의 부모는 정결례를 치르기 위해 당시의 율법에 따라 태어난 지 40일 만에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봉헌되신 이 날 다 함께 봉헌의 의미를 되새기고 살아냄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의 집으로 들어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런데 봉헌할 것은 세상의 좋은 것, 나의 장점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시며 목숨을 내어주실 만큼 끔찍이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나의 아픔과 고통, 기쁨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 절망과 뉘우침, 인간적 나약함과 모순 등 내 삶의 모든 것을 봉헌해드려야 합니다.
나아가 참 봉헌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해야 하고,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임을 깨달을 때,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2월2일 목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
오늘의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2,34~35)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신 예수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하실 분!
주님처럼 봉헌하게 하소서!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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