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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2월6일 월요일 [(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매일미사 묵상/계요등 4장


[매묵]2017년 2월6일 월요일 [(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인근의 도쿠시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대단한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1597년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본기도
모든 성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도 죽기까지 신앙을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빛과 어둠, 하늘과 땅과 바다, 풀과 나무,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땅에 이르시자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간청하는데,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는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창세기의 시작입니다. 1,1-19
복음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3-56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순교자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들을 기리는 저희에게, 천상 선물을 베풀어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선물을 온전히 간직하게 하시고, 구원과 평화를 내려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말’이 많은 세상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정반대로 말 한마디가 사람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일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이토록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독재자의 한마디가 수많은 민중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고,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과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이 실직하고, 노동 인권이 무시되기도 하며, 개발 욕망에 물든 재력가들의 말 한마디에 아름다운 산야가 훼손되고, 부당하게 땅을 잃는 이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절대 악’이 판을 치는 세상일수록 약자들의 목소리는 공허해지고, 그들의 말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기도 합니다.
유스티노 성인(+165년)은 그리스어의 ‘로고스(logos)’가 인간과 신을 매개해 주는 신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하여, 그리스도를 영원한 하느님의 말씀, 곧 로고스의 육화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언어에 담긴 폭력성을 넘어 ‘진리와 생명’을 담은 ‘신의 언어’를 목말라하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창세기의 첫 장에서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는 표현은 하느님 말씀이 지닌 창조의 힘에 대한 고백입니다. 말씀은 행위를 낳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선과 악을 낳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보시니 좋았다.”는 원초적인 생명을 창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생명의 말씀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보고, 치유받으려고 예수님께 달려간 이들은, 그분의 말씀 속에서 하느님의 치유와 생명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병든 자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치유를 청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하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분열시키며, 혼란을 가져온다면, 나는 치유를 청할 줄도 모르는 영혼이 병든 사람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주님!
 당신은
 옷자락뿐만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십니다.
 
 손을 내미는 이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십니다.
 손을 대기만 하면
 어루만지시는 분은
 이미 와 계시는 당신이십니다.
 
 붙드신 분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십니다.
 찾기만 하면
 먼저 찾아오시어
 무릎마저 꿇고 제 발을 씻으십니다.
 
제 마음이
 항상 당신께 있게 하소서.
 당신 사랑 앞에
 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2. 네 번째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부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만 하며 나으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옷을 만졌을 때 피가 멈추고 깨끗이 나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머리로만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만져야 한다.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옷에 손을 대고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기까지 에 이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도 평생 동안 우리가 노력해도 잘 안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해 주셨고 그 방법을 통해서 한 단계씩 성숙되어 가는 것이 곧 우리의 신앙성숙이요 영성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왜 어려운가? 이미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이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끼어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복음에서 계시해주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기가 힘든 것이다.(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3.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예전의 강론 주제가 생각납니다. 
창조전의 혼돈스러운 모습이 바로 그러합니다. 
창조과정을 통해 분명한 한계가 설정되고 하느님 중심의 균형과 조화, 질서가 잡혀가니 
“천국에는 한계가 있다.”라는 말이 그대로 통합니다. 
 창조과정 중에 후렴처럼 되풀이 되는 말마디가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입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그대로 창세기의 창조과정을 보는 듯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말이 딱 드러맞는 광경입니다. 
이들 삶의 중심에 자리잡으신 예수님을 텃치하여 연결, 소통하는 순간 
병고의 혼돈스런 모습들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치유, 회복되는 모습들 모두가 예수님 가정의 한 식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남에게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실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둘을 식별하는 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열심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전문가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식견을 받아들이고, 그분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는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그분들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이 더 소중합니다. 사실 그분들 대 부분은 저 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사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사람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더 자주 찾아뵙고 만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도와 사랑입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5. 내맡긴 후에는,
나의 모든 상황을, 모든 조건을, 모든 꼬라지를 그대로 기꺼이 인정하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하느님께 돌려드림에,
그것이 내가 이 세상을 사는 유일한 이유와 목적이 되었음에,
엄청 기뻐하고 참행복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들이 뭐 저래? 아직도 그 꼬라지야!"라고
비웃을 지라도, 때로는 마음으로 답답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내맡김의 길"로 이미 접어들었고,
이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셨고,
점차로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 주실 것임을 굳게 믿는 믿음에
'교만 없는 겸손한 자신감' 속에 늘 기쁨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해욱 신부)


6. 유다인은 사람이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그것입니다. 신약성경도 이 세 분류에 충실히 따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세 부류 즉 사도들과 제자들은 영을 대표하고, 사람들은 육체를, 고집쟁이들은 정신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영과 육체와 정신이 모두 한 결 같이 회개하고 바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하늘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영과 육체와 정신이 모두 바뀌어야 전인적 변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영만 바뀌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몸과 정신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그 변화의 힘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몸까지 바뀌는 걸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산위에서 예수님 모습이 바뀌는 장면을 설명하며 변모(metamorphethe)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글자 그대로 형태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윤경재 요셉)

7.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너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
 
 손을 댄 것은 우리지만, 사실 만진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를 매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더듬은 것입니다. 당신 손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쪼물딱거리시고,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낫게 하십니다. 우리는 손을 댔을 뿐, 사실 우리를 붙잡으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려오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무릎마저 꿇고 우리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구원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옷자락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표현처럼, 우리는 전선줄이고 하느님께서는 전류이십니다. 전선줄에 전류가 통해야만 전등을 밝힐 수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접속되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접속되지 않으면 한갓 끄나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옷자락뿐만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 앞에 있습니다. 사랑의 접속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해야 할 때입니다.(이영근 신부)


2017년 2월6일 월요일 [(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의 복음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너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
 
 손을 댄 것은 우리지만, 사실 만진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를 매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더듬은 것입니다.
당신 손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낫게 하십니다.

우리는 손을 댔을 뿐, 사실 우리를 붙잡으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려오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무릎마저 꿇고 우리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말씀이 구원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옷자락입니다.
전선줄에 전류가 통해야만 전등을 밝힐 수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접속되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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