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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2월10일 금요일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매일미사 묵상 / 청가시덩굴 4장


[매묵]2017년 2월10일 금요일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매일미사 묵상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480년 무렵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성 베네딕토 아빠스의 누이동생인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성인이 세워 그녀에게 맡긴 여자 수도원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성녀는 베네딕토 성인과의 영적 담화를 통하여 수도 생활에 대한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았다.      

본기도
주님, 복된 동정녀 스콜라스티카를 기억하며 비오니, 그를 본받아 저희가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주님 사랑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뱀의 유혹을 받은 여자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자, 그들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손을 대시며 “에파타!” 곧 “열려라!”고 하시어 고쳐 주시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1-8
복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천상 선물을 나누어 받고 비오니, 저희가 복된 스콜라스티카를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새기며,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시는 장면은, 에덴 동산에서 인류의 첫 조상들이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짓는 상황과 대비됩니다. 듣지 못한다는 신체적 장애로 겪는 고통이 크겠지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듣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와 편견, 그리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올바른 정보 없이 자기 해석을 덧붙여서 진실을 왜곡하여 ‘말더듬이’처럼 남에게 말을 전해 벌어지는 갈등과 분열의 상처를 더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간교한 뱀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라고 말을 바꾼 뱀의 간교함에 넘어간 것입니다. 왜곡된 정보로 인해 생긴 첫 번째 유혹입니다.
곧이어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뜻이 ‘하느님처럼’ 될 것을 두려워한 하느님의 숨은 뜻이라고 왜곡합니다. 결국 간교한 뱀의 언어 농단에 말려든 하와는 눈까지 멀어 진실을 잊고,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우며, 슬기롭게 해 줄 것” 같은 열매에 손을 댑니다. 그리고 들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 하와의 말에 동조한 아담의 마음에서조차 하느님의 명령은 잊힙니다.
예수님의 치유 장면은 죄의 근원을 치유하는 상징적 행위들입니다. 진실을 듣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공동체로부터 병자를 따로 데리고 나오시고, 당신 손가락과 침을 귀먹은 이의 귀와 혀에 닿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의 손길과 치유의 힘을 전달하십니다. 그리고 “에파타”, 곧 막힌 귀를 열어 주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어” 태초에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신 하느님의 숨결을 되돌려주십니다.
치유 기적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우리 안에 닫힌 모든 귀와 입,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며, 교회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자리가 되어야 함을 되새길 때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에파타!(열려라)”(마르 7,34)
 
 주님!
 저는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감사드리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듣기 싫은 말은 들으려 하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당신 손가락을 제 귀에 넣으시고
 당신 말씀을 담으소서.
 당신 침을 발라 제 혀를 도유하시고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2. 제가 알고 있는 엘리사벳 자매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분의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놀라시겠지만 ‘음악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육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지금도 서예를 가르치고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시며 말씀도 얼마나 예쁘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는 영적인 귀와 입이 열려 있어 해맑은 웃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환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서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듯이 주님과 한적한 곳에서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말씀으로 끝날 수 있음에도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가두어 놓은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발라 혀에 대는 행동으로 당신의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 하셨듯이 우리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이웃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꼭 안아주는 포옹으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그의 손길에 담았습니다. 눈먼 이에게 눈이 되어주고, 듣지 못하는 이에게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침을 발라 혀에 대는 것은 비위생적이고 단정치 못한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늘 혼자 외롭게 지냈던 그들에게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먹을 것을 꼭꼭 씹어서 주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셨다고 하였는데 하늘을 우러러 본다는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하였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 2마리와 빵 5개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루카9,16)을 베풀 때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처지나 환경 안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3. ‘존재에 대한 큰 가치 부여!’  이것처럼 중요한 일,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존재에 대한 큰 의미 부여는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취하신 노선과 정확하게 일치됩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치유를 청하며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건강한 남자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는 당연히 주류 사회에서 동떨어져 외톨이처럼 살았습니다. 인간 취급도 못 받고 그저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거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는 생명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했습니다. 건강한 이들, 병든 이든,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어른이든 어린이든, 일단 살아있는 한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 전반, 학교나 가정, 교회 모두를 휩쓸고 있는 한 가지 아주 위험한 사고방식이랄까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경제지상주의입니다. 거기에서 또 파생되어 나온 것이 성적지상주의, 학벌지상주의, 외모지상주의, 건강지상주의...등등입니다.
 한 인간 존재는 그가 드러내고 있는 오늘의 모습이 어떠하든 존재 자체로 소중한 하느님의  모상이며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한 인간 존재가 경제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면 더 이상 인간대접을 못 받습니다. 한 인간 존재가 성적에서 한계를 보이면 더 이상 인간 취급도 못 받습니다. 한 인간 존재가  퇴직하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벌써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집니다. 한 인간 존재가 외모가 보편적이지 않거나 학벌이 딸린다면 주류사회에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슬픈 우리의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 한 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 앞에 용기 있게 외쳐야겠습니다. “돈이 다가 아니랍니다. 외모가 다가 아니랍니다. 학벌이나 가문이 다가 아니랍니다. 사실 그런 것들을 다 유한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랍니다. 그런 것들은 손에 쥔 물이나 모래알 같습니다. 움켜쥐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우리 손에서 빠져나가버리고 맙니다.” “사라지는 그런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대상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 인간 존재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소중합니다. 여러분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이마에 하느님의 인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모든 만물 위해 존재하는 하느님의 걸작품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4.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 그분만이 여러분의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의 증인이 되시는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십시오.,그리고 여러분의 건강에 대해,  특히 그 우울함에 대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우울함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음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묵묵히 고통을 참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없음에 대해 기뻐 하십시오.
 우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 하느님께 신뢰 중에서 -

5. 뱀은 첫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도록 하였습니다. 사탄은 새로운 방법으로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재물, 권력, 명예를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 앞에 넘어지고,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고, 욕망의 불꽃으로 타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지금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악의 세력은 새로운 것들로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다음에 하지, 남들도 그러는데 머, 나는 안 돼라는 생각이 들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선행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나의 잘못과 허물을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열등감과 절망으로 하느님께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나에게 벌어진 일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벌어진 일을 해석하면서 성장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이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해석하는 마음에 따라서 내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다가 넘어질 수 있고,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런 것을 달아 놓아서 부상을 당하게 했느냐고 생각한다면 큰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씩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부정의 문을 열고 긍정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문을 열고 희망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분노의 문을 열고 용서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미움의 문을 열고 사랑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탐욕과 욕망의 문을 활짝 열고 나눔과 봉사의 문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병자들, 굶주린 이들에게 그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권한과 능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조재형 신부)


6.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였습니다.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더듬는 사람 하나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두 귀에 당신 손가락을 넣었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대 청각 장애인을 치유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던 동작(動作)입니다. 기름, 술 혹은 침과 같은 액체는 치유의 효력을 지녔다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손가락을 환부에 대는 것은 기()를 넣는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는 것은 하늘에서 기의 힘이 내려오도록 하는 동작입니다.

오늘 복음이 그 시대 치유하는 사람들과 같은 동작을 예수님이 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 장애인을 치유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사야 예언서(35,5)를 인용하여 사람들이 한 말이라고 전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예수님은 예언서가 예고한 구원적인 일을 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초기 신앙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해 믿던 바를 예언서의 언어를 빌려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 안에는 우리의 장애도 고치는 예수님에 대한 초기 신앙인들의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 한 사람을 치유한 이야기였지만,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체험한 바를 그 이야기 안에 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듣고 말하는 데에 장애를 지닐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過大評價)하면 이웃의 말을 그대로 알아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이 많아서, 혹은 자기의 신분(身分)서열(序列)이 높아서,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기도취는 이웃의 말이 들리지 않는 장애 현상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과시하는 말만 즐겨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하지 못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한()이나 미움을 배설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도 이웃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에게 해방과 기쁨이 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장애들을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운동을 일으킨 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라고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배워 실천하자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면, 우리는 이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웃의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말을 하지도 못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배려를 실천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은 그 실천으로 인류역사 안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합니다.(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7. 하느님의 뜻은 모든 것을 사람들이 사랑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고 서로 나누면서 자유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제 뜻대로 삶으로써 물질과 탐욕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실낙원(失樂園)으로 들어가 숨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막혀버리니 귀먹고 눈멀며 혀가 굳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귀가 먹어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혀가 굳어 아무것도 전하고 나누지도 못하는 어리석고 비참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귀를 열고 내 밖의 소리와 뜻과 마음을 잘 받아들이고, 내 마음에 있는 성령의 선물들과 선의와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을 더듬는 이의 귀를 열어주시고, 혀를 풀어 말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마르 7,32-35). 귀먹고 말을 더듬는 이처럼 우리 안에도 막히고 맺히고, 얽힌 부분이 있지요. 이런 상태를 풀어내고 뚫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분과의 깊은 인격적 친교가 있어야 참 자유와 해방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참된 평화와 사랑의 소통을 막는 굳은 부분이 무엇인지 성찰해보았으면 합니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교만과 무관심의 뿌리를 알아내야겠지요. 내가 무엇을 한다는 내 중심의 사고나 내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적 불구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는 오늘이었으면 합니다.

주님, 저를 만져주시어 당신 신성을 깨닫게 해주시고, 저의 절망과 황폐함과 어둠을 가져가소서! 저의 굳은 마음과 생각을 도려내시고, 온유한 마음과 열린 귀, 사랑과 선을 실어나르는 부드러운 혀를 허락하시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2월10일 금요일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오늘의 복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치유 장면은 죄의 근원을 치유하는 상징적 행위들입니다.
진실을 듣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공동체로부터 병자를 따로 데리고 나오시고,
당신 손가락과 침을 귀먹은 이의 귀와 혀에 닿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의 손길과 치유의 힘을 전달하십니다.

그리고 “에파타”, 곧 막힌 귀를 열어 주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어”
태초에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신 하느님의 숨결을 되돌려주십니다.

치유 기적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우리 안에 닫힌 모든 귀와 입,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며,
교회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자리가 되어야 함을 되새길 때입니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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