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14년 2월14일 화요일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매일미사 묵상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간으로,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터키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형제는 전례서들을 자신들이 창안한 알파벳의 슬라브 말로 번역하였다. 둘은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 족에게 파견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로마로 돌아간 두 형제 중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가 885년 무렵 선종하였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를 통하여, 슬라브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니, 저희 마음을 비추시어,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깨닫고 참되고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제1독서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6,5-8; 7,1-5.10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21
영성체 후 기도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기리는 저희가,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한 빵을 나누는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한 믿음을 굳게 지켜, 한마음으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처음부터 악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깨고, 혼란을 부추기는 일들을 만나면 나쁜 마음이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허영, 가식, 탐욕, 권력, 교만 등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으로 내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빵을 부풀리는 데 필요한 중요한 생활필수품이었던 누룩이지만, 이 누룩이 인간을 죄로 이끄는 탐욕의 씨앗이 될 때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누룩이 가진 두 가지 의미가 노아 이야기에서도 재현됩니다.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이 죄와 악으로 물들었을 때 얼마나 큰 하느님의 진노를 겪게 되는지를 말해 주는 동시에, 아주 작은 누룩과도 같았던 노아의 의로운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을 다시 구원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분부하신 것은, 빵의 기적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기적보다는, 빵 자체를 탐닉하는 탐욕을 경계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진리는 거짓과 기만으로 생겨 버린 편견과 선입견의 누룩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깨달음은 결코 바리사이식의 지적 충만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누룩을 심어 가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는 인생에서 꾸준히 심어야 할 성령의 누룩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는 어떤 누룩을 심어 가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오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과학의 눈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설명하기가 쉽습니다. 연과 연줄을 생각합니다. 연은 연줄이 없으면 더 높이 자유롭게 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연줄이 끊어진 연은 곧 땅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노아의 홍수는 그 구체적인 과학적인 사실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신학적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산다면 우리는 또 다른 방주를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방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곳은 그곳이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곳일지라도 이미 방주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같은 분이 되셨습니다. 놀라운 표징과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면 지금 이 순간순간들이 모두 놀라운 표징이고, 기적입니다.(조재형 신부)
2. 사람이 하느님을 향할 때는 성선설이지만 하느님을 떠날 때는 성악설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떠날 때 얼마나 변절, 변질, 부패,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을 일깨우는 주님의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깨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음으로 주님의 선물을 깨닫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부단히 깨어있지 않아, 부단한 깨달음이 없어, 하느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 보면
부패와 타락의 누룩에 서서히 몸도 마음도 망가져 가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하느님을 떠난 외로움에 파고드는 유혹의 누룩들에서 기인합니다.
묵상중 우리 말이 얼마나 기막힌지 감사했습니다.
‘외롭다.’와 ‘의롭다’의 차이입니다.
‘맛있다.’와 ‘멋있다.’의 차이와도 흡사합니다.
외로운 삶에서 ‘의로운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세상 맛을 추구하는 삶에서 하느님 맛을 추구하는 ‘멋있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바로 회개의 삶입니다.
바로 오늘 창세기의 타락한 세상에서 하느님께 크나 큰 위안이 된 혜성같은 존재 노아가 우리의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리는 노아의 존재입니다.
주님의 기대와 희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주님의 눈에 든 노아와 같은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사실 노아는 누구보다 세상에서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의롭게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외로웠기에 하느님만을 찾는 의로운 사람이 된 노아임을 깨닫습니다.
어찌보면 삶의 외로움은 의로운 삶으로의 자연스런 하느님의 초대일 수 있습니다.
노아처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때 외로움은 저절로 의로운 삶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유혹과 부패와 타락의 누룩도 깨끗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바오로 수사님의 외로움에 대한 답은 나왔습니다.
노아처럼 하느님과 함께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어떻게 분별합니까?
주님과 함께 살면 살아있는 것이고 주님을 떠나 살면 죽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외로움을 의로움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외로움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의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며 주님과 함께 의로운 삶, 멋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 밖에 없었다.”(마르 8,14)
주님!
실상 필요한 빵은
한 개면 충분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당신이 아니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일 뿐,
당신만이 제게는 전부입니다.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는
당신만이
오직 필요한
한 개의 빵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당신만이 진정한 빵입니다.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지 않게 하소서.
진정 당신이 제게는 있습니다.
당신이 저의 주님이십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2014년 2월14일 화요일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오늘의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분부하신 것은,
빵의 기적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기적보다는,
빵 자체를 탐닉하는 탐욕을 경계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진리는 거짓과 기만으로 생겨 버린 편견과 선입견의 누룩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깨달음은 결코 바리사이식의 지적 충만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누룩을 심어 가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는 인생에서 꾸준히 심어야 할
성령의 누룩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는 어떤 누룩을 심어 가고 있습니까?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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