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17년 2월16일 [(녹) 연중 제6주간 목요일]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아들들에게 번성하라고 복을 내리시며,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한 계약의 표징으로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두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시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하시자 베드로가 그리스도이시라고 대답한다(복음).
제1독서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9,1-13
복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7-33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께서 으뜸 제자라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그것은 홍수 이후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계약에 잘 나옵니다.
사람은 비록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지만,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에, 남의 피를 흘리게 하면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운명을 갖습니다. 사람의 일은 인과응보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을 땅에서 다시 쓸어 없애 버리시지 않으시겠다는 계약을 맺으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한 번 계약을 맺으면 끝까지 신의와 정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옳게 고백한 베드로를 칭찬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이신 당신이 어떻게 하느님의 일을 완성하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의 일이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날 힘의 군주로서, 다윗의 영예를 되찾을 세상의 권력을 기다리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이 갖는 힘의 논리에 희생되지 않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약의 표징을 부활로 드러낼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이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계약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세속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을 지닌 나를 먼저 알아야 답할 수 있는 물음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노아와 맺은 하느님의 자비의 계약이 예수님 안에서 현실이 되어 내 안에서 희망으로 자라나며, 하느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나의 운명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죄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나의 잣대로 폄하하지 않고, 늘 회심의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맺으신 계약의 표징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마르 8,31)
주님!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을 갑니다.
당신께서
반드시 걸어야 했던 길이기에
당신을 따르는 이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한두 번 겪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고난을
죽을 때까지 겪는 일입니다.
어쩔 수없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흔연히 끌어안고 겪는 일입니다.
배척받으면서도
배척하지 않는 일입니다.
죽어 사라지기까지
사랑하는 일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2.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상호계약의 관계입니다.
문제는 하느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변덕스러운 우리한테 있습니다.
상호간 계약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서로간의 신뢰와 사랑의 일치도 깊어질 것입니다.
계약의 표징의 변천사가 흥미롭습니다.
노아에게는 무지개였고, 아브라함에겐 할례였고, 모세에겐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약의 완성은 예수님의 빠스카의 십자가에서 절정과 완성에 도달합니다.
구약의 무지개와 신약의 십자가가 참 아름다운 한쌍의 계약의 표징을 이룹니다.
빠스카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실현된 계약의 표징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사제는 권위를 내세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제는 독선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제는 대접을 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제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사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처럼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새 사제의 눈빛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오직 주님만을 보고 달려갈 것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눈빛이었습니다. 세상의 일은, 사람의 일은 뒤로 하고, 오직 하느님의 일에 최선을 다할 것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부디 앞으로 걸어가는 사제의 길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4.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그분의 죽음을 중심으로 발생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여는 존재입니다. 예수가 메시아인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이 끝에 말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질서의 세계, 곧 예수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소모하는 세계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세계입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가 발견하는 하느님은 강자도 아니고, 높은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가 보는 하느님의 일은 자기 스스로를 내어주고 베푸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자비롭고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스스로를 내어주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하느님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심판하고, 벌주는 분이 아닙니다. 지켜보고 심판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닌 사람들, 곧 높고 강하다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5. 제자들은 역설과 신비로 가득한 주님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분과 함께 지내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현실을 뿌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의 인간됨, 곧 인성(人性)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분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광에 이르실 하느님이심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제자라면 겪어내야 할 수난과 죽음을 빼놓아버린 고백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제자들은 참된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체험하고 난 뒤였지 않습니까? 제자들의 신앙은 그렇게 서서히 성숙되어가는 역사적 여정이요, 하느님 안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성장해가는 순례라 할 것입니다.
나의 내면과 살아가는 처지가 바로, 이교 신을 모신 동굴이 있는 또다른 카이사리아의 필립비로 둔갑해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내가 원하는 인간적인 면모에만 사로잡힐 때는 없습니까? 목숨을 내놓은 희생을 외면한 채 내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거짓으로 고백하지 말아야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책과 엄한 경고를 듣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나와 무관한 괴물이 아니지요. 내가 제자다움을 망각해버릴 때, 말과 생각으로는 능숙하고 화려하게 주님에 대해 말하면서 십자가를 거부할 때, 그 순간 사탄이 되어버림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험한 세상을 사는 것 이상으로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유혹도 만만치 않지요. 그럼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목숨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어놓음으로써, 그리고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집중하는 길임을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사람의 일에 한눈을 파는 사탄이 되지 않도록 저를 사로잡아주시어, 당신의 일에 몰두하는 행복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2월16일 [(녹)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주님!
오늘도 사람의 일에 한눈을 파는 사탄이 되지 않도록 저를 사로잡아주시어,
당신의 일에 몰두하는 행복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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