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17년 4월4일 [(자) 사순 제5주간 화요일]매일미사 묵상
입당송
시편 27(26),14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본기도
주님, 저희가 한결같이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시며, 이 시대에 주님을 섬기는 백성이 많아지고, 그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을 하다가 주님께서 보내신 불 뱀들에게 물려 죽자, 모세가 간청하여 구리 뱀을 기둥에 달아 놓았고 이를 쳐다보는 이들을 살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닫고, 내가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물린 자는 누구든지 구리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천상 선물을 갈망하며, 끊임없이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시며 당신의 신원을 밝히십니다. 신자라면, 이 말씀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의 수난을 뜻한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며 신비롭게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데,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하고 알려 주십니다. 이로 보아 ‘내가 나’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신성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서 그분의 신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불신하여 벌을 받아 불 뱀에 물려 죽게 되었는데, 기둥 위에 달아 놓은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민수 21,9).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의 구리 뱀이 생명의 표징이었듯이, 새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자가는 구원의 징표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은 영원한 생명입니다(요한 3,14-15).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고 사람들이 물을 때가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율법 안에 갇힌 구세주’, ‘이 세상의 메시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을 이 세상을 구원하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인의 실존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입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게시판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8,23)
주님!
제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게 하소서
제 머리 위에
항상 당신을 모시고
당신께 속하게 하소서.
당신 품이
제가 살아가야하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전부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2. 기왕이면 복을 만들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과를 보내되 사람에게 기대지 말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 마음에 드는 삶을 엮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8,2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8,29). 하심으로써 아버지와 하나 되는 방법을 제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이 원하는 일을 함으로써 마침내 그분과 하나 된 바오로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언제나 나를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이사41,10).(반영억 라파엘 신부)
3.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뜻을, 삶의 참된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바라고 계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들이 바로 신앙인들의 그런 면들을 악용하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말이 전도된,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릇된 신앙의 태도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바치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나의 부모님께서 흐뭇해 하실 일, 나의 이웃, 나의 자녀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일을 합시다.(이경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4.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8,21~29)
탈출기 3장14절에서 모세가 하느님께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하고 아뢰니 그 대답으로 나온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탈출3,14)
이는 大계시로서 ‘하느님의 자기소개’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모든 존재가 비롯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직접 이런 형식을 사용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성부와 같은 차원의 신적인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성실하시고 또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나는 나다.’라는 형식의 문장이 요한복음서 전체에 28회나 나옵니다. 8장에서도 5회나 나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존재 안에 감추어 계셨지만, 외아드님을 통해 새로운 계시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계시는 새로운 창조 질서를 보여줍니다. 새로운 창조는 첫 창조처럼 일방적인 혜택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로이 선택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사랑으로 하나 되시고, 그 힘으로 사랑이 넘쳐 온 세상에 퍼져 나온 사랑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특별히 파라크레토스 성령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진리의 영이시며 보호자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를 믿는 사람은 이제 자신도 하나 되어 영원히 사는 삶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윤경재 요셉)
5.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정화의 시간, 시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광야입니다. 그곳에서 잘못된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향한 순수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시간들이 힘들었고, 오늘 모세와 하느님께 불평을 합니다. 다시 예전의 노예생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현실의 삶에서 우리들도 너무나 자주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이번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많은 분들이 새로운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은 조금씩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흔들리곤 합니다. 우리들도 삶의 광야에서 많은 어려움과 유혹을 만날 것입니다. 깨지고, 넘어지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주님과 함께 간다면 우리들 또한 세상이라는 광야를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관광’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희생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였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보았습니다.
가야할 길을 알고, 충실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조재형 신부)
6. 모든 사람을 다 아시는 예수님, (요한 2,24 참조)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도드리오니
제(저희)가 주님께서 다 해 주신다는 것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살아가며,
아무 걱정 없이 청하기만 하게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7. 오늘 제1독서 민수기의 주제는 ‘구리뱀’이고, 요한복음의 주제는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두 주제가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둥위에 높이 달린 구리뱀’은 그대로 ‘십자가의 예수님’의 예표가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민수기에서 광야여정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대로 우리 삶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동안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하여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립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민수21,5ㄴㄷ).
완전히 감사가 사라진 불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실감나는 묘사입니다.
우리 역시 인생광야여정 살아오면서 때때로 불평과 불만의 분위기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잃고
불신의 분위기에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광야여정중의 민수기 백성들에게는 회개와 구원의 표지로 구리뱀을 주셨고
오늘의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늘 우러러 바라보라있는 우리 삶의 중심,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자신의 신원을 직설적으로 밝히십니다. 먼저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8,23) 하십니다.
바리사리들은 자신만이 의롭다는 생각, 자신들의 종교지도자 지위, 인간의 틀 안에서만 바라보는 세속적인 시각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면서도 천상의 것을 그리워하고, 예수님처럼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가 없다면, 우리 또한 바리사이와 같은 소경이 되겠지요.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에게서 들은 것을 말하고, 가르쳐주신 대로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8,26.28).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걸려넘어집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요?”(8,25) 하고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8,29)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시기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원을 극명하게 밝히신 것은, 유다인들이 자신을 믿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온전히 예수님을 믿는 데 달려 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호소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적대자들은 예수님께서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다음에야 그분을 알게 될 것입니다(8,28).
예수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십자가 희생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아버지 하느님께 자발적이며 완전하고 지속적인 순종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바로 철저한 자기희생이요 죽음에까지 이른 사랑의 몸짓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것은 사랑으로 내려오시어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모두 인류 구원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시어(8,22),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심으로써(8,29) 늘 하느님과 함께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 일상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행복한 우리였으면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안에서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행함으로써,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지식으로 결코 얻어질 하느님이 아닙니다.
느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느낌"을 느끼며 무엇이든 느껴야 합니다.
느낌을 느낄 수 없으면 "죽음"일 뿐입니다.
몸도 늙어가면 갈수록 느낌을 잃어갑니다.
죽은 몸, 주검은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갓난아이일수록 잘 느낍니다.
어린이도 잘 느낍니다.
"철부지"도 잘 느낍니다.
머리에 인간의 알량한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느낌을 잃어갑니다.
느낌이 지식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느낌을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잡혀 먹은 느낌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껴안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느낌을 느끼지 못하면 하느님을 껴안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산송장"입니다.
산송장이 아무리 껴안아도 하느님은 외롭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처음 받은 느낌, "원초적 느낌"을 되찾아야 합니다.
원초적 느낌은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 즉 "거룩한 느낌"입니다.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 그리고 때로는 왕창
정화시켜 주시고 당신 가까이로 더 힘 있게 꼬옥 껴안아 주십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에 더욱 일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에
내 영혼은 한없는 "감사"와 "찬미"를 올려 드리게 되며,
그럼으로 영혼이 받게 된 모든 "영광"을 다시 남김없이 그분께
되돌려 드리게 됩니다.
이에 하느님은 더욱 기뻐하시고
내 영혼에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열어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요, "섭리"요,
거룩하신 당신의 "계획"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때 새 하늘 새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먼저 이 땅 즉, 내 안에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하느님을 그만 바라봅시다.
관상가가 되지 맙시다.
관상을 끝냅시다!
원초적 느낌을 되찾으려면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롭다는 어른이, 슬기롭다는 어른이,
느낌의 킬러(killer)인 지식인이 어린이가 되는 방법은
"철부지"가 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철부지가 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입니다.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은 당신이시라고 "인정"하고,
그 다음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겨 드리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당신이 나의 주인이시라고 인정하는 것이 "굳은 결심"이며,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봉헌미사"입니다.
모든 중요한 일은 크게 드러내고 공적으로 알려야 하듯이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드러내고 알리는 예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굳은 결심을 봉헌하는 미사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철부지가 되어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깁시다.
그리하여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정말로 행복하게 살아갑시다.(이해욱 신부)
2017년 4월4일 [(자)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나는 있는 나다.” 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느님!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말씀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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