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선교사 샤를르 드 푸코의 詩 ‘나는 배웠다’를 통해 평생 학습인(學習人)으로서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배우고 또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를 누려보도록 하자.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억지로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임을 /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론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 나는 배웠다.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임을 /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놓아야 함을 /
나는 배웠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 나는 배웠다. 나에게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해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나는 배웠다 - 샤를르 드 푸코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임을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나의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가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을.
출처: http://mariolee.tistory.com/160 [DOCUMENT LEE]
나는 배웠다
- 샤를르 드 푸코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기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한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을.
수도회 창설자편(10) : 샤를르 드 푸코(복자)
20세기 초반에 이슬람 종교권인 중동지역, 그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기후조건을 가진 사하라 사막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피살돼 「사막의 성자」로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샤를르 드 푸코 (1858~1916) 신부. 엘 골레아(El Golea)에 있는 그의 무덤 묘비에 적혀있는 구절은 그의 삶을 한마디로 대변해 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일생동안 복음을 외쳐댔다」 칼(Karl) 형제로 불리기 좋아했다는 그는 무신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다 깊이 그리스도교적 믿음과 삶의 원천에 접근하면서 실현하려고 애썼던, 예수께서 나자렛에서 살으셨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글자 그대로 살아가려 노력했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적대감이 팽배해 가던 시대 상황안에서 자신의 삶과 영성으로 새로운 통찰들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교회가 산업화로 부상한 노동자 계층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또 가난한 농민들에 대해 적절한 종교 교육을 실천하지 못해 이들이 점차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는 환경에서 『복음서의 가난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가난한 교회가 되어 가난한 도구들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새로운 힘을 낼 수 있고 그들이 납득하게 지당하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주장했고,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선교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해 냈다. 또 말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 보다는 생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책이나 말을 통하지 않고도 믿는 이들의 삶을 바라보기만 해도 복음을 알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샤를르 드 푸코가 나자렛 예수의 삶을 살고자 회심하게 된 데는 한편 여러 과정이 필요했다. 1858년 9월 1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태어난 샤를르 드 푸코는 5세때 부모를 잃고 외조부모 댁에서 자랐는데 독실한 신앙을 지녔던 외조부모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종교생활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니던 학교 및 주변 여건의 영향으로 첫 영성체 후 종교적 무관심주의와 불가지론에 빠져들었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쌩 시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다녔는데 졸업시험에서 동기생 중 최하위 성적을 기록할 만큼 공부도 잘 해내지 못했다. 사관생도 장교로 살때는 그에 걸맞는 품위를 지키지 못해 가족들에게도 외면을 당했고 친구들에게는 「플레이 보이」라는 의미의 「돼지같은 녀석」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려받은 재산을 쾌락을 누리는 데 탕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가운데 푸코는 알제리로 파견을 받았고 이때 매춘부 미미를 자신의 아내라 속이고 함께 데려가는 무모함을 저질렀다. 그러한 나태함과 무질서한 생활, 또 무능한 지휘 능력은 그를 결국 파면의 길로 몰고 갔다. 군대를 떠난 후 푸코는 이전과는 다른,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추스르는 계기를 맞게 된다. 자신의 옛 부대가 알제리에서 전투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들은 푸코는 다시 군에 입대, 반란을 제압하게 되는데 이것은 느슨했던 삶을 새롭게 일으키는 기회가 됐고 군대와 가족으로부터 새롭게 인정을 받는 결과를 갖게 했다. 1883년부터 1884년까지 푸코는 유럽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로 아르메니아의 유대인 옷을 입은 채 모로코로 탐사 여행을 떠났다. 「모로코 탐험기」는 이때 나온 것이다. 당시 모로코는 유럽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상황이어서 그의 시도는 큰 관심을 모았고 파리의 지리학회는 금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후 이슬람 사람들의 종교적 열성을 경험했던 푸코는 특히 사촌 누이 마리(Marie)의 신앙적 영향으로 회심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후에 마담 드 봉디(Mme de Bondy)가 된 마리는 푸코가 난봉꾼으로 온 가족의 외면을 받던 시절에도 관계를 지속한 인물로서 그의 일생에 어머니와 같은 친구이자 영적 동반자 역할을 했다. 『만약 당신이 계신다면 저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해주십시오』 하느님께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지기 시작한 푸코는 마리의 소개로 당시의 저명한 영적 지도자 위벨렝 아빠스를 만나게 됐고 1886년 10월 어느날 그에게 고해성사를 보게된다. 아빠스는 성사 후 성체를 모시도록 권했고 푸코는 이를 통해 새로운 신앙의 전환점을 찾았다. 『나는 하느님께 대해 믿음을 갖자마자 하느님을 위해서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수도 생활은 나의 믿음을 다시 회복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마침내 푸코는 위벨렝 아빠스의 추천으로 네제(Neiges)에 있는 노틀담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했다. 「단순한 삶과 가난한 삶」에 대한 열망을 지닌 채,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시어 인간이 되었다가 배반당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었다. |
<옮김>
샤를르 드 푸코의 청원 기도
청할 것과 청하지 말아야 할 것
요즘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18년, 20년 동안 친 아들, 친 딸 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애완견들과의 사별이 너무나 슬퍼, 어떤 견주들은 돌아가신 그들을 위해 은근슬쩍 세례명까지 붙여 연미사를 넣는 사람들이 있다는군요^^
그렇게까지 하는 그분들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그 누구도 그 강아지처럼 큰 기쁨을 준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며, 그저 나만 바라봐주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저 하염없이 나만 기다려준 녀석과의 사별은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뜬 강아지들을 위한 연미사는 봉헌하시면 안됩니다. 연미사는 오로지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인간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영혼의 소유자인 우리 인간들만을 위한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제단에 올라오는 다양한 청원들을 바라보며, 청원에 있어서도 세심한 식별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마치 개념없는 일곱 살 아이처럼 무턱대고 이것 저것 하느님께 졸라대기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하느님 눈에 그리 예뻐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막의 성자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의 생애는 참으로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휘황찬란한 도심을 떠나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기도에 전념하던 중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청원 가운데 많은 것들이 그릇된 청원이라는 것, 그분께 청할 것이 있고 청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청할 것은 무엇이고, 청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였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은 더 이상 자신의 건강과 안위, 자신의 성공과 개인적인 청을 드리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신 모든 것을 주님 손에 맡겼습니다. 자신 앞에 펼쳐지는 그 어떤 것이든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다짐했습니다.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간절한 청원 기도 두 가지를 드렸는데, 첫째, 나자렛의 예수님을 따라 철저하게 잊혀지고 숨겨진 삶을 살기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순교의 월계관을 청했습니다.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께서는 얼마나 간절히 두 가지 기도를 바쳤던지, 마침내 사하라 사막의 영웅적인 순교자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 하신 주 예수님, 저는 마음 속으로부터 제 목숨을 당신께 바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매순간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찾습니다. 당신께 제 목숨을 바칩니다. 저를 살리시던지 죽이시던지 당신 좋으실데로 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영예로운 목표, 즉 순교자가 되기를 열렬히 청합니다.”(샤를르 드 푸코 신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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