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추천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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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다는 신앙 교의에 따라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의무 축일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다.
입당송
묵시 12,1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났네.<대영광송>
<또는>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여 축제를 지내며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자. 천사들도 그분의 승천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찬양하네.<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5(44),10.11.12.16(◎ 10ㄷㄹ)
◎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당신 사랑을 받는 여인들 가운데, 제왕의 딸들이 있고,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
○ 임금님이 너의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 ◎
○ 기쁨과 즐거움에 이끌려, 임금님 궁전으로 들어가는구나. ◎
제2독서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7ㄱ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모 마리아 하늘로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 알렐루야.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주님,
정성을 다하여 바치는 저희의 제물을 받으시고
하늘에 오르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올라 언제나 주님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4 : 영광스러운 마리아의 승천>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아드님께서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이 무덤에서 썩지 않도록 섭리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1,49.48 참조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사에 참여하고 비오니
하늘에 오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 대하여 믿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마리아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신앙을 밝혀 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87항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가운데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모 승천에 대해서도 966항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합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라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겪으신 몸과 마음의 수고와 시련의 삶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져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엘리사벳의 인사에 대한 응답으로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을 찬양하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겸손함이 드러나는 이 노래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천한 여종을 굽어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도록 성모님께서는 맏물이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오게 하셨고, 또한 재림하시도록 ‘가난한 이들’의 희망을 노래하셨기 때문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강론]
영적 승리와 축복의 원천
-찬미, 겸손, 우정-
요즘은 뉴스 보기가 두렵습니다. 대부분 국민들이 어두운 분위기에서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전례 없던 코로나19 펜데믹 감염병과 홍수피해로 참으로 심신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으니 노래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니 보통 재앙이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 맞이하는 성모승천 대축일이 참 고맙습니다. 희망과 기쁨의 태양이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느낌입니다. 우리 믿는 모두의 영원한 삶의 모범인 성모 마리아입니다. 말그대로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에녹, 모세, 엘리야에 이어 신약의 예수님에 이은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적 승리의 삶을 상징하는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표지가 성모님의 승천이요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 승천의 삶을, 영적 승리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영적 승리의 삶은 그대로 하느님의 승리를 뜻합니다.
성모승천 대축일 새벽 성무일도시 초대송 후렴과 찬미가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참 아름다운 전례가 우리 영혼에 활력을 줍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 하늘에 오르셨으니 어서와 우리 주께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태양의 빛입으신 동정녀시여 열두별 머리위에 꾸미신이여
저달을 발판삼아 우뚝 서시니 환하게 빛나도다 당신의 광휘
죽음과 지옥권세 쳐부순이여 우리를 마음여겨 보살피시니
주님의 곁에 앉은 당신우러러 모두가 여왕으로 찬양드리네”-
바로 제1독서 묵시록을 근거한,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경축하는 찬미가입니다. 2절까지만 소개했지만 5절까지 내용이 참 깊고 풍부합니다. 방금 미사중 흥겹게 부른, “왕후가 당신 우편에 서 있나이다.” 화답송 후렴도 우리를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느낌입니다.
이번 8월16일자 카톨릭 평화신문은 온통 지난 8월2일 선종한후 8월8일 죽림동 주교좌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한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님 기사로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영적 승리의 삶을 신자들에게 선물로 남기고 떠나신 향기로운 주교님입니다. 마지막 유언인 시편과 남기신 말씀도 아름답고 감동스럽습니다.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116,12-13)-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반세기 이상을 부당한 사제로 살도록 허락하신 과분한 은총을 입은 주님의 종, 죄인 장익 십자가의 요한 저는 그저 더없이 고맙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아, 어떻게 성모님처럼, 장익 주교님처럼 영적 승리의 삶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런지요. 어떻게 하면 희망과 기쁨으로 빛나는 영적 승천의 삶을 살 수 있을런지요.
첫째, 찬미입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삶은 찬미의 삶입니다. 찬미의 삶이 영적 승리의 삶의 기초입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즘 골똘히 묵상하는 주제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숨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존재감 없는 삶도 많습니다.
바로 하느님 찬미가 진짜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사랑의 찬미가 삶의 의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하느님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찬미의 승리,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는 찬미의 빛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찬미가입니다. 2천년 동안 가톨릭 교회가 저녁 성무일도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영적 승리의 삶을 간원하며 부른 찬미가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나이다.”로 시작하여,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로 끝나는 마니피캇 찬미가는 말그대로 찬미의 절정입니다. 샘솟는 희망과 기쁨으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찬미의 은총입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바로 겸손이 영적 승리의 삶의 빛나는 표지입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요약되는 예수 성심이 바로 영적 승리의 삶을 입증합니다. 죽어서가 아닌 이미 살아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겸손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겸손입니다. 끈임없는 회개와 함께 깊어가는 겸손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겸손과 더불어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다음 행복기도 내용 그대로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온유와 겸손,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성모님에게 겸손의 절정은 태중의 예수님과 함께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입니다. 겸손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성모님의 겸손한 방문에 감격한 엘리사벳이요 성모님의 겸손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엘리사벳입니다.
셋째, 우정입니다.
홀로의 여정이 아니라 홀로와 더불어의 여정중의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영적 승리의 삶에 결정적인 요소가 도반과의 영적 우정입니다. 성모님께서 수태예고후 즉시 찾은 것이 영적 도반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성모님을 격려합니다. 성모님의 내면의 어둠을 환히 밝힌 엘리사벳의 고백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평생 영적 승리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영원히 잊지 못할 엘리사벳 도반의 위로와 격려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영적 도반 엘리사벳이 없었다면 어디서 이런 은혜로운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참으로 두 분 어머니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깊은지 깨닫게 됩니다.
두분의 영적 우정에 필히 전제되는 바, 영원한 평생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참으로 두 분이 주님과 우정이 깊은 주님의 종, 성령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서로간의 우정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서로간의 우정의 성장과 성숙과 함께 가는 것이 영원한 도반 주님과의 우정임을 깨닫습니다. 영적승리의 삶에 결정적 요소가 수직적 차원의 주님과의 우정, 수평적 차원의 인간 도반과의 우정입니다.
부전자전이란 말도 있지만 영적 삶에서 모전자전이 더 어울립니다. 성모 마리아 어머니에 예수님이요, 엘리사벳 어머니에 세례자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성모 승천 대축일, 꼭 우리 어머니들 축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알게 모르게 영적 승리의 삶을 사셨던 어머니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영적 승리의 삶의 빛나는 표지는 성모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승리의 삶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찬미와 겸손, 우정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함으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아멘.
2.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강론]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임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기쁨인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1950년 11월 1일, 한국에서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있을 때, 교회는 “성모님의 승천” 교리를 선포함으로써, 인간의 미래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송>에 언급되고 있듯이, “은총이 가득 하신 분”, 곧 참으로 복되신 분이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은 축복의 풍요로움과 구원의 완성을 말해줍니다. 사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낳아 인류를 구원하는 계기를 마련하셨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의 가장 완전한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라는 혈연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칭송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에 행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노래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혁명의 노래입니다. 곧 성모님 승천은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이 인류 최고의 영예를 얻을 수 있다는 혁명적인 가르침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진 기쁨인 광복을 기념합니다. 이 광복이 바로 우리에게 베풀어진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이 파티마 성모님의 전구로 종결되었듯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동란 역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승천대축일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 안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을 찬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해방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이 분단된 불행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올해(2020년)는 해방 76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단 76주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로, 아직도 형제적 화해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이 동포요 형제를 적으로 여기고 대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광복 50주년인 1995년 성림강림대축일에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를 통해, 북한선교의 진정한 뜻이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대비”(제 200조)하는데 있음을 밝히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한국을 방문하여 첫 날 청와대에서 공직자들에게 지난 70년이란 세월을 두고 높이 쌓아온 대결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부터 시작하자고 하셨고, 마지막 날 명동성당 미사에서 “남북으로 대결하고 있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평화를 원하고, 연대와 협력과 대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거나 내 편으로 변화시키려하기 보다, 상대방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민으로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대화에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동안의 유리한 위치 점령을 위한 ‘기 싸움’과 ‘힘겨루기’를 내려놓아야 하고, 서로의 대립과 긴장의 이기적인 ‘줄다리기’를 멈추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에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특별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루카 1,54)
주님!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 안에 베푸신 측량할 수 없이 큰,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당신의 자비를 찬미합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여 찬미하는 일이 제 삶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자비의 노래 외엔 아무 것도 아니 되게 하소서. 아멘.
3. [교황님미사강론]성모승천대축일 거룩한 미사[2013년 8월 15일 주일(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승천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카스텔 간돌포 2013년 8월 15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의 끝 부분에서 우리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님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묵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59). 그리고 그 끝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68). 우리 어머니의 이 가장 아름다운 표상의 빛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방금 들은 성경 말씀의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가지 단어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싸움, 부활, 희망.
요한 묵시록의 구절은 여인과 용의 싸움의 환시를 보여 줍니다. 교회를 나타내는 여인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영광스럽고 승리에 차 있으며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 해산의 진통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와 같습니다. 즉 하늘 나라에서 교회가 어떤 면에서 이미 그의 주님 영광과 관련이 있다면 역사 안에서 교회는 계속해서 하느님과 악의 존재 지속되는 적과의 갈등들이 가져다 주는 시련과 도전들을 겪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맞서야 하는 - 우리들 모두,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 싸움 안에서 마리아님은 그들을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마리아님은 이원적 조건을 공유하십니다. 그분 성모님께서는 물론 이미 완전히 천상 영광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와 멀리 계시거나 떨어져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악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지탱해 주십니다. 마리아님과 함께 하는 기도, 특히 묵주 기도 – 그러나 이것을 잘 들으십시오. 묵주기도. 여러분은 매일 묵주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이 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하지 않습니다(사람들이 “네!”하고 소리치다)… 정말입니까? 자, 마리아님과 함께 하는 기도, 특히 묵주기도는 이 “고통”의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싸움의 기도이고 악마와 그 동료들에 대항하는 싸움 속에서 지탱해 주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또한 싸움에서 우리를 지지해 줍니다.
제2독서는 우리에게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쓰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설합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은 관념이 아닌 사건인 이 기본적인 진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님의 승천하신 몸과 영혼의 신비조차도 온전히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어머니의 인성은 죽음에서 생명[삶]에 이르기까지 아드님 자신의 행로 안에서 아드님에게 “이끌립니다”. 최종적으로 완전히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님에게서 그분이 받으신 모든 인성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녀, 어머니께서는 당신 삶을 통해 충실하게 그분을 따르셨는데,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마음으로 그분을 따랐고 그분과 함께 하늘나라, 천국, 아버지의 집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리아님은 또한 십자가의 순교를 경험하셨습니다. 당신 마음의 순교, 당신 영혼의 순교. 그분께서는 당신 영혼의 깊숙한 곳까지 당신 아드님의 수난을 사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온전히 그분과 일치하셨고 그리고 그렇게 마라아님께 부활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물이시고 마리아님은 구속 구원 받은 이들의 첫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의 첫 째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분께서 우리의 대리인, 우리의 자매, 우리의 큰 누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분께서 하느님 나라에 구속 구원 받은 이들의 첫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세 번째 단어를 제시합니다. 즉, 희망. 희망은 갈등-생명과 죽음, 선과 악 사이의 싸움-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랑의 승리를 믿는 사람들의 덕목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님의 노래, 마니피캇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 걸어가는 하느님 백성의 노래입니다. 그것은 많은 성인들의 노래, 남자들과 여자들, 어떤 명성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느님께는 알려져 있는 아주 많은 다른 이들- 즉 엄마들, 아빠들, 교리 교사들, 선교사들, 사제들, 수녀님들, 젊은 이들, 심지어 어린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노래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안에 작은 이들의 희망과 겸손한 이들의 희망을 품으면서 삶의 싸움에 맞서 왔습니다. 마리아님은 기도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 오늘, 교회도 세상 모든 곳에서 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특히 그리스도의 몸이 수난 받아 고통을 겪고 있는 곳에서 강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가 있는 곳은 언제 어디서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가 이렇게 말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희망을 빼앗기도록 당신 자신을 놓아 두지 마십시오. 우리가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를, 왜냐하면 이 힘은 우리의 눈을 하느님 나라에 고정시키고 앞으로 우리 자신을 나아가게 하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님은 언제나 그곳에, 저 공동체, 우리의 형제 자매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과 동행하시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희망의 마니피캇을 노래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온 마음으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이 인내와 승리의 노래, 싸움과 기쁨의 노래에 일치시킵시다. 이 노래는 승리하는 교회와 순례하는 교회를, 지상과 천상을 일치시키고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여정이 향하여져 있는 영원과 우리의 삶을 합쳐 줍니다. 아멘.
(최종 번역 날짜와 시간 2020. 8. 15. 00:39)
P.S.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 안에서 성모승천대축일을 축하 드립니다!
지난 5주동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13년 미사 강론을 무사히 번역하고 소리로 만들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늘로 오르신 어머니를 찬미하오며 우리도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중에 누구도 낙오되지 않고 하느님 나라 그 영광 안에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병자의 나음이신 성모 마리아님께 아프신 모든 분들, 병으로 고통 받는 모든 분들을 위해 빌어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우리 어머니 마리아님께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주님 저희를 낫게 하소서.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마리아님!
강론 미사 사진 -> http://www.photogallery.va/content/photogallery/en/celebrazioni-liturgiche/15agosto2013.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방법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승천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십니다. 그런데도 당신 아드님처럼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성모님처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그 순간에만 하늘로 오르셨던 것일까요? 성모님은 살아계셨을 때부터 하늘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로 향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하늘로 향하든, 땅으로 향하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죽음과 함께 그 방향의 끝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로 걷고 있는지, 땅으로 걷고 있는지 반드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면 내가 어떠한 추진력을 사용하는지 알면 됩니다. 모든 발사체는 뒤로 뿜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내게서 뿜어나오는 추진력이 나의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만약 나를 통해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가고 있다면 나는 분명히 물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노를 저으며 물줄기를 거슬러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홍주연 작가의 『더 해빙』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10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5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도 돈을 쓰는 것에서 항상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 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물처럼 흐름이 있는데 기쁘게 흐르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부족함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때, 그것이 무엇이든 그 기쁘게 내어주는 것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용서를 기쁘게 하고 있다면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진리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움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만큼 가버리고 맙니다.
구약에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 두 명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뜻이 계속 나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뜻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에서 온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약의 에녹이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으니 그 추진력으로 말씀의 고향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며 자신의 제자 엘리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떨어뜨렸습니다. 엘리사가 그 망토로 강을 치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는 마치 홍해를 가를 때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와 같은 힘을 지닌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고 ‘은총’을 상징합니다. 누군가에게 은총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은총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눈치채십니다. 포도주는 은총입니다. 교회에 은총이 부족한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갑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내려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교회에 은총을 중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 가셨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하늘에게서 오는 것을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은총의 중개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쫓겨났던 에덴동산에 어떻게 다시 오르는지 보여주신 최초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5.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끌림과 떨림’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이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하면 더 끌리기도 합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맛이 있는 음식도 있지만 입맛에 끌리는 음식도 있습니다. 술도 비싼 술이 좋지만 입맛에 끌리는 술이 있습니다.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이 끌린 사람이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던 소경, 깨끗해지기를 바랐던 나병환자, 부하의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백인대장, 딸의 병을 위해 찾아왔던 여인,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던 자캐오, 예수님께 시중들던 마르타,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망과 권력에 끌리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하는 연인은 마음이 떨릴 것입니다. 서품식에서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듣는 서품자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릴 것 같습니다. 드디어 새집을 마련해서 입주하는 아내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처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저도 첫미사를 봉헌할 때 무척 떨렸습니다. 무서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서 떨리는 것입니다. 하혈이 멈추었던 여인의 마음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들것을 들고 걸을 수 있었던 중풍병자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도 떨렸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도 떨렸다고 합니다. 익숙함으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보다는 처음 성체를 모셨던 그 설렘과 순수함으로 신앙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모님께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셨다고 믿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서 하느님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이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모님께 대한 이 모든 찬사와 공경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천사 가브리엘과 성모님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성모님께 대한 찬사와 공경은 시작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채워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6. [매일미사 묵상 결론 기도문]
2020년 8월 15일 토요일[(백) 성모 승천 대축일]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마니피캇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