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8번 | 주 우리에게 사랑과 자유를 | 영성체 성가 158번 | 구세주예수 그리스도 |
예물준비 성가 216번 | 십자가에 제헌되신 | 영성체 성가 501번 | 받으소서 우리 마음 |
예물준비 성가 512번 | 주여 우리는 지금 | 영성체 성가 175번 | 이보다 더 큰 은혜와 |
파견 성가 200번 | 열절하신 주의 사랑 |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투아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또한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대항하여 싸웠다. 1914년에 선종한 비오 10세 교황은 1954년에 시성되었다.
입당송
주님은 손수 그를 대사제로 뽑으시고, 당신의 곳간을 여시어 온갖 복을 베푸셨네.
<또는>
집회 50,1 44,16.22 참조
보라, 대사제, 주님은 맹세하신 대로 당신 백성 가운데 그를 높이셨네. 사는 동안 그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비오 교황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도록
천상 지혜와 사도의 용기를 주셨으니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그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고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1-14
그 무렵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7(106),2-3.4-5.6-7.8-9(◎ 1 참조)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말하여라, 주님이 구원하신 이들,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이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 북녘과 남녘, 뭇 나라에서 모으신 이들은 말하여라. ◎
○ 사막과 광야에서 그들은 헤매며,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 찾지 못하였네. 굶주리고 목말라, 목숨이 다하였네. ◎
○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셨네. 그들을 바른길로 걷게 하시어,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게 하셨네. ◎
○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
복음 환호송
시편 4.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
◎ 알렐루야.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1테살 2,2ㄴ-8)와 복음(요한 21,15-17)을 봉독할 수 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복된 비오 교황의 가르침을 따라
경건한 마음과 참된 믿음으로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0,11 참조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복된 비오 교황을 기리며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천상 음식의 힘으로 주님을 굳게 믿으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구원과 희망의 신탁을 전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라는 표현은, 새로운 신탁 또는 새로운 장을 나타내며, 상징적 표현인 ‘바싹 말라 버린 뼈들’은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구원과 희망의 문을 열어 놓습니다.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 인간이 보기에는 조그마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에제키엘은 하느님께서만이 구원을 이루실 분이라고 제시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별적인 육신의 부활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불충으로 그들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졌지만, 그 관계의 회복은 온전히 하느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영의 그 뜨거운 ‘숨’을 다시 불어넣으시어 말라 버린 뼈들을 다시 살리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던 창세기를 떠오르게 합니다(창세 2,7 참조).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 더 절실한 오늘날에 다시금 그분의 ‘숨’이 우리 안에 불어넣어지고, 그분의 ‘손’이 우리에게 내리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이를 준비하도록 예수님께서 큰 계명을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강론]
가장 큰 계명
-경천애인敬天愛人-
2014년 요셉 수도원이 자치 수도원이 된 이후 지금까지 참 많은 분들의 휴대폰에 붙여드린 것이 수도원의 ‘하늘과 불암산’의 로고 스티커일 것입니다. 집무실에 면담이나 고백성사차, 또는 인사차 들리는 모든 분들의 휴대폰에 수도원 로고를 붙여 드렸고, 붙여드리고 있으며, 붙여 드릴 것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수도원 로고는 제 자작시 ‘하늘과 산’에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무려 23년전에 쓴 시로 참 좋아하여 많이도 인용했습니다. 수도원 로고와 일치하는 하늘과 산이 상징하는 바 참 깊고도 풍부합니다.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기도와 일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려 주는 하늘과 산의 로고입니다. 하늘과 산, 하느님과 인간, 우선순위는 분명하고 결코 분리될 수도 없으며 어느 하나도 생략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이자 둘이요 둘이자 하나입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좌우명, 경천애인도 이와 일치합니다. 휴대폰에 붙여드리며 위와 같은 설명을 꼭 곁들입니다.
전화할 때, 스티커에 입을 맞춘후 “찬미 예수님!” 하고 시작하라면 모두가 웃습니다. 하루중 가장 많이 활용하며 보게 되는 휴대폰을 사용할 때 마다 하늘과 산의 로고를 보는 자체가 기도이고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기도와 일을 상기하고 기억할 수 있기에 이보다 적절한 처방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합니다.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하느님 자녀가 참 사람이 되는 길도 가장 큰 계명의 실천인 이것 하나뿐입니다. 삶의 깊이도, 영적 삶의 성장과 성숙도 전적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 실천에 달렸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이런 정신으로, 이런 마음으로, 이런 사랑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대로 살아갈 때 우리 존재 자체는 살아있는, 걸어다니는 성경책이, 성인이 될 것입니다. 둘은 함께 갑니다. 상호보완적이며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은 맹목盲目이고, 이웃 사랑없는 하느님 사랑은 공허空虛합니다.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이웃 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무사한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의 사랑도 정화되어 깨끗한, 무사한 이웃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참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람 사랑은 얼마 못가 눈먼 이기적 사랑으로 변질됩니다. 눈 밝은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집착없는 초연한 항구한 사랑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느님 사랑이 빠지다 보면 변덕스런 사람은 타락하여 괴물도 되고 야수도 되고 악마도 됩니다. 하여 저는 사람이 문제라면 하느님은 답이라 합니다. 끊임없는 사랑의 이중 계명의 실천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하느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참 사람의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살아있다 하여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존재감 충만한 삶입니다. 삶의 무지와 무의미, 허무에 대한 처방의 답도 이런 사랑뿐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사랑결핍이요 만병통치약이 사랑입니다. 강론이 사랑예찬으로 변했습니다. 교황님이 강조하시는 것도 이런 사랑입니다. 특히 이웃 사랑중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서 이스라엘의 부활 환시, 즉 마른 뼈들이 본래의 사람으로 살아나는 예화의 상징이 참 풍부합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사랑이요 빛입니다. 하느님 생명의 말씀이, 하느님의 숨인 성령이 마른뼈들에 닿으니 다 살아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에 영혼이 충전될 때 진정 살아나는 우리들이요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다음 말씀은 구체적으로 마른 뼈들같은 유배중인 이스라엘 집안은 물론 우리 모두를 지칭합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대로 이 거룩한 파스카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마른 뼈들 같은 우리가 주님의 은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오늘은 성 비오 10세 교황 축일입니다. 성인은 이미 살아있을 때 성인으로 존경받은 분입니다. 참으로 가난을 사랑했던 단순하고 깊고 거룩한 분이었습니다. 새벽 4시 기상하여 언제나 규칙적인 부지런한 일과 였습니다. 이제는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관리’의 시대라 합니다. 참으로 자신을 철저히 관리하여 강인한 정신과 믿음으로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79세 천수를 누렸던 교황입니다.
성 비오10세 교황님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복원하는 것(To restore all things in Christ)”(에페1,10) 이라는 모토하에 참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교황님은 참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임종전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기를 원한다.” 유언대로 장례식도 매우 조촐했습니다. 사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가난한 가정의 10명의 자녀들중 둘째로 태어났고 부친은 시골의 우편 배달부였습니다.
어제의 성 베르나르도 축일에 이어 오늘은 성 비오 10세 교황 축일입니다. 꽃들처럼 참 다양한 색깔, 크기, 모습, 향기의 성인들임을 봅니다. 성인 축일은 기념,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고유의 색깔, 크기, 모습, 향기의 참나의 성인이 되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방법은 단 하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삶에 항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성인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2.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강론]
8.21.“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밀접하게 연결시키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들인 까닭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 형제에게 대한 참사랑도 없게 되고, 아버지의 아들이나 딸을 미워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제 눈으로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으로 보지도 못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 4,20)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데 묶으셨습니다.
사실, 이 사랑의 계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변혁, 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아니, 애시 당초 ‘남’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한 생명’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자매가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회문헌 <새 천년기>에서 친교의 영성에 대해서 다루면서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친교의 영성은 삼위일체의 심오한 신비체 안에서,
타인을 “나의 일부인 사람들”로 생각하고
형제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을 “나를 위한 선물”로 여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야, 비로소 이웃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이 되어,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바로 ‘한 몸’인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사랑이 됩니다.
그리하여 형제 사랑이 진정한 하느님 사랑이 되고, 하느님 사랑이 진정한 자기 사랑이 됩니다.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이웃이 곧 나요, 이웃의 아픔은 바로 내 자신의 아픔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곧 이웃이요, 이웃이 곧 하느님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 형제가 곧 하느님이 됩니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 됩니다.
그리하여 형제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 되고 진정한 자기 사랑이 됩니다. 한 생명을 이룬 사랑이 됩니다.
이처럼 ‘사랑의 계명’은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사고와 인식의 틀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 새로운 자기에로의 전환입니다.
그것은 ‘내’가 중심인 이웃 사랑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이웃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변화와 실천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어집니다.
이를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요한 4,12)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3.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라고 정리해 주십니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율법 교사가 진정 이 사랑의 계명을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알고자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율법 교사라면 평생을 율법에 대해 가르쳐 온 사람인데도 왜 이것을 모를까요? 십계명에서 613가지의 율법 조항, 그리고 관습법과 전통법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법 교사는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너무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너무 명확해지면 율법 규정대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율법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 교사는 율법을 이해하고는 싶었지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고는 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깨달아 사랑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해하지도 않으려 한 것입니다. 진리를 거부하는 이들이 다 이렇습니다. 알게 되어 변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친구로부터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 받았습니다. 몹시 기뻤던 그는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사냥개들은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 있었습니다. 화가 난 그는 사냥개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에게 화를 냈습니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개들을 왜 내게 선물했는가? 그 쓸모없는 사냥개들을 내가 모두 죽여버렸다.” 그러자 놀란 친구는 말했습니다. “그 사냥개들은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와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훈련받은 개들입니다.”
자 여기에서 진실을 한 번 찾아봅시다. 알렉산더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성급한 마음인가요? 아닙니다. 알렉산더가 진실로 숨기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친구가 자신에게 그런 훌륭한 개를 주었을 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개의 목을 치는 것입니다. 알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여 그 귀중한 선물을 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목을 치는 것입니다. 오늘 율법 학자가 그런 사람이고 진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선물의 목을 칩니다. 알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닫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는 사람만이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고 단순하게 가르칩니다. 이해하려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예전에 성 프란치스코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본래 아씨시의 친구들과 먹고 놀고 즐기는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해서 거지의 모습으로 세상의 모든 쾌락을 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함께 놀던 친구들도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함께 공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친구만이 프란치스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도 악영향을 미칠까 봐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진짜 하룻밤 재워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프란치스코와 그를 따르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다음 미소를 짓고 한 번 안아주고는 골방으로 들어가 그 친구를 위해 밤새 기도합니다. 이 모습을 살짝 엿본 친구는 그제야 자신도 제자가 되겠다고 나섭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를 기쁘게 안아줍니다.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설득할 때, 말로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가 성당에 안 나온다고 수없이 설득합니다. 당연히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말보다 사랑을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고마우면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머리보다 가슴을 더 신뢰합니다. 가슴부터 점령해야 머리도 점령할 수 있습니다.
4.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더운 여름입니다. 산보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아침 6시에 물 하나 들고 길을 나섭니다. 묵주기도를 마치면, 이어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듣습니다. 자칫 무료할 수 있는 산보가 음악이 함께하면 추억의 책장을 넘기는 여행이 됩니다. 노래의 제목도 감미롭습니다.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를 들었습니다. 멀리 다리가 보이고, 다리 아래에는 바닷물이 반겨줍니다. 바다와 노래는 더위를 잊게 하고, 잠시 지난날을 돌아보게 합니다. 가사도 좋습니다. ‘그대와 나 만약에 사랑을 할 때,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주는 마음도 햇살입니다. 생각나면 둘러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하늘가에 피어나는 무지개 따라 지나버린 그 시절 돌아가고파.’ 오늘은 뉴욕에 온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항에서 내렸을 때의 느낌은 덥다는 거였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역시 덥습니다. 작년의 더위가 막연한 걱정과 긴장이 함께한 더위였다면 지금의 더위는 넉넉한 여유와 웃음이 함께하는 더위입니다.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한 날들이지만 내년에는 코로나19도 먼 옛날의 추억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30일 피정을 할 때입니다. 학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서 묵상합니다. 큰 주제는 ‘두개의 깃발,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 겸손의 3단계,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3주간이 끝나면 오늘의 성서말씀인 에제키엘 37장을 묵상하도록 하였습니다. 피정을 통해서 지난날의 모습을 새롭게 개선(Reformation)하고, 개선된 모습으로 변화(Transformation)되고, 변화된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Conformation)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30일 피정을 통해서 학생들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나눔의 우산, 사랑의 우산을 기증해 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고 성당에 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면 우산을 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분들이 나눔의 우산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본당에서 준비한 사랑의 우산을 쓰면서 비를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외로움의 비를, 슬픔의 비를, 고통의 비를 맞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우산을, 작은 봉사의 우산을, 희생의 우산을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성찰하고, 이웃을 도와주며, 가진 것을 나눈다면 우리의 몸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을 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다면, 아무런 욕심과 미련 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강물을 볼 수 있다면, 아무런 대가 없이 아름답게 피었다가 지는 꽃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영혼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임도 알게 될 것입니다.
뉴욕에서의 1년을 돌아보는 제게 예수님께서는 가야할 방향을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신발 끈을 다시 매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려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5. [매일미사 묵상 결론 기도문]
2020년 8월 21일 금요일[(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 더 절실한 오늘날에 다시금 그분의 ‘숨’이 우리 안에 불어넣어지고, 그분의 ‘손’이 우리에게 내리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이를 준비하도록 예수님께서 큰 계명을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