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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성서

[그룹성서]이사야반 10회기 줌 강의(2021.5.17(월)

[그룹성서]이사야반 10회기 줌 강의
일시: 2021년 5월17일(월) 10시~12시
출석 6명 

주제: 제4과 이방 민족들에 개한 신탁들
13 - 23장

읽기 13,1-23,18

묵상과 생활 1~4

 

 


묵상과생활 1.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대적하고 벌을 받던 이집트와 아시리아를 강복하시는 엄청난 일을 하셨습니다(19,18-25). 이는 회개하는 이들을 모두 수용하시는 구원의 보편성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혹시 내가 정말 미워하고 용서하기 힘든 이웃은 없습니까?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정말 미워하고 용서하기 힘든 이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얼마전 나로 인하여 상대방이 불편했을 것 같은 사건은 있었습니다. 8살 연하의 지인과 친하게 잘 지냈습니다. "언니! 언니!"하며 잘 따르고, 서현동 같은 동네에 살다보니, 성남시청 모니터 등 관련된 일에 갈 때, 동행하여 갈 수 있고, 서로 의지가 되는 친구 관계가 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시민자원순활활동가로 약 1년간 200여만원의 월급을 받는 기간제 활동하게 되었다며 좋아서 전화를 했습니다. 3일간 매일 아침 10시쯤 전화를 해서 근 1시간여 통화를 하는데, 거의 비슷한 내용의 반복인 듯 했습니다. 

1시간여 통화를 할 때, 이말 저말 하다보니까 나는 나의 까르마(업습)대로 고해성사를 보듯, 나를 비하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합니다. 전화를 끊고나서 후회를 합니다. 그녀 말을 듣기만 하면 좋으련만, 묘하게 묘하게 나의 약점, 치부 등을 끄집어내서 말합니다. 내가 발설한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서 나에게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는데, "왜 했을까?"후회가 됩니다. 또한 내가 하는 비하의 말을 내 귀로 들었으니 스스로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흘 째 되는 날, 전화를 왔을 때, 전화를 안 받고...

요즘 젊은이들이 전화통화를 안 하면서 문자 주고받기를 한다는 세태에 짐짓 마음의 용기를 얻어서...

"앞으로 전화통화는 되도록 하지 말고, 용건은 문자로 주고 받읍시다." 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언니! 내가 뭐 잘못한 것 있어요? 바로 말해주세요. 고칠게요. 언니랑 친구되어 서로 의지하고 좋았는데..."한다...ㅠㅠ...

나의 대답인즉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단 전화를 한 시간 가량 길게 하다보니까...나도 모르게 나의 나쁜 습성이 나와서...내 치부 및 약점, 자기 비하 발언을 하는데...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문자로 주고 받자고 한 것이다. 전화를 짧게 끊으면 되는데, 그것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부족하여서...문자주고 받기를 하자고 한 것이다." 라고 했다. 

그녀는 그후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다운되었다는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주님의 도우심으로, 다른 이웃의 도움으로 그녀와 5~6번 먼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만나서 행동을 하고 있다. 나의 성격적 한계때문에 제안한...

"전화통화 자제하고, 문자를 주고 받자"는 말로 인하여 그녀가 받은 상처, 불편했을 마음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묵상과생활 2. 

19장에서 1-4절은 이집트의 사회적, 종교적 붕괴를, 5-10절은 경제적 파산을, 11-15절은 철저한 혼란과 파괴를 연결하여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그 혹독한 심판을 주님의 강복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바빌론 유배로 간 비참한 상황에서 기록된 책이다.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모든 것이 철저하게 파산된 멸망의 상황에서, 바닥까지 다운된 처절한 심정에서 오직 매달릴데라곤 주 하느님밖에 없는 상황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닥까지 가는 혹독한 심판이 있을 때, 반드시 주님의 손길이 다가와 역전시켜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는 것이 우리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이라크에서의 주일강론 말씀으로 답을 대신 합니다.

"역경 중에는 언제나 두 유혹이 있다.

하나는 도주하거나 거리를 두고 냉담하는 것. 또 하나는 분노와 힘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게세마니에서 많은 제자들이 도주하고, 베드로가 칼을 빼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도주나 칼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반면 예수님은 사랑의 겸허한 힘으로, 그분의 인내의 증거로 역사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이렇게 하도록 불림받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게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시는 방법이다."

즉, 하느님의 사랑과 인내로 심판이 역전될 것이라는 구원의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묵상과생활 3.

하느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경험에 의지하려는 일상적인 유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 자신의 능력과 경험에 의지했다가 이스라엘처럼 바닥까지 처절하게 망했을 때, 믿는 것이라는 하느님밖에 없을 때,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으로 인하여 깨우침이 일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영성이 급격히 높아져 일상적인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자신의 능력과 경험의 최대치까지 노력을 하되, 결과는 주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흥해도 하느님의 뜻, 망해도 하느님의 듯이라는 지혜가 필요하다. 강길웅 신부님의 말슴처럼 "기도를 들어주시면 다행, 안 들어주시면 천만다행"이라는 주님께 맡기는 마음을 가져서 일상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묵상과생활 4.

13-23장의 기본 주제인 심판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날이 심판, 구원의 날이다.

내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을 때, 주님께서 심판하시어 나를 죄에서 끌어 올리시어 구원하신다.

내 뜻을 죽이시고,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시는 것이 심판이자 구원이다.

 

일상의 풍파나 심판은 하느님 말씀을 크게 들리게 하는 확성기라는 말에 공감한다. 

풍파나 심판이 없다면, 교만해져 하느님 말씀을 잘 듣지 못 할 수 있으므로...

풍파와 심판이 왔을 때, 일단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성모님처럼 곰곰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