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월 31일 화요일[(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본기도
저희도 똑같은 사랑의 불로 타올라
오직 주님을 섬기며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1-4
형제 여러분, 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 채우리라.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
○ 온 세상 땅끝마다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만 민족 모든 가문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세상 모든 권세가들 그분께만 경배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모든 이들 그분께 무릎 꿇으리라. ◎
○ 내 영혼 주님 위해 살고,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다가올 세대에게 주님 이야기 전해져, 태어날 백성에게 그 의로움 알리리라. 주님이 이렇게 하셨음이로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4,4-9)와 복음(마태 18,1-5)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거룩한 신비로 복된 요한을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대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또는>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요한을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1월 31일 화요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오늘 우리는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던 부인을 고쳐 주신 이야기를 듣습니다.
액자처럼 구성된 두 이야기는 모두 믿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 딸의 치유를 청하며 소개되는 인물은 ‘야이로’라고 불리는 회당장입니다.
야이로는 히브리 말로 ‘빛을 주신다.’ 또는 ‘빛을 밝혀 주신다.’는 의미를 가집니다(민수 32,41 참조).
그의 이름은 오늘 복음에서 매우 상징적인 구실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으로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을 되살려 주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이 말씀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죽음도 넘어서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하혈하던 여인의 이야기도 치유를 넘어 믿음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그에게 병이 낫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에 답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혈하던 여인은 온갖 노력을 하였지만 병을 고치지 못하고 더 나빠졌습니다.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던 회당장의 딸은 결국 죽습니다.
모두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는 여인과 결국 죽음에 이른 회당장의 딸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절망의 모습들입니다.
이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치유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야이로의 이름처럼 예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굳건한 믿음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1988년 5월 4일 군에서 제대한 후에 교구 성소국장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복학하기까지는 10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어디에서 봉사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이 있는 곳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돈보스코 센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수녀님들은 본당에서 보았지만 수사님들을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돈보스코 센터는 살레시오 수도회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훈련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낮에는 기술을 배웠고, 밤에는 방송통신 고등학교 과정을 배웠습니다. 전원 기숙사에서 지냈고, 매일 아침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미사 전례를 도와 드리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일, 자습 시간에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사님들께서 늘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사님들은 학생들과 함께 농구를 하였고, 학생들은 수사님들을 가족처럼 따랐습니다. 스페인에서 오신 모 신부님, 이태리에서 오신 공수사님, 임수사님, 폴란드에서 오신 현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살레시오 수도회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가 설립한 수도회입니다. 10개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20년 후인 2008년 저는 본당에서 그때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두 분은 인연이 닿아 결혼하였고 아들을 3명 낳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형제님은 청소년 분과장으로 봉사하였고, 자매님은 구역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혈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2년 동안 온갖 방법을 찾았지만 하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는 이야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 중풍병자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를 열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자신의 병을 차마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고 싶은 간절함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12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하혈이 멈추었습니다. 소경처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중풍병자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병환자처럼 깨끗하게 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간절한 손짓은 비록 말은 없었지만 여인의 몸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저도 여인과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103위 시성식을 위해서 방한하셨고, 서울 신학교에서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중앙 통로 쪽에 있던 저는 교황님께서 제 옆을 지나가실 때 발을 살짝 내밀었습니다. 사제가 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제가 된지 32년이 지났으니 그때의 간절함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 위한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살면서 많은 아픔과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욥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의지하며 걸어간다면 병이 나았던 여인처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던 소녀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탈리타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일어나야할까요? 재물, 명예,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욕망, 욕심, 시기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2023년 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탈리따꿈”
3.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30130.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첫 이방인지역 나들이인데, 게라사인 지역에서 더러운 영을 쫒아내시는 장면입니다.
거센 돌풍을 잠재우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호수를 건너왔지만, 또 다른 거센 돌풍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모세가 갈대바다를 건너왔지만 여전히 사막에서 또 다른 거센 돌풍을 마주했듯이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바다에 부는 돌풍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는 거센 돌풍을 잠재우십니다. 곧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족쇄나 쇠사슬로 묶어둘 수 없을 만큼 거센 돌풍에 휘둘려 밤낮으로 소리 지르며 무덤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께 마주 왔다.”(마르 5,2)
그러나 이제 그에게서 영들의 군대가 나가고, 그는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마르 5,15) 있었습니다.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은 더러운 영에 들렸던 왜곡된 인간성을 버리고 이제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다.”(갈라 3,27)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정신이 들었다’는 것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와 같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루카 15,17-20)는 것,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사람으로 되었다.’(에페 4,21-24)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마귀를 내쫓는 이 이야기는 병을 고치는 다른 이야기들의 범위를 넘어서, 사탄의 왕국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돼지 떼들의 익사는 이 고장에 대한 마귀들의 권세가 끝났음을, 곧 그곳이 더러움에서 해방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어둠은 빛을 반기기보다 오히려 배척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렸던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이렇게 그는 첫 ‘이방인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자비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마르 5,20)
오늘,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알려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먼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푸신 일”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주님께서 하신 일과 자비를 베풀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죽은 이들의 무덤 가운데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의 사랑 가운데 앉아 있어야 할 일입니다. 제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먼저 베풀어지고 선사되는 하느님의 사랑’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마르 5,17)
주님!
어둠을 몰아내소서.
제 안에 돼지 떼가 판치지 않게 하소서.
저는 본래부터 주님의 거처이니, 제 안에 빛을 밝히소서.
오늘도 죽은 이들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신 당신의 사랑 가운데 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
-선택, 훈련, 습관-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힘을 내어 마음을 굳세게 가져라.”(시편31,25)
요즘 참 많이 강조하는 것이 ‘선택-훈련-습관’의 중요성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좋은 선택-훈련-습관은 이를수록 좋습니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세상 떠나는 이들의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어제도 산행을 하다가 빙벽에서 떨어져 실족사로 추정되는 어느 사제에 관한 비보도 들었고 한 자매로부터는 시아버지의 죽음 소식도 들었습니다.
불쌍한 노년에 불쌍한 죽음이 너무 많습니다. 잘 늙어가기가, 잘 죽기가 얼마나 힘든지 너무 많이 목격합니다. 부부가정생활 역시 똑같습니다. 끝까지 좋은 부부관계에 좋은 가정을 유지하는 것 역시 참 어렵습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 무조건 성인聖人이라 격찬激讚합니다.
어제 어느 자매와 면담성사때 주고 받은 말중 마음에 와닿은 내용입니다. 오빠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70을 넘었어도 인내, 절제의 훈련이 전혀 안되었기에 그 나이에도 너무 감정의 기복이 크다는 것입니다. 새삼 삶의 훈련, 덕의 훈련을 생각하며 어제 강론을 나눴습니다.
진복팔단을 근거로 성덕 계산 점수를 함께 산출해봤습니다. 어제는 성사를 본 60대 초반의 두 자매의 성덕 점수였습니다. 최대한 각 항목별로 스스로 후하게 주도록 한후 100점 만점에 기본점수 20점에 8개 항목 합산후 예수님이 10점을 더 보너스로 준다하며 계산해 봤더니 무려 한 자매는 90점, 또 한 자매는 93점이었습니다.
“성녀입니다. 90점을 넘었으니 정말 성녀입니다. 성덕도 선택이자 훈련입니다. 앞으로도 성덕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로 성녀로 사시기 바랍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나눈 덕담입니다. 매일 일과표에 따른 수도생활, 그대로 기도와 노동, 공부가 조화와 균형을 이룬 영성훈련으로 습관화를 목표로 합니다. 이런 선택과 훈련, 습관이 있어 늘 거기 그 자리에서의 평화롭고 안정된 정주의 삶도 이뤄집니다.
누구도 노년을, 죽음을 뜻대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일찍부터 좋은 선택에 의식적 훈련, 습관화하는 것이, 심신心身을 단련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런 선택-훈련-습관 역시 은총과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정말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아름답고 건강한 노년에 선종의 죽음의 은총일 것입니다. 정말 시종여일, 한결같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다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죽음을 맞이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도대체 훈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수행을 사랑하고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정주도 훈련이고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침묵도 경청도 회개도 감사도 찬미도 겸손도 지혜도 순종도 훈련이고 독서도 공부도 노동도 운동도 인내도 절제도 훈련이고 습관입니다. 이런 모든 수행의 선택-훈련-습관이 목표하는 바 하느님 중심의 삶, 구체적으로 예수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성덕의 훈련입니다. 사실 이런 선택-훈련-습관이 안되었을 때 세상 유혹에 본능대로의 육적 삶을 살다보면 괴물이나 폐인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죽기까지 존엄한 품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길은 좋은 선택-훈련-습관화의 길뿐임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 말씀과 제1독서 히브리서 말씀을 보면 그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우리는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얼마나 선택-훈련-습관에 유리한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안정과 평화에 참행복입니다. 참으로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살 때 두려움과 불안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새삼 행복기도중 “주님” 호칭다음에 곧장 이어지는 “참회합니다”, “믿습니다” 고백이 정말 너무 잘됐다 싶습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 게라사의 미친 사람을 고치신 일화입니다. 게라사의 미친 사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삶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상들이나 악령들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이때 미치는 것입니다. 아무도 통제 불가능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자, 미친 자에 대한 다음 묘사가 너무 실감납니다. 삶의 중심이 없는 완전히 고립단절된 혼자의 삶입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참으로 구제불능의 자해 인간, 미친 사람입니다. 삶의 중심을 잃고 함부로 막 살았을 때,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잃었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마침내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에 마귀들은 축출되고 미친 자는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신 새로운 파스카의 삶, 부활의 삶이 펼쳐지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본래의 삶의 자리로 복귀시킵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더러운 영에 들렸던 이가 복음 선포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자 반전인지요! 그러나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예수님 중심의 삶의 선택-훈련-습관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삶,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예방이자 영혼을 튼튼히 하는 첩경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다음 고백의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희망,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믿음이라 다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묘사되는 불쌍한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파스카 예수님을 모신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깨닫습니다. 믿음으로 산다 하지만 오늘 히브리서에서 묘사되는 이들의 모습은 복음의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산과 동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를 때 일입니다. 믿음에도 공부가 훈련이 필요합니다. 광신狂信과 맹신盲信의 잘못된 무지의 눈먼 믿음도 있으며 이런 경우는 약도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비로소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밝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지 못할 때 누구나의 가능성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이들의 무지한 믿음입니다.
성덕의 수련에, 올바른 믿음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선택-훈련-습관”도 없습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파스카 예수님을 모시고 날마다 올바른 신망애의 삶을 살게 하는, 주님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깊이해주는 미사은총입니다.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
주님은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사람들 보는데서 그 선을 베푸시나이다.”(시편31,20). 아멘.
[1/31(화)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치유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야이로의 이름처럼 예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굳건한 믿음입니다.(허규 신부)
2. 예수님께서는 ‘탈리타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일어나야할까요? 재물, 명예,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욕망, 욕심, 시기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부터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조재형 신부)
3. 저는 본래부터 주님의 거처이니, 제 안에 빛을 밝히소서.
오늘도 죽은 이들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신 당신의 사랑 가운데 살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모든 수행의 선택-훈련-습관이 목표하는 바 하느님 중심의 삶, 구체적으로 예수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31(화)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제 38일 기도]
하느님!
세속적 욕망에서 일어나게 하소서!
탈리타꿈! 일어나게 하소서.
선택-훈련-습관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31일(화) 6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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