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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2월 1일 수요일[(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3개

[매묵]2023년 2월 1일 수요일[(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3개

 

입당송

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본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13-14.17-18ㄱ(◎ 17ㄱㄴ)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우리의 됨됨이를 익히 아시고,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기억하시네. ◎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고, 그분의 의로움은 대대손손, 그분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의 제대에 예물을 올리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저희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또는>
마태 5,3.5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뉴욕에는 국내선을 주로 운항하는 라과디아(LGA) 공항이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는 차량으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공항입니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상영하는 대표적인 뮤지컬의 홍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알라딘, 라이언 킹, 위처드, 팬텀오브 오페라입니다. 직원들과 함께 보기도 했고,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후배 신부님과 팬텀오브 오페라를 보았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강열한 음악이 관객을 압도하는 뮤지컬입니다. 처음 본 것은 2006년 토론토였고, 그 다음은 2010년 서울에서 였습니다. 그리고 2023 1월에 뉴욕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외모 때문에 뛰어난 실력이 있음에도 무시당하고, 외면당했던 에릭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에릭으로부터 노래를 배우는 크리스틴입니다. 뮤지컬 초반에 에릭과 크리스틴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압권입니다. 뮤지컬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크리스틴의 따뜻한 마음을 에릭이 받아들이면서 끝이 납니다.

 

이번 뮤지컬을 보면서 저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자 주인공 역은 주로 백인이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는 여자 주인공 크리스틴 역을 흑인 배우가 하였습니다. 노래도 연기도 무척 잘 하였는데 처음에 제가 받은 느낌은 능력보다는 배우의 피부색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에 몰두 할 수 있었고, 주인공의 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살고 있지만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세상은 엄격한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였습니다. 능력과 재능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신분과 계급을 타고 나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있고, 종교에 대한 차별이 있고, 피부색에 대한 차별도 있습니다. 신앙은 직분과 직책은 존중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소중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일과 모래는 서울대교 부제, 사제 서품식이 있습니다. 멀리 있지만 부제와 새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32년 사제생활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이끌어 주셨고, 교우 분들을 저를 이해해 주셨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성사를 정성껏 집전하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한 적도 많았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제게 필요한 사람을 만난 적도 많았습니다. 몇 번 넘어졌지만 성모님의 전구하심과 부모님의 기도가 있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하고 싶었고, 사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직무를 새 사제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제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진단해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시대의 징표는 사색, 독서, 경청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한 독서가 필요합니다. 사제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교회의 서적, 가르침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은 강론을 통해서 선포되기에 강론 준비를 충실하게 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셨고, 말씀이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기도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기도는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사제는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셨습니다. 가난한 이, 아픈 이,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행동하는 사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많은 기적을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우 분들이 마음을 열어도 시대의 징표를 모르는 사제가 있다면,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제가 있다면, 기도에 게으른 사제가 있다면, 행동하지 않는 사제가 있다면 복음의 꽃은 피기 어려울 것입니다. 새 자세들이 가는 새로운 임지에서 복음의 꽃이 활짝 피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서 성령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만나서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제와 교우가 만나서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꽃피고, 희망이 열매 맺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2.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131.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손을 얹으시어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 5,23)

 
오늘 <복음>은 하혈병을 치유 받은 여인 이야기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하혈병을 치유 받은 여인 이야기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인은 열 두 해 동안 하혈증을 앓고 있었으니,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고생도 하였을 것이고, 가진 재산도 치료비로 모두 탕진하고 절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마르 5,27)
 
사실, 율법규정에 따르면, 그녀는 피 흘리는 부정한 여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도 없고, 더군다나 다른 사람을 만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만지게 되면 그 사람마저도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감히 이러한 금기를 깨어버릴 만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곧 ‘군중에 섞여들’만큼,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댈’만큼 믿음이 굳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설교집).
 
“그분을 밀쳐대는 이는 많지만, 믿음으로 만지는 이는 적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인의 믿음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신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 불결한 것이 닿으면 같이 불결해지게 되는 법인데, 오히려 불결함이 깨끗하게 치유됨으로써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시리아의 에프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열하던 여인의 숨은 상처와 고통을 통하여 당신의 치유능력이 선포되었으니, 숨어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당신은 영광 받으소서. 눈에 보이는 한 여인을 통하여,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드님의 치유능력을 통하여 당신 아드님의 신성이 드러났고, 하혈하던 여인의 치유로써 여인의 믿음이 드러났습니다. 여인은 주님을 선포하였고, 주님과 더불어 여인도 영예로워졌습니다. 여인은 신성의 증인이었고, 주님은 여인이 지닌 믿음의 증인이셨습니다.”
 
이제, 우리 또한 단지 예수님을 쫓아다니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옷’에 믿음의 손을 대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품위와 권능을 입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오늘도 ‘말씀이신 분’이 ‘말씀이란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말씀’에 손을 대어 말씀의 권능이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만질 때, 우리 안에 그분의 힘이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옷을 통하여 흘러나왔듯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지고,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고,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곧 말씀을 통하여 말씀 속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사람”(갈라 3,27 참조)들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우리의 옷에 손을 대는 이들이게 말씀의 권능을 전달해야 할 일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표현처럼, 우리는 전선줄이고 하느님께서는 전류이십니다. 전선줄에 전류가 통해야만 전등을 밝힐 수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접속되어 있어 말씀의 전류가 흘러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사랑의 전등을 밝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손을 얹으시어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 5,23)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믿음의 전사

-믿음도 보고 배운다-

“탈리타 쿰!”

 

우선 오늘 강론을 읽기전 또는 읽은후 성가480장 "믿음으로" 4절까지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믿음’이 주제입니다. 주님의 전사는 믿음의 전사입니다. 저는 병사兵士나 군사軍士라는 말마디보다 전사戰士란 말을 좋아합니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참 많이 사용해온 ‘주님의 전사’란 말마디입니다. 평생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죽어야 제대라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영적전쟁은 살아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죽어야 비로소 끝날 것입니다. 

 

전사에게,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에게 평생 훈련은 필수입니다. 믿음의 훈련입니다. 사고사事故死나 객사客死, 병사病死가 아닌 싸우다 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라고 말하곤 하며 그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일하다 공부하다 기도하다 죽는 다면 말 그대로 영적전사이겠습니다. 

 

전사들에게 훈장처럼 달려 있는 부상이요 병들입니다. 저 또한 분투의 노력을 다해 반듯하게 살아왔지만 아픈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또한 주님을 섬기다가 믿음의 전투중 입은 영적상처의 상징으로, 또 영적전쟁의 승리의 표징인 훈장으로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또 제 자신의 죄에 대한 보속補贖으로, 세상 죄에 대한 대속代贖으로 여기며 위로를 받습니다. 

 

참 많은 이들의 저에 대한 관심사가 건강입니다. 속으로는 아프고 불편해도 안 그런척 건강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또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실 좀 불편하고 아파도 영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에게 우선적인 것은, 한결같은 것은 영적 전의의 열정입니다. 영적 사기의 충천입니다. 아무리 무기가 좋고 전략이 뛰어나도 영적 전의의 열정이 식어버리면 영적승리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한결같은 전의와 열정, 훈련이 필수입니다. 아주 오래 전 고백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왜관수도원에서 파견받아 떠나기 전날 밤

1988년 7월10일

다음날 성 베네딕도 대축일 7월11일 아침 4시까지

밤새 수도원 성전에서

주님께 3천배 절하였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성철 스님의 종신불퇴終身不退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왔다

지금까지 오늘 하루만 살았다.

나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다’-

 

여전히 살아있는 동안 유효한 고백이겠습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불암산은 정주의 표상이자 한결같은 인내와 믿음의 표상입니다. 불암산을 바라볼 때 마다 인내의 정주, 믿음의 정주를 새롭게 확인합니다.

 

이어 또 둘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용수철의 비유를 들며 주님의 전사는 영적탄력, 믿음의 탄력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육신의 탄력은 떨어져도 마음의 탄력, 정신의 탄력, 영혼의 탄력은 떨어져선 안된다면 분투의 치열한 노력을 통해 신망애信望愛의 탄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좀 저속하다 생각되지만 팬티끈과 팬티천의 비유도 잊지 못합니다. 팬티끈이 영혼이라면 팬티천은 육신이요, 팬티끈만 탄력이 좋아 튼튼하다면 팬티천은 낡고 떨어져도 이리저리 기워입으면 끝까지 입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팬티끈의 탄력이 떨어져 느슨하거나 끊어지면 좋고 새로운 팬티천도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영혼이 튼튼하고 탄력이 좋아 육신을 끌고 가야지 육신한테 영혼이 끌려가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상시 영혼 건강을 위한 믿음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 실천하라고 여러번 강론에도 인용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전사는 믿음의 전사입니다. 믿음도 보고 배웁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도 믿음입니다. 제가 수도형제 도반들에게 가장 많이 보고 배우는 것도 믿음입니다. 공동전례기도 바칠 때면 그 간절한 믿음의 고백을 감지하곤 합니다. 우리는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에서 참 좋은 믿음의 격려를 받습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영적전쟁은 단거리 100m 경주가 아니라 평생 한결같이 끝까지 달려야 할 장거리 마라톤 경주같습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도중 하차 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이어야 합니다. 불퇴전의 자세로 초발심의 자세로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일일시호일의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영적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친히 은총을 주시기에 이렇게 영적전쟁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믿음의 증인들, 성인들이 이웃 믿음의 형제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혼자의 믿음은 약하지만 믿음의 성인들과 형제들로 이뤄진 교회공동체의 믿음의 힘은 무궁무진, 그대로 하느님의 힘을 반영합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요한 보스코 참 놀라운 성인입니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입니다. 성 요한 보스코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어머니의 믿음을 그대로 보고 배워 믿음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기적, 사랑의 기적입니다. 이미 살아 있을 때부터 많은 기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된 돈 보스꼬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수단의 돈 보스코’ 라고 불린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도 생각납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지내는 저의 왜관수도원에서 수련시 수련장이셨던 사랑하는 김구인 요한 보스코 신부님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연구의 대가인 존경하는 영원한 현역, 성염 요한 보스코 교수님도 떠오릅니다. 이미 성인의 경지에 이른 이분들의 믿음입니다. 성 요한 보스코 사제의 한생이 주님의 전사로서 참 치열했던 영적승리의 삶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청소년들을 참으로 사랑했던 성인의 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사랑하십시오.”

 

마지막 임종시 유언도 감동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성인의 묘비에는 '고아들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합니다. 흡사 교육의 성자 페스탈롯지를 연상케 합니다.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의 모범은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87세 고령에도 영원한 현역의 백전노장百戰老將입니다. 오늘 1월31일부터 2월5일까지 제40차 사목여정중 그 불편한 노구에도 아프리카의 콩고와 남수단을 방문합니다.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믿음의 증인들이 성인들이요 믿음 좋은 이웃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믿음의 영도자이자 완성자인 예수님과 더불어 참 좋은 믿음의 사람, 회당장 형제와 하혈병 치유를 받은 자매를 만납니다. 참으로 주님을 감동시킨 이들의 믿음은 그대로 주님께 응답받습니다. 하혈병을 앓던 자매에 대한 주님의 치유선언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딸대신 여러분 자신의 세례명을 넣어 나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오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진 회당장 딸의 치유도 참으로 통쾌합니다. 둘 다 믿음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감동시켜 응답을 받아낸 이들의 믿음입니다. 회당장 아버지의 믿음 덕분에 주님의 도움으로 부활의 삶을 살게 된 그의 외동딸입니다.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오늘도 힘들고 어려우면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탈리타 쿰!”하며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 믿음의 탄력, 영적 탄력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요 이런 경우는 하느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그대로 히브리서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우리가 늘 시선을 두어야 할 분은, 할 곳은 믿음이 영도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눈길을 늘 이런 예수님께 두고 살게 하십니다. 히브리서의 가르침의 권고로 강론을 마칩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12,2). 아멘.

 


[ 2/1(수)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접속되어 있어 말씀의 전류가 흘러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사랑의 전등을 밝혀야 할 일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3. 오늘 기념하는 성 요한 보스코 참 놀라운 성인입니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입니다. 

청소년들을 참으로 사랑했던 성인의 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사랑하십시오.”(이수철 신부)

 

[ 2/1(수)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제39일 기도]

 

하느님!

언제나 말씀에 접속되어 있어 말씀의 전류가 흐르게 하소서.

말씀의 전류로 사랑의 전등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2월1일(수) 0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