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16일 금요일[(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사제들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찾고자 애쓰시는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입당송
주님의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지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시네.<대영광송>
본기도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성심을 통하여
저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기리며 기뻐하오니
이 사랑의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또는>
하느님,
저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신 아드님의 성심을 보시고
저희에게 무한한 사랑을 인자로이 베푸시니
저희가 그 성심을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며
마땅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7,6-11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7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주님은 정의를 펼치시고, 억눌린 이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네.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네.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제2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무한한 사랑의 성심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속죄의 제사로 받아 주시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저희를 위하여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또는>
요한 19,34 참조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이 큰 사랑의 성사로 저희에게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저희가 언제나 성자를 사랑하며
형제들 가운데서 그분을 알아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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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신문사에 팩스가 한 장 왔습니다. 한국에서 저의 강론을 읽는 분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시각장애인이라서 아내가 남편에게 저의 강론을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아는 분이 매일 강론을 보내 주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지 요즘은 강론을 보내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팩스의 요지는 어떻게 하면 매일 저의 강론을 볼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보내 줄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미주가톨릭평화신문 홈페이지에 오면 매일 강론을 확인할 수 있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지난 5월 LA에서 레지오 강의를 할 때에도 매일 저의 강론을 읽는다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반가운 마음에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금도, 은도 없습니다.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십시오.” 그러자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매일 강론을 나누지만 제가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을 만큼 높은 인격과 덕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사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뉴저지 가톨릭 회관에서 특별한 미사가 있었습니다. ‘꽃동네’의 창설자인 오웅진 신부님의 ‘팔순축하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 60회의 생일을 지냈으니 오웅진 신부님은 저보다 20년 먼저 태어났습니다. 신부님은 군에서 복무할 때 김수환 추기경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군부대 인근에 ‘공소’를 세우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오웅진 신부님께 비용을 주셨습니다. 아직 사제가 되지도 않았을 때인데 오웅진 신부님은 공소를 마련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열정과 헌신은 사제가 되기 전에 이미 ‘공소’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1999년 10월 1일에 저는 오웅진 신부님의 땀과 열정으로 세워진 ‘공소’의 본당 신부로 갔습니다.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수녀님을 파견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오웅진 신부님께서는 기꺼이 두 분의 수녀님을 파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수녀님들과 함께 저의 사제생활 중에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5년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성화의 날’을 지내도록 권고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매년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구의 모든 사제들이 모여서 하루 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강의를 듣고, 고백성사를 보고, 은경축을 맞은 사제들을 축하합니다. 무엇보다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느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겟세마니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모든 사제는 예수님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지금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었습니까?” 율법학자는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당신도 가서 그렇게 하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산상수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가난한 이,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이, 자비를 베푸는 이, 슬퍼하는 이, 평화를 베푸는 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잔치를 베풀어라.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 송아지를 잡자.”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모든 사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과 희생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습니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여우도 집이 있고, 참새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습니다.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마저 내어 주십시오. 겉옷을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속옷까지 내어 주십시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모든 사제는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을 배워야 합니다. 사제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2. 2023년 06월 16일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한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공경하는 날입니다.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의 바탕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지니신 한없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고자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어(창세 1,26-27 참조) 그 사랑의 충만함을 표현하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애틋한 마음은 당신 백성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계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제1독서 참조).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과 맺은 계약에 불충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 품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십니다.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내가 너희 배반을 바로잡아 주리라”(예레 3,22).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아드님의 파견으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제2독서는 하느님을 사랑이신 분으로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신 아드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요한 1,14 참조)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며 연민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애로운 마음을 꼭 닮은 아드님의 성심을 공경하는 오늘, 우리는 특별히 사제들이 성화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닮아, 각자의 소임지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위로와 안식을 전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15.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4)
우리는 여전히 산상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옛 율법을 완성하는 ‘새로운 의로움’을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 말씀은 나는 하느님과 의로운 관계를 갖고 있는가? 곧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한 의로움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의로움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하느님 백성의 의로움’은 어떤 것인가?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의로움’,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룸은 산상설교의 핵심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시 그들이 ‘의로움의 길’로 여겼던 율법의 완성을 다룬 다음, 의로움을 드러냈던 기도 단식, 자선에 대해 다루면서, 이 설교의 중심인 6장에서 또 다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에 앞세워 “의로움”을 촉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그들의 의로움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도 말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갈라 3,11),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갈라 3,34). “율법은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려줄 따름이었습니다.”(로마 3,20))
그렇다면, 대체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은 무엇일까? (또한, 나는 그런 의로움을 행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여섯 가지 대당 명제를 통해 제시하시는데, 오늘 <복음>은 그 첫 번째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옛 율법의 ‘살인’을 구체적 행동의 결과로 드러난 살인만이 아니라, 원리상 살인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면적이고 근본적인 동기까지도 포함시키십니다. 곧 자기 형제에게 ‘성’내고,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살인하지 말라’는 내용에 포함시키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이다.”(1요한 3,15)라고 말합니다,
(물론, 모든 ‘성’(화)냄이 살인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화’냄도 있고, 교정을 위한 ‘성’냄도 있고, 단순한 습관이나 짜증의 ‘성’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집회서>에서 “많은 이들이 칼날에 쓰러졌지만, 혀 때문에 스러진 이들보다는 적다.”(집회 28,18)고 했듯이, 의도되지 않더라도 “혀”로 인하여 죽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지 ‘살인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 율법의 근본정신이 “화해와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3-24)
이는 용서와 화해, 곧 ‘사랑’이 율법의 정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제단의 예물이 아니라 예물을 바치는 사람의 “의로움” 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 앞에 나서기에 합당한 자 되기를 바라십니다. 동시에, 형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깨우쳐줍니다.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마태 5,23)이라는 말은 자신만이 아니라 형제를 위하여 화해와 사랑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너의 예물이 무엇이냐?’ 묻지 않으시고,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8)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에, 혹 불목한 형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얼른’ 화해하고 용서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먼저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 일이요, 이미 받은 주님의 사랑을 하염없이 내어주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얼른 화해하게 하소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시시비비를 따짐이 아니라 화해를 이룸이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화해하여라!”
-사랑의 화해도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자 습관이다-
내 안의 괴물들을 사랑의 인내와 훈련으로 길들이기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나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시편27.1-2)
저에게 하루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둘입니다. 하나는 하루의 영적전투를 끝내고 오후 8:30분 잠자리에 들 때의 취침시간이요, 하나는 오전 12:30분 기상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과 깊이 일치하여 고요한 시간에 강론을 쓰는 시간입니다. 수십년된 습관입니다. 2014년 산티아고 800리 2000km 순례때로 그랬습니다. 강론쓰는 시간은 주님과 만남의 시간, 기도의 시간, 회개의 시간, 공부의 시간, 치유의 시간이요 어제의 하루와 화해하는 시간입니다.
“화해하여라!”
화해도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내 안의 괴물을 사랑의 훈련으로 길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절로 화해가 아닙니다. 바로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가 전제되는 화해입니다. 참으로 화해의 종류는 다양하여 끝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삶은 “화해의 여정”일 수 있습니다.
주님과 깊어지는 일치와 더불어 화해요 그에 따르는 순수, 겸손, 자비, 겸손입니다. 넷인 듯 하나 하나이고 바로 예수님이 그 원조가 됩니다. 그러나 순수가 우선입니다. 순수의 힘은 하느님의 힘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 순수와 겸손이요 자비와 지혜입니다.
“죽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것이다.”
이미 타계한 세계 최고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평생 수십년간 애독했던, 또 무수한 영감에 강론에 많이도 인용했던 세권의 책이 있습니다.
조셉 캠벨의 이윤기가 번역한, 위의 지혜의 말씀이 담긴 책 “신화의 힘”이고, 니코스카잔스키스의 안정효가 번역한 “영혼의 자서전”이며, 여호슈아 헷쉘의 이현주가 번역한 “사람을 찾는 하느님”입니다. 성서와 더불어 평생 보관하여 읽는 책입니다. 특히 수려秀麗한 번역은 원문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어제는 어머님 18주기 기일을 맞이하여 어머님 성묘에 다녀왔습니다. 2005년은 수도원 개원이래 초유의 위기와 혼란을 겪던 해였고, 큰 가닥이 잡히고 정리되자 그해 6월14일 선종하셨습니다. 어머님의 기도의 힘이라 믿습니다. 어머님과 합장된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했고, 인근 묘원에 있는 작은 어머님, 그리고 첫째 요셉 형님 묘소에서도 기도했습니다. 특히 돌아가신 분들과 죽음과 화해한 듯 참 내적인 평화와 고요를 느꼈습니다.
제가 수도원을 찾을 때마다 꼭 방문하는 곳이 수도원 묘지입니다. 안식년중 만3개월 미국 뉴저지주 뉴튼 수도원에 머물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찾았던 곳이 수도원 묘지입니다. 이 또한 죽음은 물론 하느님과 주변 이웃과 내 자신과 화해하며 영적전의를 새로이 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이 몸과 맘에 밸 때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화해의 삶을, 순수와 겸손, 자비와 지혜의 삶을 살게됩니다. 이와 더불어 떠오르는 제 좌우명이요 묘비명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고백 좌우명시이자 장차 묘비명이기도 합니다.
“화해하여라!”
바로 오늘 산상설교 3일째 복음 소주제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첫 번째 길이 바로 화해입니다. 살인의 근본 뿌리인, 내 안의 괴물같은 실재인 분노와 멸시의 감정을 다스리고 길들여 화해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에게 내재한 괴물들입니다. 가라지가 없는 밀만의 현실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화해와 조화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래야 화해火海의 태풍은 미풍의 화해和解로 변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말고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바로 화해와 절제의 훈련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내 안의 괴물을 발본색원 뿌리 뽑을 수는 없습니다. 교황님의 “잡초는 결코 죽지 않는다(Weeds never die)”는 말씀도 이런 진리를 의미합니다.
100% 순수는 없습니다. 조화와 화해의 순수요, 내 안의 괴물을 사랑의 인내와 훈련으로 잘 길들여 갈수록 평화 공존의 순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형제를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자들은 내 안의 괴물을 길들이지 않은 자들이나 못한 자들입니다. 화해의 영적훈련이 습관이 전무한 자들입니다. 정말 내 안의 괴물들을 방치할 때 그 인생 괴물이나 폐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예물을 바치려 할 때 원망을 품고 있는 자와 화해하고 예물을 바치라 권고하는 주님이요, 고소한 자와도 신속히 타협, 화해하라는 말씀입니다. 괴물의 유혹에 빠져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며 태풍도 가능한한 미풍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과 마음이라면 절대 미사 못합니다. 그래서 예전 원장 재직시 수도 형제들과의 관계가 무례와 불손으로 몹시 불편할 때, 형제가 분명 잘못했는 데도 사과가 없을 때 제가 먼저 불러서 사과하고 미사했던 일이 여러번 생각이 납니다. 또 저에게 몹시 심한 패악질을 한 형제가 미사전 무릎을 꿇고 고백성사후 미사를 드렸던 일도 생각납니다. 이런 경우는 한없이 고맙고 감동스럽고 제 자신도 회개하게 됩니다.
어제 수도원에 돌아와 보니 책임감 강한 착한 수련 수사가 새책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구입하여 제 방 편지함에 꽂아 놓았기에 감사인사 전했습니다. 1991년 초판본을 32년간 사용하다 받은 2017년 7쇄의 새책입니다. 앞으로도 새책과 더불어 32년동안 공부하고 가르쳤기에 색도 바래고 많이 낡았지만 역사가 배어있기에 과거와 화해하는 마음으로 계속 영구보존할 생각입니다.
이 화해하는 마음 모두는 은총과 훈련의 노력을 통해 내 안의 괴물들을 사랑의 인내와 훈련으로 잘 길들여 갈 때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사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분이 성령입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우리에게 공감하는 위로자 성령님입니다. 회개를 통해 무지의 너울을 치워주심으로 괴물들을 무력하게 하는 성령의 은총입니다.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점차 성령의 성화은총으로 주님을 닮아가면서 잠재한 괴물들이 길들여지는 것이요, 마성魔性이나 악성惡性도 정화되고 성화되는 것이니 바로 성령의 은총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바로 이의 모범입니다. 화해의 달인이요 순수와 겸손, 자비와 지혜의 모범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이 참 통쾌합니다. 그대로 제 고백으로 삼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완전히 자기 안의 괴물들을 무력하게 한, 괴물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주님의 종, 모든 이들의 종이 된 화해의 달인, 자기 절제의 달인 바오로입니다. 새삼 우리의 영성은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종과 섬김의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은총의 빛이 우리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며 괴물들을 길들여 순종하게 하며 자발적 기쁨으로 종과 섬김의 영성을 살게 합니다. 바로 여기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자비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시편85,11-12). 아멘.
[6/16(금)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잔치를 베풀어라.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 송아지를 잡자.”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모든 사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배워야 합니다.(조재형 신부)
2. 아버지의 자애로운 마음을 꼭 닮은 아드님의 성심을 공경하는 오늘, 우리는 특별히 사제들이 성화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닮아, 각자의 소임지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위로와 안식을 전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전천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바오로 사도가 화해의 달인이요 순수와 겸손, 자비와 지혜의 모범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이 참 통쾌합니다. 그대로 제 고백으로 삼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이수철 신부)
[6/16(금)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제174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둘째 아들, 탕자를 사랑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하느님을 닮아...
아무 것도 혼란케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16일(금) 9시4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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