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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14일 목요일[(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14일 목요일[(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05(104),3-4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인자하신 주님,
주님의 종인 저희가 참회로 용서를 받고 착한 생활로 거룩하게 되어
주님의 계명을 언제나 성실히 따르며
깨끗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6(105),19-20.21-22.23(◎ 4ㄱ)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백성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 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 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

복음 환호송

요한 3,16 참조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제사로 봉헌하는 예물을 굽어보시어
나약한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예레 31,33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사의 힘으로 주님의 종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저희를 모든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어
구원의 영약을 가득히 받고 진리의 빛을 따라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하느님,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보살피고 이끄시며 구원하시니
이 백성에게 강복하시어
원수에게서 풀려나 죄에서 해방되고
언제나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양새는 말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어머니가 더 때리도록 응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의 슬픔과 아픔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단식하는 자리에 찾아와서 피자와 콜라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죽은 아이들을 가지고 돈을 벌겠다고 한다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라고 외쳤던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결백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군중의 소요가 귀찮아서 무죄하신 예수님께 십자가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고,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다투었습니다. 염불보다 제사 밥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유다와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고 말았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려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있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웃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이웃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유족들을 위해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과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피지도 못하고 지고만, 꽃잎처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학생들을 위해서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나누어 주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황님도 세월호의 유족을 만나서 위로해 주었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참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도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죄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는 이들이 있었기에 예수님 십자가의 길은 외롭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잘못하고, 하느님과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십니다. 비록 그들의 죄가 크기 때문에 벌을 하고, 심판을 하셔도 되지만 모세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으며, 하느님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도록 청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때리는 시어머니 옆에서 더 때리라고 응원하는 시누이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합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통해서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는 사제를 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신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느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5,31-47

 

우리의 좌절과 깊은 상처에 눈물 흘리시는 하느님, 나를 위해서라면 당신 목숨까지 내어놓으실 하느님!

 

사랑은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실체요 근원이신 분, 사랑 빼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신 분, 우리의 하느님께서도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특강을 다니다가 때로 교우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신부님들을 만납니다.

교우들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하루 해가 짧습니다.

머릿 속에는 언제나 교우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 그것을 실현시키려니 몸은 또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한갓 인간인 사제들도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데, 사랑의 본질이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그 사랑이 얼마나 더 뜨겁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어제도 지금도 내일도 활활 불타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이런 분이 아닐까요?

어떻게 하면 좋은 풀밭으로 양떼를 데려가 살찌울까 고민하시는 하느님, 우리의 좌절과 깊은 상처에

눈물 흘리시는 하느님, 나를 위해서라면 당신 목숨까지 내어놓으실 하느님, 언제나 용서하시고,

언제나 받아 들여주시는 속도 밸도 없는 바보 같은 하느님....

 

하느님께서 지니신 속성 가운데 가장 우세한 속성은 아무래도 한없는 너그러움이요,

세상 말랑말랑한 부드러움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찌 그리도 하느님의 속성과는 크게 대비가 되는지

씁쓸하고 서글픕니다.

하느님께서 총애하시고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의 행실을 보시고 크게 개탄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스라엘 백성의 목이 워낙 뻣뻣하고 마음이 완고하다 보니, 부드럽고 섬세한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목디스크로 뻣뻣해진 제 목도 크게 걱정이 됩니다.

 

아무튼 마음이 사라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물, 진정성이 배제된 그들의 예배에

하느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신 분, 우리의 죄와 악행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중재자 모세의 당부에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즉시 거두셨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너희는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당신의 정체성을 4중적 증거를 통해 입증하십니다.

곧 세례자 요한(33-35절)과 성부 하느님(30-32절)과 당신 자신의 활동(36절)과 성경(38-47절)이 당신을 증거하고 있음을 밝히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증거는 명확하고 확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는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함은 결코 증거가 부족해서거나 계시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그들의 완고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오늘 제1독서에서는 “목이 뻣뻣한 백성”(탈출 32,9)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완고함의 특성을 두 가지로 밝혀주십니다.

한편으로는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분을 믿지 않았다.’ 라는 말로 표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분의 말씀을 품지 않았다.’ 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완고함’은 주님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믿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상 숭배에 빠지고, 주님이신 하느님을 거역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우상 숭배를 두고서 예레미아서(5,7)에서도, 에제키엘서(23,27)에서도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정배이신 주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따르고 하느님을 거역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완고함’이란 말씀을 거역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자신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의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너희는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요한 5,38)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요한 5,42)

결국 완고함은 말씀을 품지 않고 있고,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품지 않으면 곧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 4중의 증언의 말씀을 듣고도 품지 않은 까닭입니다.

 

결국 완고함은 하느님 사랑이냐, 자기 사랑이냐,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의 말씀을 품고 있느냐, 자기 자신을 품고 있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을 위한 마중의 시간인 이 사순절이 말씀을 품고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게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13.사순 제4주간 수요일                                                            이사49,8-15 요한5,17-30

 

 

                                                                  “하닮의 여정”

                                                  -하느님 중심의 아버지의 자녀다운 삶-

 

 

"하느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하루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참 좋고 귀한 선물입니다. 

3월은 성 요셉 성월이자 은총과 회개의 사순시기입니다.

3월31일 부활 대축일까지 부단한 회개를 통해 하느님 중심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참 좋은 시간들입니다.

 

문득 어제 어느 노정치가에게 방송시 언뜻 들은 삼실(三實)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진실(眞實), 절실(切實), 성실(誠實)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세말마디는 그분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려는 사람이라면 삼실의 삶에 이어

삼감(三感)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 삼망(三望)의 사람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감사(感謝), 감동(感動), 감탄(感歎)의 삼감(三感)이라면, 절망(絶望), 원망(怨望), 실망(失望)이

삼망(三望)입니다.

참 감사하고 신기한 것은 제가 여기 요셉 수도원에 만36년 동안 정주하면서 막막하고 답답했을 때는 있었어도

결코 삼망(三望)한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하느님 믿음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다면 삼망(三望)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막막하고 답답할 때 참 많이 바라봤던 수도원 배경의 하늘과 불암산이었습니다.

자주 되뇌었던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말마디였고, 이어 참 많이도 인용했던

“하늘과 산”이라는 제 자작 애송시입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무려 27년전 시이지만 읽을 때마다 늘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늘이 평생 도반인 하느님을 상징한다면 산은 저를 상징합니다.

하늘과 산의 관계는 바로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과연 날로 신뢰와 사랑 깊어지는 하느님과의 관계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 여기가 천국입니다.”

아름다운 수도원 경관에 부러워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공동체 형제들과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불편하고 힘든 남남만도 못한 관계라면 거기가 연옥이요 지옥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입니다.

공동체내에서 관계의 훈련, 신망애(信望愛)의 훈련에 공동기도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이란 물음만 있고 하느님이란 답이 없으면 평생 헤매게 됩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과의 관계의 모범이 제1독서의 주인공 이사야 예언자이고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하느님은 아버지로 더 구체성을 띄게 됩니다.

3월 사순시기는 회개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해야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함께 가는 참된 영성의 표지가 겸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은 얼마나 좋은신 분인지요!

은총의 사순시기에 참 적절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마음에, 사랑에 정통한 이사야 예언자의 참 아름다운 고백시입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 주었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니 인공지능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영적 진보라기 보다는 인간 공동체 정신의 퇴행, 영성의 쇠퇴를 보여줍니다.

<녹색평론 185호 2024년 봄호>의 특집은 “인류는 인공지능 시대를 건너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인공지능이 추세라 하지만 저에게는 “판도라의 열린 상자”처럼 웬지 인류의 미래가 불길하게 느껴집니다. 

 

정말 시를 쓰려면 하느님의 예언자이자 시인인 이사야처럼 이런 희망과 생명, 빛이 넘치는

구원의 시를 써야 할 것입니다.

평생 도반이자 평생 착한목자이신 하느님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과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에 있는 참사람의 원형 이사야 예언자요,

예언자의 다음 하느님 사랑의 고백은 절정(絶頂)이자 절창(絶唱)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는다”, 못박듯한 하느님의 고백은 얼마나 절절한지요!

바로 우리 하나하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도록 깊습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을 어머니로 지칭하는데 어머니를 능가하는 “사랑의 어머니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어머니로 비견되는 하느님에 이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주저함없이 아버지로 고백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밀한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깊이할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원대한 평생목표가 하나 있다면 하느님 중심의 “하닮의 여정”에,

하느님을 날로 닮아감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날로 깊어지는 일치의 관계일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백을 과감히 믿고 사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보여주신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 지금이 바로 그때, 구원의 때입니다.

모든 말씀에 앞서 반드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마디가 강조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독보적인 관계의 깊이를 지닌 아들 예수님의 확신에 넘친 고백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과 날로 가까워지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닮아가는 하느님 중심의 “하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3월 성 요셉 성월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양부로서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부성(父性)과 하느님 어머니의 모성(母性)을, 양성(兩性)을 겸비한

참으로 온전한 요셉 성인처럼 생각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기르시는 아버지시오,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며,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께 간절히 청하오니,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또한 죽을 때에 저희를 지켜 주소서.” - 아멘


3/14(목) 사순제4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합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통해서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는 사제를 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신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느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사랑은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실체요 근원이신 분, 사랑 빼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신 분, 우리의 하느님께서도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게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을 날로 닮아감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날로 깊어지는 일치의 관계일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백을 과감히 믿고 사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보여주신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이수철 신부)

 

3/14(목) 사순제4주간 목요일, 446(제76)일 기도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게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3월14일(목) 12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