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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28일 목요일[(백) 주님 만찬 성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28일 목요일[(백) 주님 만찬 성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오늘은 성목요일입니다. 이 미사에서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의 새 계명을 묵상하고, 발 씻김 예식에 참여하며,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성체 보관 장소(수난 감실)로 옮겨 모신 성체 앞에서 밤새 깨어 조배하며, 당신 자신까지 내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합시다.

입당송

갈라 6,14 참조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성자께서는 죽음을 앞두시고
이 거룩한 만찬으로
새롭고 영원한 제사와 사랑의 잔치를 교회에 맡기셨으니
이 놀라운 신비에 참여하는 저희에게 넘치는 사랑과 생명을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12,1-8.11-14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6(114─115),12-13.15와 16ㄷㄹ.17-18(◎ 1코린 10,16 참조)
◎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
○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

제2독서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13,34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발 씻김 예식
<발 씻김 예식을 거행하는 동안 아래의 따름 노래들이나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따름 노래 1 요한 13,4.5.15 참조
◎ 주님이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네.
이렇게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 주셨네.

따름 노래 2 요한 13,12.14.15 참조
◎ 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드신 다음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말씀하셨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따름 노래 3 요한 13,6.7.8
◎ 주님, 주님이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하리라.
○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
○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되리라. ◎

따름 노래 4 요한 13,14 참조
◎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따름 노래 5 요한 13,35 참조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보고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되리라.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네. ◎

따름 노래 6 요한 13,34 참조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따름 노래 7 1코린 13,13 참조
◎ 너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리니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니라.
○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리니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니라. ◎

<신경 없음>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이 만찬 미사에서 성체성사와 성품성사 제정을 되새기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교회가 사랑과 봉사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통치자이신 주님, 공직자들에게 성령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깊이 생각하고, 사회적 우애와 공동선 실현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게 하소서.

3. 굶주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굶주리는 이들을 굽어살펴 주시고,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누구나 인간다운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하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사순 시기를 충실히 살아온 본당 사도직 단체들에 강복하시어,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으로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

성찬 전례
<예물을 바치는 동안 아래의 노래나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
○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들을 한데 모았네.
○ 그리스도와 함께 춤을 추며 기뻐하세.
○ 살아 계신 하느님을 경외하세.
○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세.

◎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
○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하나 되네.
○ 우리 마음 갈라질까 조심하세.
○ 이웃의 허물 탓하여 다투지 마세.
○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시네.

◎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
○ 복된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 뵈오리.
○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빛나는 얼굴.
○ 한없이 참된 기쁨 여기에 있네.
○ 이 기쁨 영원무궁히 이어지리. 아멘.

예물기도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이 거룩한 신비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성찬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제사와 성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참되고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길이 지속되는 제사를 제정하시어
먼저 자신을 아버지께 구원의 제물로 봉헌하시고
저희도 당신을 기억하여 봉헌하도록 명하셨나이다.
저희를 위하여 희생되신 주님의 살을 받아 먹어
저희는 튼튼해지고
저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받아 마시어
저희는 깨끗해지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1코린 11,24-25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영성체 후 묵상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몸소 본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현세에서 성자의 만찬으로 힘을 얻고
영원한 잔치에서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를 옮겨 모심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고 나서, 성당의 다른 곳이나 경당에 알맞게 장식하여 특별히 마련한 성체 보관 장소(수난 감실)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를 모셔 가는 행렬을 한다. 그동안 찬미가 “입을 열어 찬양하세”(마지막 두 절을 남겨 두고)나 다른 성체 노래를 부른다.>

<행렬이 성체 보관 장소에 이르러 거룩하신 성체께 분향할 때 “입을 열어 찬양하세”의 마지막 두 절 “지존하신 성체 앞에”나 다른 성체 노래를 부른다.>

입을 열어 찬양하세
○ 입을열어 찬양하세 영광의 성체신비
세상구원 이루시려 흘리신 성혈신비
강생하신 만민임금 당신피 흘리셨네.
○ 순결하신 동정녀가 낳으신 아드님이
말씀의씨 뿌리시며 이세상 사시다가
놀라우신 뜻에따라 구원을 이루셨네.
○ 최후만찬 그날저녁 형제들 모으시어
구약율법 지키시고 만찬음식 드셨네.
열두제자 먹이시려 당신몸을 주셨네.
○ 강생하신 주님말씀 참된빵 성체되고
순포도주 변화되어 거룩한 성혈되네.
오관으로 몰라뵈도 굳세게 믿나이다.
○ 지존하신 성체앞에 꿇어경배 드리세.
묵은계약 완성하는 새계약을 이뤘네.
오묘하온 성체신비 믿음으로 알리라.
○ 낳으신분 나신분께 찬미찬송 드리세.
구원하신 권능영광 영원히 찬양하세.
두분에게 나온성령 같은찬미 드리세.
아멘.

<주님 만찬 저녁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저녁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
사진설명: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오늘부터 교회는 파스카 성 삼일을 지내게 됩니다. 성서는 파스카에 대한 의미를 3가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파스카는 지나가다.’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 가서 예배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파라오는 모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내렸습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맏배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에(Mezuzah)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그 표시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맏배를 치는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맏배를 구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의 문에는 문설주(Mezuzah)가 있는데 그 안에는 양의 피가 아니라 신명기 6장의 들어라 이스라엘아!’가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넣어놓은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그렇습니다. 파스카는 단순이 양의 피를 바르는 것이 아닙니다. 파스카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파스카는 건너가다.’라는 의미입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바뀌어서 파라오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앞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홍해바다가 있었습니다. 뒤에는 막강한 파라오의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불평하였습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러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로 바다를 치니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무사히 홍해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파스카는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할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 번째 파스카는 넘어가다.’라는 의미입니다. 지나가고, 건너가는 것은 장소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굳이 지나가고, 건너가지 않아도 됩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땅위를 기어 다녀야 했던 애벌레는 죽음과 같은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만나게 됩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체성사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실 때 부활의 존재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신약의 파스카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가 바뀌면 세상은 그만큼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장소로 이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굳게 간직한다면 이 땅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13,1-15

 

성삼일 예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건너감(Pascha)입니다!

 

가톨릭교회 각종 전례 시기 가운데, 절정이자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성탄 시기도 큰 축제이지만, 이를 훨씬 능가하는 중요한 시기가 성삼일입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사흘간의 교회 전례를 우리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극도의 고통과 번민, 수난을 통과하시고, 죽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신 후,

마침내 영광스러운 부활로 건너오신 파스카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가장 본질이요 핵심, 전부입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그리스도 신자로서 다른 그 어떤 신앙 행위나 신심 행위보다 몇백 배, 몇천 배 중요한

이 성삼일 예식에 만사 제쳐놓고 반드시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풍성한 가치와 의미, 중요성을 내포한 예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미사와 현양 제대 앞 성체 조배,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 예식과 십자가의 길 기도,

그리고 마침내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이 모든 예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건너감(Pascha)입니다.

 

이번 성삼일 기간 우리는 또다시 건너가고, 넘어서고, 극복하는 노력을 거듭해야겠습니다.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이웃을 넘어 주님께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어제의 죄와 허물로 가득한 부끄러운 나를 넘어 주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죄사함을 받아

말끔해진 나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끝끝내 용서하지 못해 생지옥을 살고 있는 나를 넘어 통 큰 용서를 통한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새로운 나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누군가로부터 서비스를 받고, 케어를 받는 나에서 서비스를 베푸는 나, 극진히 섬기는 나,

이웃의 발을 씻겨주는 나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주님 만찬 성 목요일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십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식사 자리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사랑을 나누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이를 가리켜 요한복음사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주시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주십니다.

곧 당신의 유산으로 고귀하신 당신의 몸, 당신의 생명을 물려주십니다.

이름 하여, 성체성사를 설정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를 유산으로 주시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이 ‘발 씻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예수님의 이 ‘발 씻김’은 쟝 바니어 표현을 빌면, 당혹스런 쇼크요 스캔들입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스캔들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섬기신 까닭입니다.

영광스럽고 드높으신 분이 권위도 없이 천박하게 겉옷을 벗어 재끼고, 낮아지고 비천해지고, 노예나 하는 일을 하는 것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발 씻김’ 안에는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그 무엇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몫’에 대한 비밀입니다. 

바로 여기에 ‘발 씻김’의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곧 ‘발 씻김’은 단지 섬김의 본보기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을 넘어서, 무릇 참된 생명으로 건너가는 구원의 성사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섬김’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무한한 행위요, 동시에 죄를 씻어주는 용서와 구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투완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성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섬김’은 자신을 내어주는 성체가 됩니다.

성체인 이 섬김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주게 됩니다.

 

‘섬김’은 이렇게 구원의 성체가 됩니다.

곧 ‘섬김’은 성체성사가 현실 속에 실현되는 구체적인 형태인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섬김’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몫을 나누어 가지게 될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유산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결국 예수님과 함께 구원사업의 ‘몫’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 섬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섬김을 받은 자라야, 받은 바로 그 섬김으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기 전달, 자기 양도가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섬김’은 예수님을 내어주는 성체가 되고, 신적인 행위가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생명의 전달이 되고, 우리는 예수님의 몫을 함께 나누고, 당신의 유산을 나누어받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섬김’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무한한 사랑의 행위요, 성체성사가 됩니다.

동시에 죄를 씻어주는 용서의 행위요, 구원의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말합니다. 
“발 씻김의 성사는 단순한 본보기가 아니라, 화해성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발 씻김’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지고,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주게 된다는 뜻입니다.

곧 ‘섬김’은 서로의 용서와 친교를 이루며, 화해성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할 베드로와 유다와 십자가 아래서 옷마저 벗어버리고 도망쳐버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니, 당신의 지극한 사랑으로 전에 이미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요한 13,10)

이토록 발을 씻는 일은 깨끗함을 완성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러기에 발을 씻는 일은 그 깨끗함의 완성을 가리키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이루며, 진정한 파스카를 이룹니다.

오늘 우리는 이 거룩한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히고 압도당합니다.

이 거룩한 섬김, 이 놀라운 ‘발 씻김’으로, ‘당신의 몫’을 건네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전달하는 이 놀라운 감격의 성체성사요 화해성사인 ‘발 씻김’으로 하여, 우리는 당신 생명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마침내 ‘구원의 몫’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도 이 고귀한 유산을 함께 나누고 전달해야 합니다.

형제의 발을 씻어주는 일이 바로 그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주님!

제 영혼을 씻어주소서.

당신 사랑을 입고 생명을 몫을 얻게 하소서.

섬김 받기보다 먼저 섬기게 하소서.

낮아져 높일 줄 알고 작아져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쪼개지고 부서져 내어주고 파스카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27.성주간 수요일                                                              이사50,4-9ㄴ 마태26,14-25

 

                                                   주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 처럼, 예수님 따라 살기”-

 

"나는 주님의 집에서 푸르른 올리브같이

 언제까지나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리라."(시편52,10)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입니다.

앞서 주님의 첫째, 둘째 노래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신원과 더불어 우리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를 통해 하느님의 제자로서 자신의 신원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통해 우리 또한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의 신원을 거듭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다음 주님의 종의 고백은 그대로 예수님의 고백이요 교회 전통은 처음부터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열어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

 나를 의롭다 하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자 누구인가?”(이사50,4-5;8ㄱ,9)

 

그대로 하느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육성을 듣는 듯합니다.

바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이렇게 예수님처럼, 예수님따라 살면 되겠습니다.

성주간 예수님은 자신의 신원에 대해 깊이 고뇌하셨을 것이며 이런 예수님 덕분에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다음 옛 어른의 말씀도 주님의 제자로서 사는 데 유익한 조언이 됩니다.

 

“내가 초대받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초대해야 한다. 마음을 얻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부터 꺼내라.”-다산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논어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제 자작 애송시 “하늘과 산”은 바로 하느님과 예수님,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로 스승과 제자간의 깊은 상호보완의 사랑과 신뢰관계를 보여줍니다.

늘 읽어도 늘 새롭습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1997.2

 

저에게 한결같은 불암산은 참된 제자의 모범도 됩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수없이 다짐하며 주님의 제자답게 살려고 노력한 정주의 삶이요

더불어 떠오르는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보다”라는, 역시 여전히 새롭게 공감하는 자작 애송시입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아무리 세월 흘러도

 봄마다 신록의 생명 가득한 산

 꿈꾸는 산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보다

 세월도 비켜가나보다

 늘 봐도 늘 새롭고 좋은 불암산이다.”-2006.4

 

말한마디 천냥빚을 갚는다 했습니다.

정작 마음이 지치고 다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충고가 아닌 위로와 격려의 말이며,

예수님처럼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아는 제자의 혀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에 앞서 날마다, 아침마다 겸손히 귀를 열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고 실천할 때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과 신뢰관계와 더불어 비로소 주님의 제자다운 삶이겠습니다.

복음과 신약 서간에서도 이런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11,29)

 

정말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삶이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또 예수님처럼 순종의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5,8-9)

 

새삼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인생은 고난을 겪으면서 순종을 배워가는,

죽어야 졸업인 영원한 학생의 “순종의 학교”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필립비 서간 역시 비움과 순종, 겸손으로 요약되는 제자의 모범, 예수님의 모습이 감동스럽게 묘사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2.6-8)

 

세상에 이런 예수님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참제자이자 참사람이요, 우리 믿는 이들이 평생 추구해야할 영원한 과제입니다.

이런 제자상과 비교하면 오늘 예수님의 제자 유다의 모습은 얼마나 실망스러운지요!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의 경각심을 촉구하며 반면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온통 배신자 유다에 대한 내용입니다.

유다는 우리 제자들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인 유다가 배신할 것을 예고했을 때 전전긍긍 반응하는 모습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위기중에 있을 때, 제자들은 모두 그분을 혼자 남겨두고 살기위해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의 유다에 대한 탄식이 우리에게는 깊은 충격과 더불어 크나큰 가르침이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26,24ㄴㄷ)

 

비록 예수님의 죽음이 성서에 따른 것일지라도, 유다는 결코 그의 배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비교가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둘의 차이는 단 하나,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자비를 믿었고, 유다는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제 읽은 일화가 재미있어 인용합니다.

어느 총명한 어린이가 유다의 배반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유다는 목을 매단 나무를 잘못 골랐어요. 무화과나무를 골랐거든요.”

놀란 교리교사가 

“그럼 뭘 골랐어야 했을까?” 

물었을 때 어린이의 대답이 정말 기막힌 명답입니다.

 

“예수님 목에 매달렸어야죠!”

무화과나무에 매달려 자살할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예수님의 목에 매달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송과 더불어 주님께 용서를 빌었더라면, 그는 정말 베드로처럼 용서 받았을 것이라는 일화입니다.

예수님의 자비를 믿지 않았음이 유다의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따라 주님의 종이자 주님의 제자가 되어, 한결같이 경청과 순종,

비움과 겸손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요,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아멘.

주님 만찬 성 목요일 - 발 씻김 예식


3/28(목)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주님 만찬 미사, 되새김 구절

 

1. 구약의 파스카는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신약의 파스카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가 바뀌면 세상은 그만큼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장소로 이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굳게 간직한다면 이 땅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조재형 신부)

 

2. 이번 성삼일 기간 우리는 또다시 건너가고, 넘어서고, 극복하는 노력을 거듭해야겠습니다.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이웃을 넘어 주님께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어제의 죄와 허물로 가득한 부끄러운 나를 넘어 주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죄사함을 받아

말끔해진 나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끝끝내 용서하지 못해 생지옥을 살고 있는 나를 넘어 통 큰 용서를 통한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새로운 나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누군가로부터 서비스를 받고, 케어를 받는 나에서 서비스를 베푸는 나, 극진히 섬기는 나,

이웃의 발을 씻겨주는 나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주님!

제 영혼을 씻어주소서.

당신 사랑을 입고 생명을 몫을 얻게 하소서.

섬김 받기보다 먼저 섬기게 하소서.

낮아져 높일 줄 알고 작아져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쪼개지고 부서져 내어주고 파스카를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2.6-8)(이수철 신부)

 

3/28(목)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주님 만찬 미사, 460(제90)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주님!

제 영혼을 씻어주소서.

당신 사랑을 입고 생명의 몫을 얻게 하소서.

섬김 받기보다 먼저 섬기게 하소서.

낮아져 높일 줄 알고 작아져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쪼개지고 부서져 내어주고 파스카를 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3월28일(목) 2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