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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25일 월요일[(자) 성주간 월요일]/신부님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25일 월요일[(자) 성주간 월요일]/신부님강론 4개

 

입당송

시편 35(34),1-2; 140(139),8 참조
주님, 저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저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소서. 둥근 방패 긴 방패 잡으시고 일어나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나약하여 힘겨워하는 모습을 굽어보시고
외아드님의 수난으로 다시 생기를 얻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2,1-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7(26),1.2.3.13-14(◎ 1ㄱ)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악인들이 달려들어 이 몸 삼키려 해도,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다 쓰러지리라. ◎
○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쳐도, 내 마음 두렵지 않으리라. 나를 거슬러 전쟁이 일어나도, 그래도 나는 안심하리라.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저희 임금님, 경배하나이다. 당신만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거룩한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를 의롭게 하시려고 마련하신 이 제사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2 : 수난의 승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이 가까이 왔나이다.
옛 원수의 교만을 꺾어 승리한 구원의 성사를
새롭게 거행하는 축제가 다가왔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02(101),3
곤경의 날에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당신 귀를 제게 기울이소서. 제가 부르짖을 때, 어서 대답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신비에 참여한 주님의 백성을 지켜 주시어
자비로이 베푸신 영원한 구원을 길이 간직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비천한 이들을 언제나 지켜 주시고
주님의 자비를 믿는 이들을 보호하시어
육신의 재계를 지키며
더욱더 깨끗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주간 월요일

 

예전에 교구 사목국에서 일할 때입니다. 당시 서울대교구는 복음화를 중심으로 소공동체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담당 사제였기에 복음화에 대한 교육을 각 지구로 돌아다니면서 하였습니다. 교재는 반장학교 1 단계, 2단계, 3단계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지만 두 가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신앙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첫 번째는 죄인까지 품어 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들도 자기들의 자식은 사랑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죄인까지 품어주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예전에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가사 중에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미가 어찌 젖먹이 아이를 잃어버리겠느냐? 설령 어미가 자식을 잃어버릴지라도 나는 너희를 결코 잃지 않겠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었습니다. 죄인일지라도, 이방인일지라도, 마귀 들린 사람일지라도, 아픈 사람일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모두 다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반하여 다락방에 숨어 있을지라도 제자들에게 성령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수난과 고통까지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성인과 성녀들은 바로 이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수난과 고통까지 감수하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끝까지 믿어 주는 사랑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 제 이웃이 제게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충분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 비록 둘째 아들이 유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 왔을지라도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반지를 주고, 잔치를 벌여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끝까지 믿어주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다섯 번째는 열정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동굴이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누일 자리조차 없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열정적인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화의 4가지 요소입니다. 첫 번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모임은 그저 독서 토론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는 강론은 진정한 강론이 아니라 사제 개인의 넋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모임은 곧 활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기도는 샘이 깊은 물과 같고, 기도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피땀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지역입니다. 지역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모임은 그저 신심단체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지역이 활성화 되면 본당은 더욱 활성화되기 마련입니다. 네 번째는 활동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실천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은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실천이 없는 소동동체 모임은 그저 친목단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묵상하며 복음화의 4가지 요소를 삶으로 실천하는 성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2,1-11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봉헌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도 유난히 가깝고 편안하고 절친한 가족이 있었으니, 바로 라자로와 그의 누이 마르타,

마리아네 집이었습니다.

 

공생활 기간동안 예수님께서는 끝도 없이 늘어선 환자들의 치유, 적대자들과의 거듭되는 논쟁으로

온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즐겨 찾던 집이 베타니아의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갑작스레 우르르 들이닥치곤 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세남매는 그들을 극진히 환대하였습니다.

냉장고를 탈탈 털어 식사를 준비했고, 감춰두었던 값진 포도주를 내어놓곤 했습니다.

 

베타니아의 그 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일종의 오아시스이자 베이스 캠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목전에 두신 성주간 첫날 베타니아의 그 집을 또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여느 때처럼 마르타는 마음이 급해지고 손길이 바빠졌습니다. 지지고 볶고, 삶고 굽고 정신없었습니다.

라자로는 예수님 맞은 편에 앉아 귀빈 접대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영적으로 깊이 일치하고 있었던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직감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이제 드디어 사랑하는 주님과 작별할 날이 가까이 다가왔구나.

이제 드디어 그분을 떠나보내 드려야 하는구나.

 

뭐라도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마리아는 자신의 소지품들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즉시 찾아냈습니다. 자신의 소지품 가운데 가장 아끼던 물건,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챙겼습니다.

 

식사 중이던 예수님 발치 앞에 엎드린 마리아는 그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아낌없이

통째로 예수님 발 위에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둘러 앉아 있던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런저런 저게 얼마나 비싼 향유인데...저런 행위는 아무 사이나 하는 행위가 아닌데...공개석상에서

무슨 꼴불견이람.

 

그러나 마리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당하고 거리낌없이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여인들이 아주 중요시 여기는 머리카락으로 누군가의 발을 닦아드린다는 것, 보통 일이 아니겠습니다.

너무나 그를 사랑한다는 표현,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대상이라는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마리아가 보여준 특별한 행위는 일종의 장례 절차였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해드리는 것도 좋지만, 살아생전 해드릴 수 있는 가장 극진한 예를 주님께 바치는

마리아의 모습이 참으로 갸륵해보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자신이 지니고있는 가장 귀한 것을 봉헌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참으로 크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봉헌하고 있습니까?

내가 지닌 가장 귀한 것을 대체 어떻게? 어디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성주간 월요일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배타니아의 라자로와 마리아와 마르타 집에서 벌어졌던 잔치 중에 있었던 일을 전해줍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요한 12,3) 

그렇습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우리 집, 우리 공동체 안에는 내 형제들이 부은 사랑의 향유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사랑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 온몸을 적시고 흐르는 그 사랑의 향기를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직도 나를 치장하기 위한 향유를 필요로 하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요?

아직도 자신을 감추어 둔 채, 다 부수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요?

값비싼 것을 소모하고 낭비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물질에 애착하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요? 

나는 왜 아직도 형제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닦아드릴 머리카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수구려 발까지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까닭이 아닐까요?

혹 사랑이 없어, 사랑의 마음을 듣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요? 

오늘도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우리 주님과 형제들의 사랑이 쏟아지는데 나는 왜 이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재치기로 코를 풀어내야만하듯, 내 영혼의 옥함에 불순물이 너무도 많은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구린내를 담고 있는 나를 깨부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자신을 깨부수지 못한 나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요? 

왜 나는 이 숨 가쁜 사랑의 숨결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형제들 가슴속 깊게 흐르는 사랑의 마음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토록 눈멀고 귀먹고 마음마저 굳어져버린 나는, 오늘도 자신과 물질을 버려서 예수님을 차지하는 마리아가 되기보다, 자신과 물질을 차지하여서 예수님을 버려버리는 유다가 되곤 합니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진정 우리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삶의 잣대는 무엇인가?

 

사부 성 베네딕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앞세우지 말라!”

 

그렇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을 섬기는 것에 앞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어떤 처신을 할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하고 물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온 집안, 온 공동체를 사랑의 향유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온 집안에 가득 퍼진 이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종일토록 취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내내 찬미해야 할 일입니다.

 

그 향기 온 몸에 묻혀 바다소라처럼 향 내음 되어 날릴 일입니다.

그 향내 온통 베인, 이 집안을 사랑할 일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요한 12,3)

 

주님!

옥함을 깨뜨리듯 제 자신을 부수고, 부서질수록 사랑의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쏟아지는 사랑을 보게 하소서.

제 영혼에 새겨진, 사랑의 숨 가쁜 소리를 듣게 하소서.

온 집안에 가득한,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내내 취하게 하소서.

온통 당신의 숨결이 베인, 이 집안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사랑의 향기 뿜어대는 당신 마음 닮아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24.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르11,1-10 이사50,4-7 필리2,6-11 마르14,1-15,47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 중심의 한결같은 신망애(信望愛)의 삶-

                                                     "배워라, 비워라, 닮아라"

 

“사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은 한결같음이다.”

 

어제 어느 자매로부터 받은 그림과 더불어 위 짧은 말마디가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일희일비하지 않는 한결같은 삶입니다.

깊은 내공의 믿음을 반영하는 한곁같음입니다.

 

이런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면 신뢰와 더불어 참 편안함을 느낍니다.

다산 어른의 다음 3월24일 오늘 말씀도 이런 하느님 중심의 한결같은 믿음의 삶에서 가능합니다.

 

“높은 지위에 매달리며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마라.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일도 빛나고 나도 빛난다.”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행했을 뿐, 그 밖의 일은 삼가지 않음이 없었다.

이것이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오늘 가톨릭신문 글로벌칼럼 난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한 로버트 미켄스의 글에서도

교황님의 한결같은 모습이 참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장애물을 넘어 계속 전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나이들면서 건강 약해져도 오히려 더 큰 결단 보이는 중,

반대 세력과 급진 세력 모두 교황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주눅들지 않고 교회 이끌어”

 

이런 어려움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한결같이 늘 미소띈 얼굴 표정을 짓는 교황님이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가톨릭신문에서 소개된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한 가톨릭교회 26분의 사제와

사제서품 60주년 “회경축”을 맞이한 3분 사제 역시 한곁같은 삶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삶은 흡사 장애물 경기와 같습니다.

예전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때 장애물 경기는 보는 이들에게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요!

일상의 삶에서 이런저런 장애물을 온갖 지혜와 용기로 타개해 나가는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한결같은 신망애 정주의 삶도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성지주일부터 시작된 성주간은 가톨릭교회에서 파스카 신비가 실현되는 절정에 속하는 전례시기입니다.

성지주일의 긴 복음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한결같음이 어둠을 밝히는 빛같습니다.

가톨릭 굿뉴스에 한결같이 제 강론을 올려주는 형제의 댓글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아마 이 글을 쓰시기 위해 전날 하루의 성찰과 고백과 감사와 찬미의 삶의 결정판을

우리에게 매일 주십니다.

항상 신부님의 묵상글을 보면서 어두운 세상에서 빛 한줄기를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아멘.”

 

어둔 세상 한 복판에서 “주님의 빛”으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형제님이 참 경이(驚異)롭습니다.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것은 세상 곳곳에서 크고 작은 주님의 빛을 반사하며 살아가는 형제자매들 덕분입니다.

 

오늘 수난복음 중에도 한결같은 주님 사랑의 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후 전개된 수난복음의 목차를 정리해봤습니다.

 

(마르14,1-15,47)

1.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2.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3.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다

4.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5.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6.성찬례를 제정하시다

7.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

8.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

9.잡히시다

10.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

11.최고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시다

12.예수님을 조롱하다

13.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다

14.사형 선고를 받으시다

15.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다

16.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17.숨을 거두시다

18.묻히시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통과 수난을 겪어낸 주님의 한결같이 깊고 깊은 믿음, 희망,

사랑이 참 놀랍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호산나!" 당신을 환영하던 군중이 폭도로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외침에도

한결같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평상시 참으로 듣고 배움에

충실했음을 깨닫습니다.

 

다음 주님의 종이 고백하는 바 그대로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한결같이 듣고 배우는 공부에 충실하셨을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어 제2독서 필립비서의 그리스도 찬가가 또 깊은 감동과 더불어 깨우침을 줍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매주 토요일 제1저녁 기도시 바치는 찬미가입니다.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대로 오늘 수난복음의 요약처럼 느껴집니다. 역시 하느님 향한 사랑의 비움, 사랑의 겸손,

사랑의 순종입니다.

수난복음에서 주님의 이런 모습에 감동한 백인대장의 다음 고백이 수난복음의 절정이자 결론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앞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여인과 더불어 백인대장과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신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 역시 칠흑같은 어둠을 비추는 주님의 빛입니다.

수난복음 마지막 묘사,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라는 말마디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두 여인 역시 칠흑같은 어둠을 비추는 주님의 빛입니다.

과연 나는 수난복음의 누구에게서 나의 얼굴을 발견합니까?

 

예수님은 수난복음에서는 물론 평생 삶에서 겪는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겸손의 계기, 순종의 계기,

비움의 계기로 삼으셨음이 분명합니다.

사랑의 겸손, 사랑의 순종, 사랑의 비움이 파스카 신비의 완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닮는 것은 우리 모두의 평생과제입니다.

 

“어떻게?” 저는 셋을 권합니다. 

 

“배워라, 비워라, 닮아라” 

 

주님처럼 한결같이 배움의 여정에, 비움의 여정에, 닮음의 여정에 항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한결같은 열렬한 신망애(信望愛)의 삶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처럼 간절히 항구히 바치는 기도가 이런 한결같은 배움과 비움, 닮음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주님의 감동적인 두 기도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니니, 이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아멘.


 

3/25(월) 성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부터 우리는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묵상하며 복음화의 4가지 요소를 삶으로 실천하는 성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복음화 요소: 첫 번째는 말씀... 두 번째는 기도’... 세 번째는 지역’... 네 번째는 활동

(조재형 신부)

 

2. 실수도 하고 방황도 하면서 변화되고 성장하는 존재가 인간이니, 스스로 잘못을 인식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이시니, 그런 배신의 기회조차도 제자들에게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영원하신 하느님,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에 비해 우리 인간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지극히 가벼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비록 오늘 죄와 배신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고개를 주님께로 돌리며

그분의 크신 자비를 구하는 노력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요한 12,3)

 

주님!

옥함을 깨뜨리듯 제 자신을 부수고, 부서질수록 사랑의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쏟아지는 사랑을 보게 하소서.

제 영혼에 새겨진, 사랑의 숨 가쁜 소리를 듣게 하소서.

온 집안에 가득한,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내내 취하게 하소서.

온통 당신의 숨결이 베인, 이 집안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사랑의 향기 뿜어대는 당신 마음 닮아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닮는 것은 우리 모두의 평생과제입니다.

 

“어떻게?” 저는 셋을 권합니다. 

 

“배워라, 비워라, 닮아라” 

 

주님처럼 한결같이 배움의 여정에, 비움의 여정에, 닮음의 여정에 항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한결같은 열렬한 신망애(信望愛)의 삶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처럼 간절히 항구히 바치는 기도가 이런 한결같은 배움과 비움, 닮음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수철 신부)

3/25(월) 성주간 월요일, 457(제87)일 기도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요한 12,3)

 

주님!

옥함을 깨뜨리듯 제 자신을 부수고, 부서질수록 사랑의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쏟아지는 사랑을 보게 하소서.

제 영혼에 새겨진, 사랑의 숨 가쁜 소리를 듣게 하소서.

온 집안에 가득한,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내내 취하게 하소서.

온통 당신의 숨결이 베인, 이 집안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사랑의 향기 뿜어대는 당신 마음 닮아가게 하소서.

 

- 2024년 3월25일(월) 23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