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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26일 화요일[(자) 성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27(26),12 참조
주님, 박해하는 적에게 저를 넘기지 마소서. 거짓 증인들이 저를 거슬러 일어나 사악한 거짓을 내뱉나이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주님 수난의 성사에 끝까지 함께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1(70),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15ㄴㄷ참조)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저희 임금님, 경배하나이다. 당신은 아버지께 순종하셨나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시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저희가 이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2 : 수난의 승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이 가까이 왔나이다.
옛 원수의 교만을 꺾어 승리한 구원의 성사를
새롭게 거행하는 축제가 다가왔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8,32 참조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 친아드님마저 아낌없이 내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하느님,
하느님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옛 사람이 매여 있던 온갖 올가미에서 벗어나
새사람에 어울리는 거룩함을 지니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주간 화요일

 

전임 신부님이면서 동창 신부님이 제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갔습니다. 성당 마당에 창고를 하나 만들 수 있는 후원금을 주고 갔습니다. 신부님이 주신 후원금을 아끼기 위해서 형제님들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모든 작업을 손수 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창고를 세울 도면을 50$에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도면에 따라서 기초를 세우고, 그 위에 합판으로 바닥을 깔았습니다. 네 면의 벽을 만들어서 세웠고, 지붕으로 덮었습니다. 입구에는 문을 달았고, 벽에는 창문을 달았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모으면 근사한 창고가 마련될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형제님들이 모여서 작업하였습니다. 식당을 하시던 형제님은 매주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형제님은 집에 있는 작업 도구를 가져 오셨습니다. 젊은 형제님들은 무거운 자재를 날랐습니다. 손재주가 없는 저는 현장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후에 작업을 마치면 형제님들과 삼겹살에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부님이 제게 준 선물은 눈에 보이는 창고가 아니었습니다. 그 창고를 만들기 위해서 모인 형제님들의 마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묵묵히 땀을 흘리면서 창고를 만들고 있는 형제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 큰 선물을 준 동창 신부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민족들의 빛이 되는 사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도, 예수님을 배반했던 사람까지도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절망을 버렸습니다. 마음 안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 ‘부활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은 이제 죄의 상태에서 돌아서서 다시금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과 허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잘못과 허물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정화시켜 주시는 하느님께로 우리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었지만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였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배반도, 외부의 박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어둠에 빛이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현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은 몸과 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은 구원의 방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신앙인은 이웃에게 따뜻한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3,21-33.36-38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꿰뚫고 있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당신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기며 배신할 것인지?

누가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할 것인지?

누가 당신 홀로 체포 당하실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을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 제가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었다면, 즉시 노발대발했을 것입니다.

급한 성격에 제자들을 총집합시켰을 것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제자들을 일렬로 쭉 세워놓고 일장 훈시를 했을 것입니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대며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 혹독한 배신감과 고독함, 그로 인한 극도의 산란함 속에서도 철저하게도

제자들의 배신을 함구하십니다.

결정적인 배신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제자들이 계속 캐물었지만, 끝끝내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그런 태도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쉽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서 각 개인의 자유의지를 철저하게 존중해주신다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고. 당신을 철저하게도 배신하고 죽음의 길을 가는 것조차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고?

 

실수도 하고 방황도 하면서 변화되고 성장하는 존재가 인간이니, 스스로 잘못을 인식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이시니, 그런 배신의 기회조차도 제자들에게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영원하신 하느님,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에 비해 우리 인간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지극히 가벼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제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기세였지만,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잇속과 안위만을 궁리합니다.

어제 금강석보다 더 굳은 신념으로 결심하였지만, 오늘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너무나도 나약한 우리 인간 존재 곁으로 사탄의 강력하고도 집요한 유혹은 끝도 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취약함 부분을 거듭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어제의 대단한 결심을 오늘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제 당당한 주님의 제자였지만, 오늘은 배신의 참담함에 눈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비록 오늘 죄와 배신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고개를 주님께로 돌리며

그분의 크신 자비를 구하는 노력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성주간 화요일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새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성삼일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절망과 어둠이 더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빛으로부터 떠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밤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배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밤이요, 또 하나는 베드로의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캄캄한 어둠이 짙어져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닭이 울기 전 새벽이 밝아져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제자들을 덮치자,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요한 13,21)

사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하는 제자를 마지막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빵을 적셔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빵을 적셔서 주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을 배반할 제자에게 끝까지 베푸는 충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랑을 등지고서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면밀히 계획한 바를 어둠 속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새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할 의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순간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닭이 울면, 어둠은 밝아질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넘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넘어질 때는 가장 약할 때가 아니라, 가장 강할 때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질 것입니다(2고린 12,10). 

그렇습니다. 

유다의 밤은 어둠과 악으로부터 오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약함과 과신으로부터 오는 밤입니다.

또한 유다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도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어 멸망으로 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는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베드로같이, 유다같이 곧잘 넘어집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넘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일어서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혹 넘어진 사실을 까달아 알고 뉘우치고 성사를 본다고 해도, 일어선 사람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넘어진 채로 넘어진 자신을 본 것일 뿐, 비록 용서는 받았다할지라도 일어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일어서서 넘어졌던 자신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 속으로 건너와서 어둠을 바라보아야 할 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일어선 자만이 빛나는 새벽을 만날 것이요, 일어선 자만이 빛 속에 들 것입니다.

먼저 베풀어진 그분의 사랑을 만난 자만이 그분의 빛 속을 걸을 것입니다. 

하오니,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 

제가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오늘 제가 비록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주소서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25.성주간 월요일                                                                        이사42,1-7 요한12,1-11

                                                              주님의 종 

                                         -예수님 알기, 예수님 살기, 예수님 닮기-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오늘 성주간 월요일 복음의 주인공은 단연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쏟아 부은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찾았던 환대의 집, 베타니아집에 살았던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삼남매였고,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또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했던 삼남매였습니다.

이중 마리아의 주님의 종,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가장 뛰어납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로다.”

화답송 후렴의 고백은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는 물론 우리의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가 상징하는 바 참으로 주님의 종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입니다.

제 옛 자작시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대로 주님의 종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 고백처럼 생각됩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며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며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은총의 성주간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가 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무려 26년이 지났어도 참 많이 인용했던 시요,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도

분명 이러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종,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한 듯 마리아는 사랑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말그대로 한폭의 살아 있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화같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했다.’

 

순 나르드 향유 냄새가 상징하는 바, 마리아의 향기, 사랑의 향기, 존재의 향기, 겸손의 향기 같습니다.

“난같은 당신”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바로 마리아가 그러합니다.

 

“당신 존재의 향기

 사랑의 향기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있음자체만으로 

 향기롭고 평화로운

 난같은 당신, 마리아입니다.”-1998.3.37

 

흡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던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가, 또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드리던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이 연상되는 참 거룩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가 말하는 주님의 종은 그대로 마리아가 참으로 사랑했던

예수님이심이 환히 계시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참으로 하느님의 전폭적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주님의 종, 예수님에 대한 하느님의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종, 예수님의 모습은 마리아는 물론 사랑의 관상가의 삶을 지향하는 우리 모든 이들의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공정을 펴리라.’

 

한결같이 자비롭고 섬세하고, 성실하고 공정하고, 고요하고 자상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하느님을

고스란히 닮은 주님의 종, 예수님의 모습이자 믿는 모든 사랑의 관상가들이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종을 참으로 사랑하시는 다음 하느님의 모습도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이런 하느님을 잊어버려, 잃어버려 자초한 인간의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새삼 이런 하느님을 경외하고 흠숭하고 찬미하고 감사함이 우리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며

살길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관상가, 신비가, 영성가로 불림 받은 우리의 보편적 성소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사명을 부여받는 주님의 종은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주님의 종들, 세례받아 주님의 종,

주님의 자녀가, 복음의 일꾼이 된 우리 모두를 향합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우리를 무지와 허무에서 해방하는 복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종 예수님을 모심으로 무지의 눈이 열려 보게 되고, 무지의 감옥,

무지의 어둠, 허무의 감방에서 해방되어 우리 역시 주님의 종이 되고 참 자유인이 됨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 참으로 자유로운 주님의 종이 되어 살게 합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종으로서 예수님을 꿰뚫어 본 주님의 종, 사랑의 관상가가 오늘 복음의

주인공 마리아입니다.

누구보다 주님의 종으로서 예수님의 신원을 깊이 깨달아 알았고 이심전심 참으로 마리아를 사랑했던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최측근에 속했으면서도 장차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아넘길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과는

극명히 대조됩니다.

말그대로 영적으로 눈먼 유물론자 유다입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사랑에 눈멀었기에 이런 계산이요 판단입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어찌 사랑을 계산할 수 있겠는지요.

유다가 보기에 마리아는 참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쳤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물론 우리는 압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임을!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했다 합니다. 

 

다음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으로 사랑했고 자신이 참으로 사랑했던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를

더 이상 제발 괴롭히지 말라 당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어른 거리는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를 죽이기로 결의했고, 주님의 종 예수님의 생명도 풍전등화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리아의 사랑의 향유 추억을 간직하고 주님의 종 예수님을 닮은

향기로운 주님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 늘 현존하는 주님이시오,

가난한 이들을 통해 늘 만나는 주님의 종, 예수님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사랑의 관상가. 주님의 종,

주님의 빛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27,13-14). 아멘.


3/26(화)  성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죽었지만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였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배반도, 외부의 박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어둠에 빛이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현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은 몸과 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은 구원의 방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신앙인은 이웃에게 따뜻한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조재형 신부)

 

2.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비록 오늘 죄와 배신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고개를 주님께로 돌리며

그분의 크신 자비를 구하는 노력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주소서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어른 거리는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를 죽이기로 결의했고, 주님의 종 예수님의 생명도 풍전등화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리아의 사랑의 향유 추억을 간직하고 주님의 종 예수님을 닮은

향기로운 주님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 늘 현존하는 주님이시오,

가난한 이들을 통해 늘 만나는 주님의 종, 예수님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3/26(화)  성주간 화요일, 458(제88)일 기도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주소서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2024년 3월26일(화) 10시...수산나 -